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한 토론으로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는 필리버스터가 4. 13 국회의원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무기력했던 야당의 존재감이 부각되는 효과로 이어지고 있고 테러방지법의 정당성 문제가 도마에 오르면서 정부 여당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안보 프레임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반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보수 진보가 양분돼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만 보일 뿐 한달 이상 남은 총선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여야 유불리에 대한 엇갈린 전망 속에서도 필리버스터라는 제도가 국민들에 각인되면서 민주주의와 의회정치의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윤철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는 "필리버스터는 민주주의와 의회정치 원리로 보면 신속한 의사 결정보다는 숙고와 숙려를 통해 오류를 방지하는 장치로 한국에 필요한 제도"라고 말했다. 

필리버스터로 인해 국회선진화법도 도마에 올랐다. 필리버스터가 가능한 건 여야 합의로 통과된 국회선진화법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필리버스터로 인해 국정운영이 마비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번 기회에 선진화법 개정을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필리버스터가 강한 여론의 지지를 받으면 국회선진화법 개정 목소리를 꺼내기 어려워진다. 필리버스터 논쟁이 국회선진화법 개정에 대한 신경전으로도 확대될 수 있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정부 여당이 필리버스터를 야권의 발목 잡기로 주장하지만 여야가 동의했던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필리버스터가 가능했다는 점에서 자기 얼굴에 침뱉기이면서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뚜렷한 성과가 없는 상황을 자인하고 장애물이 있다는 핑계대기의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에서 헌법 76조 대통령의 긴급명령권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도 역풍을 불러올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긴급명령권은 내우와 외환,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 경제상의 위기에서 국가의 안전보장이나 공공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나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 발동할 수 있다. 

청와대가 필리버스터로 인한 법안 지연을 국가적 위기라고 판단해 긴급명령권을 발동할 수 있다는 건데 이렇게 되면 테러방지법 정당성 논쟁보다는 의회정치를 무시한 정권의 일방적인 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비난이 일고 강한 반발로 이어질 수 있다. 

김 교수는 "긴급명령권은 대한민국이 갖는 국가적 위상이나 정치 수준으로 볼 때 어울리지 않는 제도의 적용"이라며 "오히려 정치권의 합의라던지 국민적인 동의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구시대적인 발상이고 정략적인 수법일 뿐이며 불안감을 조성해 정부 여당이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도가 드러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필리버스터에 대한 체험이 의회정치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면서 적극적인 정치 참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예상까지 나온다. 

최요한 시사평론가는 "이론적으로 필리버스터를 알고 있다가 실제로 눈으로 몸으로 느낀 것이 처음"이라며 "생소하기도 하지만 필리버스터를 통해서 법안이 지연되면서 민주주의 교육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다수당 독주와 소수당의 몸싸움으로 일관하다 모습을 보다가 대화와 토론이 이뤄지는 것을 보면서 민주주의 교육을 각성시키는 대국민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테러방지법과 별개로 정부와 새누리당이 필리버스터를 폄훼할수록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반발 여론만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테러방지법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해당 법안이 뭐가 문제길래 이토록 집요하게 반대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 여당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국가정보원의 대통령 선거 개입 사건도 다시금 조명을 받고 있다. 테러방지법에 따르면 국정원이 감청과 금융 추적을 할 수 있는데 정치 개입 의혹을 받았던 국정원에 이 같은 권한을 부여하면 '국민테러'를 할 수 있다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 24일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필리버스터 무제한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정부와 새누리당은 예상치 못한 필리버스터에 대한 폭발적인 여론 때문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장기전으로 흐를 때 반전을 노릴 수 있다. 정치 성향에 따라 정책 선호도가 이미 결정돼 있다고 판단해 테러방지법을 시작으로 안보 프레임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일 것이라는 예상이다. 안보 프레임이 블랙홀처럼 이슈를 빨아들이면서 더불어민주당이 내세운 경제 심판 프레임도 큰 위력을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야권 지지층 내에서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호감이 높아지는 효과에만 그치고 보수와 진보로 나뉜 안보 프레임의 구도상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넘어가는 ‘일탈’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재익 에스티아이 연구원은 "야권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다시 모이고 더민주당에 못마땅한 시민이 야권이 분열된 상황에서 일정정도 더민주당에 호감을 갖는 효과는 있을 수 있다"면서 "하지만 그동안 국정지지율과 새누리당 지지율을 보면 무수한 실정에도 불구하고 유지해왔던 40% 지지층에 변수를 줄만한 사안은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40% 이상을 유지했던 박근혜 정부의 국정지지율이 밑으로 떨어진 것은 보통 정부와 새누리당 내부 보수 지지층의 균열을 일으킬만한 이슈가 터졌을 때라는 것이다. 일례로 유승민 전 원내대표 찍어내기 논란, 메르스 사태에 대한 정부-새누리당 대응 혼란, 증세 복지 논란 등과 같은 이슈가 있을 때 국정지지율과 새누리당 지지율은 동반 하락했다. 하지만 이번 필리버스터의 주제인 테러방지법은 보수 지지층을 균열시키기 어려워 총선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개성공단 폐쇄 문제나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도 지금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지만 총선 전 언제든지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안보 프레임은 향후에도 강력한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남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주변 국가와의 관계가 악화가 계속되면 안보 프레임은 부메랑으로 작용해 박근혜 정부의 입지를 좁아지게 만들 수 있다. 안보 프레임이 마냥 여권에 유리한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야권으로 눈을 돌리면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북한 궤멸 발언, 국민의당 개성공단 입장 등 안보 이슈와 관련한 정체성 논란의 불씨도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박재익 연구원은 "남북 관계 문제는 어차피 계속해서 안고 가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안보 이슈 현안을 정치세력이 남은 총선 기간동안 어떻게 풀어서 보여주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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