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가 많이 안 좋아졌어. 여러 번 탈당하고, 왜 이쪽에 다시 왔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고향이 이쪽이라 되긴 될 거야.”

지난 25일 국민의당에 입당한 정동영 전 의원을 만나러 전북 정읍으로 가는 길에 만난 한 택시기사가 한 말이다. 호남, 특히 정 전 의원이 출마를 시사한 전주 덕진 시민들이 정 전 의원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드러냈다.

25일 오전 기자가 정동영 전 의원을 찾았을때, 정 전 의원은 정읍 황토현에서 열린 국민의당 전북도당 행사에 참여 중이었다. 정 전 의원이 황토현을 선택한 이유는 황토현이 동학혁명의 전적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1894년 전북에서 시작된 동학농민운동이 전국을 뒤흔들었듯이 전북정치, 호남정치의 바람을 전국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나아가 소작료 문제로 시작된 동학농민운동처럼, 국민의당에서도 불공정, 불평등 의제를 놓치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 ‘대중적 진보정당’ 국민모임에서 중도정당 국민의당으로 향했다. 이념적 노선이 바뀐 건가

“진보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점은 변함이 없다. 미국 민주당에서 상원의원 100명 중 오바마 대통령이 가장 왼쪽에 있는 사람이었다. 합리적 진보로서 대중적 진보정당에 함께 하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정의당을 선택했고 나는 독자행보를 해왔다. 국민의당에 힘을 싣는 게 변화를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했다”

▲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25일 오전 전북 정읍 황토현전적지 전봉준 장군 동상 앞에서 열린 국민의당 민생투어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 국민의당의 오바마가 되겠다는 뜻인가?

“내가 참여함으로써 국민의당은 진보적 색채, 왼쪽 날개를 달게 됐다. 국민의당은 강령에서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의 양날개’를 선언하고 있다. 오바마 상원의원이 민주당에서 가장 왼쪽에 있었던 것처럼 나는 국민의당에선 맨 왼쪽에 있다. 왼쪽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라 한국정치의 혁명적 변화, 먹고 사는 문제를 입법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진보는 변화다. 사람들이 국민의당을 찍으면 정치 변화가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역할을 하려 한다”

- 더불어민주당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북한 궤멸’ 발언 등 더민주의 행보 때문인가?

“그것도 그렇고 (내가 비판했던) 더민주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 문재인 전 대표가 물러난 뒤로 당내 계파갈등, 패권주의가 사그라졌다는 말도 있다.

“공천 받아야하니까 잠잠한 것 아니겠나. 4·13 총선 끝나면 문재인 전 대표가 복귀하는 것 아닌가. 더민주는 현실적으로 문재인당으로 결정된 것 아닌가? 김종인 대표는 총선을 위해 한시적으로 당 대표하는 것이고, 실제로 더민주는 문재인당이다. 대중들도 그렇게 받아들인다.”

- 더민주가 문재인당이라 돌아가지 않은건가?

“여러가지가 있다. 더민주 전북 의원 9명이 뭉쳐서 나에 대해 성명을 냈다. ‘복당하고, 전북정치를 떠나시오’라고. 자기들이 할 테니 전북에서 손 떼라는 말을 보고 이 사람들의 기득권을 해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국민의당을) 선택한 계기도 됐다. 더민주에 있으면 이 9명의 당선을 위해 힘써야하는데, 이들을 바꾸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 지금은 삭제됐지만 CBS에서 정 전 의원이 복당 조건으로 더민주에 공천을 요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정 전 의원 측은 더민주가 언론플레이를 했다고 봤는데, 이런 신뢰 하락도 선택에 영향을 미쳤나?

“섭섭했다. 어딘가에서 기획된 것이고 CBS를 이용한 것이다. 이것도 더민주 내부 패권주의의 폐해라고 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자를 제거하는, 쉬운 말로 뒤통수를 쳐서 상대를 꺾는 계파 패권의 폐해가 이런 식으로 나타난 거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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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영 전 의원이 25일 황토현전적지 사무소에서 미디어오늘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 정동영이 더민주에 들어오면 위협을 느끼는 세력이 있다는 뜻인가?

“원치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풍토는 과거에도 많았다. 2010년 지방선거 때 전국에서 1000건 넘게 불복사태가 일어났다. 특정계파가 장난치고 사람 살리고 죽이고,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불공정이 판을 쳤다. 그 속에 음습한 패권이, 계파 패권이 있고 그게 당을 망가뜨린 것이다. 2012년 총선도 마찬가지였다. 다 제가 목격한 것이다. 피해자가 많다. 지금도 바뀐 게 없다.”

- 국민의당에서는 이런 계파갈등이 안 일어날까?

“정당 내의 계파는 불가피하다. 상대를 제거해서 독점적인 지배권을 누리겠다는 패권이 나쁜 거다. 국민의당에 패권은 없다고 생각한다. 열려 있다.”

- 열려 있다는 건 다른 말로 하면 다양한 사람이 섞여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당장 햇볕정책에 대한 입장도 서로 엇갈리지 않나?

“김종인 대표는 당의 대표로서 말하는 것이고 안철수 대표의 생각과 말이 중요하다. 김종인은 북한 궤멸론을 이야기하고 안철수는 포용정책의 계승을 말한다. 안 대표와 대화를 나눌 때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을 거론했다. ‘남북관계에 대해 쓴 부분을 보면 ‘개성공단의 확대 및 포용정책을 계승하자고 나와 있던데 그게 본인의 생각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안대표가) ‘내 생각을 정리한 겁니다’라고 했다.”

