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캐리(Hard Carry). 질 것 같은 경기를 원맨쇼로 뒤집어 승리로 이끄는 행위를 뜻한다. 요즘 KBS·MBC·SBS 지상파3사 시청률을 보면 드라마·예능·시사교양·보도 편성 가운데 드라마, 그중에서도 연속극의 하드캐리가 눈에 띈다. 평일 낮 시간대와 평일 밤 시간대 시청점유율에서 점점 종합편성채널과 케이블에 자리를 내주고 있는 상황이지만 지상파가 여전히 고정형TV의 주시청층을 붙잡을 수 있는 이유는 연속극 띠 편성에 있다.
이 같은 지상파3사의 순차적 드라마 편성은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상파3사 채널습관을 사수하기 위한 일종의 ‘공조’처럼 보인다. 이날 지상파3사에서 오전 0시부터 오후 6시까지 18시간 동안 편성된 프로그램 가운데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한 편성은 놀랍게도 앞서 언급한 드라마 세 편이 전부다. 그만큼 드라마의 시청률은 절대적이다. 닐슨코리아가 집계한 2015년 지상파3사 프로그램 시청률 상위10개 중 1위부터 9위까지가 연속극 드라마였다.
‘천상의 약속’이 8시27분에 끝나면, 채널은 KBS1TV ‘우리집 꿀단지’로 옮겨간다. 8시24분부터 시작하는 이 드라마는 ‘천상의 약속’이 끝남과 동시에 볼 수 있게끔 절묘하게 편성했다. 8시59분까지 방영되는 ‘우리집 꿀단지’ 시청률은 25.7%로 매우 높은 편이다. 이 드라마의 수혜자는 ‘뉴스9’다. 오후 8시30분 KBS1TV드라마에 익숙한 고령 시청층이 더해지며 드라마와 뉴스 시청률이 동반 상승하는 효과다.
22일자 ‘뉴스9’ 시청률은 19%로 동시간대 1위다. 반면 ‘우리집 꿀단지’ 편성이 없는 주말 ‘뉴스9’의 경우 20일 13.8%, 21일 13.6% 시청률에 그쳤다. 드라마 편성여부에 따라 시청률이 등락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KBS의 메인뉴스 영향력을 뒷받침하는 건 다름 아닌 드라마라는 이야기다.
‘일일드라마 벨트’의 장르적 유사성은 일종의 전략이다. 특정 드라마가 장르적 이질감을 줄 경우, 예컨대 갑자기 JTBC ‘송곳’이나 tvN ‘치즈 인더 트랩’ 같은 드라마가 편성에 나타나면 시청층은 드라마 띠 편성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지상파3사 모두에게 리스크를 주는 셈이다. 더욱 단순하고 자극적인 통속극으로 접근해야 시청률에 유리하다는 경험적 이유도 장르적 유사성의 배경이다. 그래서인지 지상파 일일드라마 시청자는 드라마 제목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루에도 여러 편 비슷한 드라마를 보기 때문이다.
대신 쉽게 이탈하지 않는다. 황성연 닐슨코리아 클라이언트서비스 부장은 “띠 편성의 목적은 시청습관 유지다. 아침-초저녁 드라마 띠 편성은 주부나 집에 있는 시청자를 위한 전략 편성으로 전 세계적 추세”라 전했다. 언제부터 띠 편성이 등장했을까. 이강현 전 KBS 드라마국장은 “처음에는 시간대가 겹쳤지만 각종 시행착오 끝에 겹치는 시간대가 줄어들며 공생의 룰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강현 전 국장은 “10여 년 전부터 이런 띠 편성이 생겼다. 개별방송사 편성으로 볼 때 드라마 편성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주말 드라마에서도 강세는 이어진다. 지난 13일(토요일) 오후 7시55분부터 9시12분까지 편성된 KBS2TV ‘부탁해요 엄마’는 35.5%, 8시45분부터 9시57분까지 편성된 MBC ‘엄마’는 21.1%, 9시59분부터 11시11분까지 편성된 ‘내 딸 금사월’은 34.9%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날 지상파 3사 4개 채널을 통틀어 15% 이상의 시청률이 나온 비 드라마 프로그램은 MBC ‘무한도전’(16.2%)이 유일하다. 드라마 시청률의 위엄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드라마는 지상파3사의 마지막 보루가 되고 있다. 시사교양은 정부의 방송장악 구조로 제작 자율성이 악화되며 정치·자본권력을 비판하는 아이템이 급격히 줄었고, 대신 생활·건강 정보 위주 편성 비중이 늘었다. KBS ‘추적60분’과 MBC ‘PD수첩’은 시청률 3~5%대로 PD저널리즘의 명맥만 겨우 이어가고 있다. 보도는 수년간 공정성 문제가 불거진 상황에서 종편으로 시청자가 옮겨감에 따라 여론집중도가 하락했다. 예능도 종편·케이블 또는 중국 등 해외로 PD들이 이탈하며 주말 간판 예능을 제외하곤 경쟁력을 잃어가는 모양새다. 다른 장르의 경쟁력이 약화되며 드라마 띠 편성의 ‘강세’가 상대적으로 돋보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오직 드라마만 꾸준히 두 자리 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지상파3사를 ‘하드캐리’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시사보도기능이 점점 위축되고 예능 트랜드가 JTBC와 tvN으로 넘어갈 경우 지상파3사는 드라마 PP로만 과거의 영광을 이어갈지 모른다. 황성연 부장은 “경쟁이 심화될수록 지상파는 ‘시그널’이나 ‘응답하라 1988’ 같은 실험적 편성에 나설 수 없다. 시장이 악화될수록 안정적 포맷에 집중하게 되고 다양성은 떨어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지상파3사가 연속극 드라마 시청률에 마냥 웃고 있을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