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24일(현지시간) 강도 높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안에 합의했다. 전투기용 항공유 공급 중단을 비롯, 석탄과 철광석 등 광물 수입 금지처럼 전에 없던 강력한 응징수단이 상당수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근혜정부가 대북제재방안으로 선언했던 한반도 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는 ‘미·중 빅딜설’로 유야무야되는 모양새다. ‘전쟁불사론’을 펼치던 극우보수진영은 당혹감에 빠진 채 미국의 입만 바라보는 형국이다.

미국은 중국의 입장을 감안해 사드 배치에 유연한 입장이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23일 “북한이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나온다면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향신문은 “미·중 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나 인권, 사이버안보 등을 놓고 갈등하지만 세계경제와 양국 간 교역, 기후변화, 이란 핵합의 등 협력할 부분이 더 많다”며 “여러 이슈 중 하나일 뿐인 북한 문제로 양국 간 전략적 협력관계가 손상돼서는 안 된다는 대전제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대전제를 의식하지 않고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사드 배치 논의를 개시하겠다며 중국을 압박했던 박근혜정부의 실정은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


한겨레 1면.
경향신문 1면.
한겨레는 “미국과 중국이 외무장관 담판을 통해 ‘제재 국면의 신속한 마무리와 제재 이후 대화 재개 방안 논의’ 쪽으로 가닥을 잡아, 박근혜 대통령이 개성공단 전면 중단의 근거로 내세운 ‘끝장 대북 제재’에 중국을 동참시키겠다는 압박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오히려 ‘나홀로 강경책’으로 드러난 개성공단 전면 중단으로 123개 입주기업과 5000여 협력업체는 회복이 불가능한 수준의 타격을 입으면서 ‘자해적 제재’라는 우려가 현실화됐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개성공단 피해기업은 3월말 자금압박 위험이 정점에 이를 전망이다.

당장 박근혜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사드 한반도 배치를 놓고 국방부가 미국의 입만 바라보며 끌려 다니는 답답한 국면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국방부가 지난 7일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에 맞서 서둘러 사드 배치를 발표한 이후 3주간 한미 논의는 한 걸음도 못 떼고 있다. 그 사이 미중 양국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에 합의하면서, 사드 배치가 한반도의 안보가 아닌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정치적 협상 카드라는 정황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국과 사드 배치를 담판 지어야 할 판에 상대방의 신호를 기다리며 입장을 정하지 못하는 건 저자세 굴욕외교로 비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신문들은 미묘한 입장차를 보였다. 중앙일보는 26일자 사설에서 “우리만 앞뒤 보지 않고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다 없던 일이 되면 그런 낭패가 없다”며 “북한이 4차 핵실험에 이어 장거리 미사일을 쐈음에도 별 대응수단이 없어 결국 사드 배치 카드를 꺼내야 했던 정부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미·중 고공전 끝에 사드 배치가 유야무야된다면 얻는 것 없이 중국 인심만 잃는 꼴이 된다”고 우려했다. 중앙일보는 “미국이 사드 카드를 신중하게 다룰 분위기라면 우리 역시 이에 맞게 유연하게 대응하는 게 옳다. 바람이 바뀐 줄도 모르면서 불로 치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조언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같은 날 사설에서 “중국은 북에 대한 직접적 무역 제재나 중유 공급 중단 조치 같은 것을 거부했다. 미국도 제재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중국이 꺼낸 북·미 평화협정 같은 얘기에 솔깃해하는 태도를 보였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를 둘러싸고도 석연찮은 조짐들이 보이고 있다”며 미·중 양국을 싸잡아 비판했다. 이 신문은 “이번에도 제재 시늉만 하다가 얼마 안 있어 ‘극적 반전’이라면서 대화 국면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며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망할 수 있다’는 현실을 절감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중의 적극적인 대북제재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이 같은 강경주장은 외려 극우보수진영의 허탈감만 드러내고 있다.

변협 동원해 필리버스터 국면 돌파?

야당이 테러방지법 표결을 막기 위해 3일째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를 이어가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논란이 된 국가정보원의 감청권을 ‘국가 안위’에 관한 사안에만 허용하고 테러방지법을 1~2년 한시법으로 시행하는 중재안을 여야에 전달했으나 여야 모두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영장 없는 감청을 허용한 법안 부칙을 삭제하고 대테러 조사 및 추적권을 국정원에 대신 국무총리실 산하 대테러센터로 이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은 야당의 필리버스터가 선거운동이라고 주장하며 2월 임시국회 종료일(3월10일)이 지나면 곧바로 국회를 소집해 테러방지법을 표결할 수 있는 만큼 수정안으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조선일보 1면.
26일자 조선일보는 야당의 필리버스터 대항마로 대한변호사협회의 ‘테러방지법 찬성’ 의견서를 1면 머리기사에 배치했다. 이 신문은 변협이 “테러방지법은 국가 안보 및 공공안전은 물론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고 타당한 입법”이라 밝혔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변협은 야당이 우려하는 국가정보원의 대테러명목 정보수집 권한남용에 대해 “테러 위험인물이 아닌 자에 대해 조사 또는 추적할 경우 국무총리인 대책위원회 위원장에게 사전 또는 사후 보고하도록 했고 국가테러대책위원회에 인권보호관을 두도록 명시하는 등 인권침해 우려를 해소하는 입법적 통제 장치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변협은 민변과 같은 정치 성향이 강한 단체와 달리, 국내 개업 변호사라면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유일한 법정 변호사 단체”라며 이번 의견서에 권위를 부여했다.


한겨레 10면.
반면 한겨레는 같은 날 “인권보호에 앞장서야 할 국내 최대 변호사단체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독소조항이 있는 테러방지법의 모든 조항에 대해 찬성한다는 의견을 내 파문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새누리당의 요청에 따라 회장을 비롯한 일부 집행부가 내부 의견수렴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의견서를 낸 것으로 알려져 소속 변호사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한겨레는 변협의 의견서를 두고 “테러방지법의 필요성에 대한 여당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소개했을 뿐 인권단체와 야당의 기본권 침해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고 지적했으며 “하창우 변협 회장이 변협의 공식기구인 법제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의견서를 제출해 내부 절차를 어겼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이어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할 변호사단체가 특정 정당의 법안에 대해 섣부르게 의견을 냈다는 비판도 나온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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