제1야당의 젊은 국회의원이 지난 23일 밤부터 대한민국 미디어의 주인공이 됐다. 제1야당은 진정 국민의 편에 서 있던 걸까?

테러방지법 통과를 막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이 진행한 필리버스터에서 김광진 더민주 의원이 지난 1964년 김대중 당시 의원의 기네스북 기록(5시간 19분)을 깨면서 ‘리틀DJ’라는 별명을 얻었다. 24일 새벽 2시30분부터 시작된 은수미 더민주 의원이 다시 김광진 의원의 기록을 깨며 모처럼 제1야당의 ‘선명성’을 보여줬다.

천재지변, 국가비상상태에 준하는 사태 등으로 보기 어려운데도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한 국회의장이나 박근혜 대통령의 뜻을 담아 테러방지법을 밀어붙이는 새누리당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김 의원은 밥을 굶으며, 은 의원은 새벽부터 아침까지 가장 힘든 시간을 버티며 야당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을 이용해 테러방지법을 몸으로 막고 있다. 하지만 더민주가 잘하고만 있을까?

3개월 전 테러방지법 합의했던 제1야당

지난해 12월2일 여·야(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지도부는 노동시장 구조개편 관련 법안과 테러방지법, 북한인권법 등을 정기국회와 임시국회에서 ‘합의 처리’하기로 했다. 시민사회 뿐 아니라 당내에서도 반발하자 ‘합의 처리’를 ‘합의 후 처리’로 합의문 문구를 바꾸자고 하는 등 여론을 의식했지만 국민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3일 국회에서 필리버스터 무제한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당시 “테러방지법이 합의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힌 의원은 국회 정보위 법안소위 소속 김광진·문병호(당시 새정치연합)의원이었다. (해당 두 의원은 이번 필리버스터 첫 번째와 두 번째 토론자였다.) 두 의원은 정보위 소속 야당의원의 입장에서 테러방지법의 문제점은 지적했지만 국민들이 분노한 핵심까지 짚어내진 않았다.

국민들이 분노한 지점은 제1야당이 테러방지법을 합의해준 배경이다. 당시 여야 원내지도부 모임은 내년도(2016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한 만남이었다. 여기에 난데없이 국회 문턱을 넘어서는 안 됐던 테러방지법 등이 합의문에 등장한 것이다. 국정원에 막강한 권한을 주는 테러방지법이 왜 예산안과 연계되느냐 하는 것이다.

당시 새정치연합이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받으며 여당에게 밀렸던 이유는 지역구 예산을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4·13총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기득권 지키기’의 모습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이후 새정치연합은 더민주와 국민의당으로 쪼개지면서 테러방지법 등 정책 이슈는 사라졌다. 총선이 코앞인데 선거구 획정조차 못한 채 3개월이 흘렀다.

20대 총선은 비례대표 축소, ‘리틀DJ’얻은 더민주

선거구 획정을 못해 총선을 미뤄야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었다. 제1야당 더민주는 기어코 새누리당이 원하는 방식, 어쩌면 거대 양당이 모두 원하는 방식대로 지역구 의석을 늘리고 비례대표 의석을 축소(7석)하는 안으로 확정했다. 각각 지역기반으로 두고 있는 영남과 호남은 사이좋게 지역구 의석 각 2석을 줄였다.

비례대표 확대는 사표를 줄인다는 측면에서 민주적 원리에 부합하고, 소수정당의 원내 진출을 돕는다. ‘못해도 2등’하는 양당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더민주는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하자 이종걸 더민주 원내대표는 “온 몸을 던져서 막겠다”고 말했다. 국민을 위하고 있는걸까?

3개월 전 지역구 예산확보를 위해 테러방지법에 합의했던 이 원내대표는 필리버스터를 제안했다. 지난 23일 오후 7시경 김광진 의원이 단상에 섰다. 온갖 찬사가 쏟아졌다. DJ의 기록인 5시간19분이 깨지자 김 의원은 DJ급 스타가 됐다. 실시간 검색어에는 “김광진 힘내라”가 등장했다.

“오늘(23일) 밥을 못 먹었다”는 김 의원은 다수 여론조사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순천·곡성 예비후보에게 뒤지고 있다. 세 번째 토론자 은수미 더민주 의원 역시 초선비례의원으로 김 의원처럼 지역구 출마를 앞둔 인물이다. 다음 주자인 박원석 정의당 의원 역시 초선비례의원으로 이번 총선에서 수원영통에 지역구 출마를 준비 중이다.

▲ 24일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필리버스터 무제한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잃은 것 없는 더민주, 국민의 편인가

필리버스터를 하지 말자는 건 아니다. 밤새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해 자신의 전문성과 체력을 쏟은 김 의원과 은 의원의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더민주가 진정 국민의 입장에서 결정했는가를 물을 필요는 있다.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는 와중에 이를 제안했던 이종걸 원내대표는 수정합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 원내대표의 입장은 후퇴했다. 그는 “대테러센터의 장이 국민안전처장관인데 그 우산을 걷고 대테러센터에 국정원이 직원이 파견오거나 활동하는 것, 전담 조직 이런 것 다 수용하겠다”며 “(감청관련) 부칙조항만 (여당이) 포기하면 사후통제권을 (야당이) 추가로 요구하고 있지만 그것도 포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장에게 전권을 주는 것은 안 되지만 박근혜 정부의 다른 조직에 전권을 맡기고 국정원 직원이 파견 오는 정도면 괜찮은 걸까? 테러방지법이 없어도 현행법으로 테러범 처벌이 가능하다는 의견은 외면한 걸까? 필리버스터를 제안할 당시 이 원내대표가 “초법적 직권상정 용납할 수 없다”고 했던 것과 온도차가 느껴진다.

필리버스터와 같은 대중호소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정치인들의 의도대로 국정을 이끌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시민의 민의를 수렴·전달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필리버스터를 통해 의원 개인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개인 역량을 드러내기에는 좋다.

더민주는 잃은 게 없다. ‘리틀DJ’를 포함해 지역구 출마를 앞둔 비례대표의원 두 명이 스타가 됐다. 지역구 예산도 섭섭하지 않게 얻었고, 비례대표 의석을 줄여 ‘못해도 2등’자리를 확보할 가능성도 높였다.

지금 언론이 주목하는 64년 DJ의 필리버스터 상황으로 잠시 돌아가보자. 당시 김준연 자유민주당 의원은 박정희 정권이 한일협정때 일본 정부에게 비자금을 받았다고 주장했고, 여당인 민주공화당은 김준연 구속동의안을 상정했다. 필리버스터로 DJ는 주목받는 의원이 됐지만 회기가 끝나자 검찰은 김준연 전 의원을 구속했다.

김광진은 리틀DJ인가? 필리버스터는 테러방지법을 막을 수 있을까? 더민주는 정말 온몸을 던져 박근혜 정부를 견제하고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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