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선거구 획정안과 테러방지법 처리를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 싸움을 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선거 연기 가능성을 제기하며 야당에 필리버스터 중단을 압박했다. 야당은 오히려 여당이 필리버스터 중단에 합의하지 않으면서 선거구 획정안 처리를 막고 있다고 반박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9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정의화 의장께 확인한 결과 야당이 주장한 국회의장 중재안은 없었다”며 “정 의장은 법제실에 부칙을 검토하라고 했을 뿐이라고 확인했다. 야당은 국민을 향해 거짓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원 원내대표는 현재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한 테러방지법이 야당 의견을 최대한 수렴한 안이라며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 하면서 이날 테러방지법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를 중단하고 선거구 획정안과 함께 테러방지법을 처리해야 한다고 야당을 압박했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와 김정훈 정책위의장,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왼쪽부터)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새누리당은 필리버스터가 이미 위법 상황이라고도 주장했다.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필리버스터 쇼는 절차가 무효다. 본회의장에서 사회를 국회의장과 부의장만 볼 수 있도록 한 국회법 10조와 12조를 위반했다”며 “이미 상임위원장과 전직 국회부장단이 의장석에 앉았을 때 무효가 됐기 때문에 즉각 산회하고 표결처리를 하라고 의장에게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약 100여명 이상이 참석한 의원들은 박수와 ‘잘하고 있어’ 등 발언으로 김 정책위의장을 응원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테러방지법에 대해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의원들 명단을 원내에서 마련하고 있다. 곧 사법처리를 할 것”이라도 덧붙였다.

새누리당은 의원 총회가 끝나는 대로 국회 로텐더 홀 앞 계단에서 야당의 국회 입법 마비에 대한 규탄 결의대회를 열기로 했다. 순번을 정해 국회 본회의장 의석을 지키는 것과 함께 본회의장 앞 피켓 시위 등에 이은 야당 압박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정회 후 선거구 획정안을 처리하자는 입장이다. 이종걸 더민주 원내대표는 오후 1시 반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회법) 해석상 테러방지법을 수정하기 위한 시간을 벌고 있는 필리버스터가 양당 합의만 된다면 정회하고 선거법을 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와 한정애 의원, 김영주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이 29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이 원내대표는 “먼저 급한 선거법 처리를 위해서 정회하는데 합의해줄 것을 정식으로 요청한다. 의총 중이라도 찾아가서 최종적으로 이를 통보하고 합의하겠다”며 “정회만 하면, 양당 합의만 허락해 준다면 선거법을 바로 처리하고 다시 필리버스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 드린다”고 밝혔다.

더민주는 약 1시간 반의 비공개 의총을 통해 새누리당에 ‘정회 후 선거법 우선 처리’를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오후 3시10분 경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해석상 필리버스터 진행 중이라도 합의가 있는 경우 정회할 수 있다. 어제 획정위의 내용이 왔으니 선거법이 하루 빨리 신속하게 처리해야 될 필수사항이라고 본다”며 “정회에 합의해서 우선 선거법처리하고 이후에 국회 일정을 진행할 것을 강력히 요청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회 한 후 필리버스터를 중단하고 선거구획정안만 통과시킨다는 것이 가능한지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새누리당은 ‘정회 후 선거법 우선 처리 방안’에 합의해 달라는 야당의 요구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조원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현 상황을 잘 모르는 거 같다”며 “오늘 밤을 넘겨서 선거구 획정안을 의결하지 못하면 그 다음 벌어지는 일은 선관위도 장담 못하겠다고 한다. 선거 연기를 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며 자정 전 의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반면 더민주는 ‘국회법 100조’에 따라 ‘선거법 우선 처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국회법 100조는 “의원의 발언 도중 다른 의원의 발언에 의해 정지되지 않고 산회 또는 회의 중지로 발언을 마치지 못한 때에는 다시 그 의사가 개시되면 먼저 발언을 계속하게 한다”고 규정한다.

▲ 시민들이 2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진행되는 필리버스터를 방청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이 원내대표는 “절차와 규정이 없어서 혼란스럽긴 하지만 일반적인 국회운영원칙을 준용하면 충분히 정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디어오늘이 지난 26일 국회 의사과에 문의한 결과 의사과는 무제한토론에는 국회법 100조를 적용할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의사과 관계자는 “100조에 의한 토론 중단은 일반적으로 밤 12시가 넘어 회의 차수를 변경해야하는 경우 의원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사용해온 조항”이라며 “이번 필리버스터는 토론 중단 자체가 완결로 보기 때문에 100조를 연결 지어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더불어민주당의 이런 결정은 선거법 처리를 오히려 여당이 발목잡고 있다는 공세를 위한 포석으로 봐야 한다. 이 원내대표는 “적절한 절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제한 토론과 선거법 사이에서 ‘모 아니면 도’의 선택을 강요한다는 것은 적절한 주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선거 관련 절차가 사실상 다 마무리돼 ‘본회의 처리’만 남았다는 점도 이런 입장을 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원내대표는 의총 모두발언에서 “선거구 획정안은 법적으로 수정할 수 없게 돼 있기에 사실상 확정된 것”이라며 “여당이 더 이상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서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것은 국민들이 용서할 수 없다는 것 스스로 깨달아야한다”고 밝혔다. ‘본회의 처리’라는 형식적 절차만 남았는데도 새누리당이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 새누리당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더민주 한 관계자는 “의사국은 필리버스터 중단-속개가 안 된다고 한다. 다만 양당 교섭단체 대표들이 합의하면 될 수 있는 거냐는 이야기를 지난 번 김무성 대표도 잠깐 꺼낸 적이 있었는데 쑥 들어갔고, 여야 합의하면 할 수 있다는 취지”라며 “수석부대표들끼리는 논의해본다고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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