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큰 TV가 필요 있을까. 가격도 가격이지만 웬만큼 거실이 넓지 않고서는 들여 놓을 수도 없지 않을까.” UHD(초고해상도, ultra high definition) TV 무용론을 말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다. “어차피 그 정도 해상도, 사람이 인식하지도 못한다. HD 화질이면 충분하다.”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한참 떠들던 3DTV 실패한 걸 봐라.” 이것도 익숙한 레퍼토리다. 결국 가전제품 제조사들의 마케팅 상술일 뿐이라는 냉소적인 평가가 뒤따른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웬만한 스마트폰이면 이미 풀HD 화질을 구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해상도가 단순히 화면 크기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애플 아이폰5s는 640×1136픽셀의 해상도를 지원한다.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채택한 애플 뉴아이패드는 2048×1536픽셀까지 지원한다. 보통 풀HDTV라고 하면 1920×1080픽셀을 지원하니까 9.7인치 크기 뉴아이패드만 해도 풀HDTV보다 해상도가 높다는 이야기다.

삼성전자 갤럭시S4는 해상도에서 아이폰을 크게 앞지른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에는 갤럭시노트3가 4K 동영상 촬영을 지원한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4K는 화소가 HD의 4배, 4000픽셀 이상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직 표준이 확립되지 않았지만 3840×2160, 또는 4096×2160픽셀을 4K로 친다. 최근에는 7680×4320픽셀의 8K도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4K 또는 8K가 가전사들이 말하는 UHD 화질이다.

최근 공개된 애플의 새 PC 운영체제 OSX 매버릭스 개발자 버전에는 무려 5120×2880픽셀의 배경화면이 포함돼 있다. 이를 두고 애플이 4K를 넘어 5K를 지원하는 모니터를 출시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기도 했지만 일단 9월 신제품 발표에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4K가 실용화된다면 TV 보다는 PC가 먼저일 거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모니터와 거리가 훨씬 가깝고 그만큼 화질의 차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4K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TV와 영화관 화면을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요즘 나오는 HDTV는 1280×720픽셀을 지원하는데 영화관 화면은 1920×1080픽셀로 상영된다. 영화관 화면이라고 해봐야 화면 크기만 클 뿐 해상도는 결국 풀HD 수준이라는 이야기다. 요즘은 풀HDTV도 많이 보지만 지상파 디지털 방송이 1080p가 아니라 1080i 규격으로 전송돼서 720p로 변환되기 때문에 풀HDTV를 구입해도 풀HD 방송을 볼 수는 없다.

1080i의 i는 비월주사방식(interaced scanning)의 줄임말이고 1080p의 p는 순차주사방식(progressive scanning)의 줄임말이다. 비월주사방식은 홀수줄과 짝수줄을 번갈아가면서 보여주는 방식이고 순차주사방식은 한꺼번에 보여주는 방식이다. 식별하기는 어렵지만 당연히 1080p가 훨씬 높은 해상도다. 지상파 디지털 방송은 1080i 규격, 블루레이 디스크는 1080p 규격이다. 그러니까 영화관에서 보는 화면이 블루레이 수준의 해상도라고 보면 된다.

언뜻 해상도가 높을수록 좋다고 생각하겠지만 해상도와 시청거리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3m 정도 떨어진 거실 TV와 20m 이상 떨어진 영화관 화면의 해상도가 비슷하다고 느끼거나 손바닥 안의 스마트폰이 영화관 화면보다 더 선명하다고 느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말은 곧 시청거리가 멀어지면 해상도가 일정 수준 이상 높아져도 구별하기 힘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영국 BBC 연구결과에 따르면 시력 1.0의 일반인은 20피트(대략 6.1미터) 떨어진 곳에서 시야각 1도에 60개의 픽셀을 구분할 수 있다. BBC는 풀HDTV의 경우 3미터 거리에서 75인치 미만 화면에서는 해상도가 더 높아져도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4K 해상도의 TV라면 시청거리가 더 좁혀지거나 화면이 훨씬 더 커지지 않는 이상 화질의 차이를 느끼기 어려울 거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단순히 화면 크기나 화소 수 보다 화소 밀도가 더 중요하게 될 거라는 견해도 있다. 아이폰의 화소 밀도를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아이폰3GS까지는 3.5인치 화면에 화소 밀도가 165ppi였다. 1인치 안에 165개의 픽셀이 들어간다는 의미다. 아이폰4는 같은 화면 크기에 326ppi로 화소 밀도가 높아졌다. 써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듯이 아이폰3GS와 아이폰4의 선명도는 천지차이다. 화질 경쟁은 스마트폰에서 먼저 불이 붙었다.

도현우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4K 해상도를 제대로 즐기려면 TV 사이즈가 최소 100인치 이상으로 커지거나, 시청 거리가 1미터 안팎으로 줄어들어야 한다”면서 “가격도 문제지만, 폼팩터의 크기와 두께 측면에서도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TV 시청에 최적의 시야각이 30도 정도라고 보면 시청 거리가 3미터 이상이 돼야 편안하게 느낄 텐데 상당한 넓이의 거실이 아니면 그 정도 거리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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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연구원은 “TV 시청거리가 줄어들려면 TV에 터치 기능이나 모션 인식 등의 기능이 추가되거나 스마트 기능이 현재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수준으로 확보되고 콘텐츠가 확충이 돼서 TV를 능동적으로 시청하는 패턴이 확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높은 해상도만으로 시청 패턴이 바뀌기는 기대하기 어렵고 휴대폰 시장에서의 아이폰과 같은 혁신이 TV에서도 필요할 거라는 이야기다.

김종대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4인치 스마트폰에서는 HD 이상의 해상도를 눈으로 구분하기가 어렵지만 5인치부터는 HD와 풀HD의 차이를 쉽게 체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애플은 300ppi가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화소 밀도라고 보고 레티나(망막) 디스플레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김 연구원의 설명에 따르면 스마트폰에서는 440ppi까지, 태블릿PC는 291ppi까지, 그리고 TV는 55ppi 수준까지 식별할 수 있다.

이런 계산에 따르면 5인치 화면의 스마트폰은 1920×1080픽셀까지, 10인치 태블릿PC는 2540×1430픽셀까지 84인치 TV라면 4030×2270픽셀까지 유의미하다. 김 연구원은 “42인치 TV에서는 풀HDTV와 UHDTV의 차이를 거의 인식할 수 없지만, 65인치 이상의 TV에서는 그 차이가 확연히 느껴진다”면서 “인간의 눈으로 식별 가능한 한계 수준에 거의 다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고해상도 경쟁이 끝났다고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박성규 미래방송연구회 부회장은 “UHDTV 무용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시청자들의 눈높이와 기대수준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이폰5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아이폰4 화면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HD와 풀HD를 넘어 UHD 화질로 가는 건 TV의 진화 과정에서 필수 불가결한 변화라는 이야기다. 박 부회장은 “UHD 화질의 지상파 방송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예비 주파수 대역 확보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상파 방송 뿐만 아니라 케이블과 위성방송 등도 UHDTV 시대를 맞아 콘텐츠 개발에 분주한 모습이다. 반짝 유행으로 끝났던 3DTV와 같은 길을 걷게 될 거라는 냉소적인 시각부터 스마트폰에서 촉발된 고화질 경쟁이 N스크린 서비스의 확산과 맞물려 자연스럽게 TV로 옮겨갈 거라는 진화론적 전망까지 다양한 견해가 엇갈린다. 3DTV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전송속도는 기본이고 무엇보다도 콘텐츠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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