- 2월 18일 안 대표를 만나 국민의당 합류를 결정할 때 그런 이야기를 나눈 건가?

“그렇다. 그 다음 이야기는 ‘시대정신’이었다. 시대의 화두는 불평등 해소인데 야당이 원죄가 있다. 참여정부에게도. 그 부분에서 국민의당은 자유롭다. 안철수 대표는 책임이 없다. 문재인 전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을 5년 간 보좌한 입장에서, 청와대 권력 2인자로서 부동산 정책의 실패에 대해, 이런 자산격차를 만들어버린 것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 지난해 12월 18일 문재인 전 대표를 만났을 때도 이런 이야기를 나눴나?

“우리가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때 불평등의 원죄가 있는데 그 점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고 불평등 이야기를 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 꼭 더민주가 아니더라도 정의당 같은 진보정당도 선택지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전북정치를 석권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전북이 한국정치의 중심에 있었으나 지금은 존재감이 미약해졌다. 국민의당을 통해 호남정치를, 호남진보정치를 복원하려 한다. 국민의당 지지율이 왜 떨어졌을까? 보수 우경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합리적 진보의 날개가 되어 호남정치를 복원하겠다는 뜻이다.”

▲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중인 정동영 전 의원. 사진=정민경 기자

- 2015년 4.29 재보선에서도 ‘합리적 진보’를 내걸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거대양당 사이에 낀 한계가 있었다. 그 때 말한 제1야당 교체, 양당기득권 타파의 문제의식은 같다. 당을 탈당하기도 했고 정당을 선택하기도 했지만 생각과 노선은 바뀐 게 없다. 한미FTA 반대 앞장섰고, 한진중공업 희망 버스 앞에 섰고, 또 재래시장 특별법을 만들었고, 개성공단 만들었고. 일관되게 한 길을 걸어갔다. 남북화해와 평화, 평화와 민생노선, 이것이 나의 정치노선이다.”

- 지금 이 시대의 ‘합리적 진보’란 불평등 해소라 보나?

“각론이 필요하다. 얼음같은 구조를 깨려면 바늘이 필요한데, 그 바늘이 ‘공정임금법’이다. 미국에서 1929년 대공황 이후 만든 법이다. 넥타이 매고 사무실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공황으로 한순간에 망치 들고 삽 들고 괭이 들고 건설 현장에서 육체노동을 하게 됐다. 정부가 실직자 구제로 벌인 땜 공사 등 건설사업 현장에서. 그래서 땀 흘리는 노동에 대해 사무실에서 일하는만큼의 대우를 해주겠다고 만든 게 공정임금법이다. 미국은 아직도 정부발주공사에 단가가 다 매겨져있다. 목수는 45달러, 벽돌공은 40달러, 배관공은 50달러 등등. 우리는 정부에서 발주하는 덤프트럭 기사의 하루 일당이 21만원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10만원 받는다. 미장공은 일당이 15만원인데 받는 돈은 11만원이다. 세금으로 하는 일인데 중간에서 누가 떼먹는 셈이다. 이런 관행을 바로잡는 것이 합리적 진보의 가치라고 본다.”

- 호남정치의 복원을 말하는데, 호남에 존재하는 더민주에 대한 반감에 기댄 또 다른 지역주의 아닌가?

“지역주의라는 말이 오도됐다. 미국의 인종주의는 백인 우월주의를 뜻하지 흑인 인종주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지역주의는 영남우월주의다. 지금 호남 중에서 전북 출신 장관이 하나도 없고 사정기관 요직(대표) 가운데 하나도 없다. 전북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대기업 승진, 보직 차별받으니 지역사람들이 얼마나 분노가 크겠나? 그걸 지역주의라고 말하면 안 된다. 영남에서 대통령하면 영남이 요직을 다 차지한다. 우리 사회의 부정의가 여기에 있다. 호남은 나라가 위기일 때마다 희생했다. 동학도 5.18도 호남에서 일어났다. 호남 지역주의가 아니라 호남정신을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호남정신은 민주와 평화, 복지의 가치를 전국화하자는 정신이다. 그럴려면 정권 교체가 필요한데 정권교체를 해야 할 야당이 영남패권주의의 포로가 되어 있다. 그런 야당 가지고 여기도 뭉쳐라? 뭉칠 수 없거니와 뭉쳐봐야 안 된다.”

- 국민의당은 ‘영남패권주의’에서 자유로운가?

“경계해야 한다. 사당화 논란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중인 정동영 전 의원. 사진=정민경 기자

- 본인의 입당을 김대중‧김종필 연대, 노무현‧정몽준 연대와 비교했는데, 이 연대는 야권 지지층을 확대하는 차원이었다. 정동영의 국민의당 입당은 야권분열 아닌가?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앞선 연대는 대선 때 연대였고, 지금은 총선에서 야당을 교체하는 연대다. 층위가 다르다. 정권교체를 위해 더민주의 틀로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거다. 새정치민주연합 1호 탈당자가 정동영이다. 더민주의 근본적 변화를 위해 국민의당을 대안으로 만드는 것이 정권교체의 활로라고 본다.”

- 결과적으로 야권이 분열되면 새누리당에 지고, 정권교체도 물 건너가는 것 아닌가?

“뭐든지 이야기할 때가 있고 주체가 있는데, 지금은 경쟁할 때다. 총선이 임박하면 지도부의 고민이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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