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이 기사를 게재하면 언론사에 수백만원에서 수억원의 돈을 주는 행태가 드러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광고나 협찬을 통한 것이 아니라 우호적인 기사를 돈으로 직접 사는 행태라는 점에서 농협과 언론사 모두 도덕적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현재 농협경제대표이사인 이상욱 대표가 이 같은 행태를 발판삼아 이례적인 파격 인사의 주인공이 되고 언론사가 주는 광고인 대상까지 받았다는 의혹이 일면서 논란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5년 동안 농협 기사 써주는 언론사에 90억여원

민주당 배기운 의원실이 입수한 농협의 2008년 이후 연도별 홍보관련 예산 현황과 기획보도 자료 사본, 광고비 집행 내역 등을 분석한 결과 농협이 돈을 주고 언론사가 기사를 써주는 형식의 기획보도 사업에 한해 많게는 30억원이 넘는 예산이 집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자료에 따르면 농협은 지난 2009년 ‘기획보도’ 예산으로 5억7400만원을 집행했다. 기획보도 예산은 2010년 14억3900만원으로 예산이 늘더니 2011년에는 34억2500만원으로 급격히 상승했다. 이어 2012년 17억 8200만원, 2013년 16억1200만원이 기획보도 예산으로 집행됐다. 지난 5년 동안 무려 90억원에 가까운 돈이 언론사가 농협 입장을 대변한 기사를 써준 대가로 집행된 것이다.

2012~2013년 기획보도 비용 집행 내역을 보면 각 언론사별로 기획기사를 써주고 얼마를 지불했는지를 알 수 있는 상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기획보도를 하고 돈을 받은 언론사는 경제플러스, 경향신문, 주간경향, 국민일보, 내일신문, 농민신문, 동아일보, 주간동아, 신동아, 머니투데이, 세계일보, 아시아투데이, 아주경제, 연합뉴스, 오마이뉴스, 이코노믹리뷰, 인간개발연구원, 일요신문, 조선일보, 조선매거진, 중앙일보, 파이낸셜뉴스, 파이낸셜투데이, 포브스, 한겨레 신문, 한국경제, 한경리크루트, 한국일보, 주간한국, 헤럴드 경제, 그린경제, 노컷뉴스, 뉴시스, 머니위크, 세계닷컴, 스포츠한국, 시사경제매거진, 연합이매진, 영문월간외교, 위클리오늘, 이데일리, 이코노미스트, 중앙일보, 월간중앙, 코리아타임즈 등이다. 집행금액은 작게는 2백2십만원(파이낸션투데이)부터 많게는 2억2천만원(조선일보)의 돈이 기획보도 명목으로 언론사에 제공됐다.

농협이 기획보도 명목으로 언론사에 예산을 집행하면 그 결과는 농협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사로 결과물이 나왔다. 예를 들어 지난 1월 30일 내일신문은 <올해 농작물재해보험 판매중단 위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손해율이 180% 초과하면 정부가 보상하기로 한 농작물재해보험이 적자가 사상 최대로 위기에 직면해 있다면서 손해율이 150% 초과하면 정부가 모두 책임지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상세히 소개했다. 정부에서는 예산 때문에 추진하기 어려운 방안인데 이에 농협이 기사 형태로 정부를 압박한 셈이다.

농협과 거래를 맺은 언론사에 대한 책임 문제도 제기되지만 정작 농협 관련 기사를 쓴 기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한 기자는 자신이 쓴 기사가 돈으로 거래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 광고국 및 데스크와 마찰을 빚었다고 털어놨다.

기획보도뿐만 아니라 언론사가 먼저 나서 농협에 자사 행사 비용을 협찬 형식으로 요청해 수억원의 돈을 지원 받은 사례도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1월 30일 <'자본주의 4.0 : 따뜻한 자본주의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제3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를 개최한다며 행사장 조성 및 행사 운영에 필요한 예산 지원을 농협에 요청했다.

그리고 2월 조선일보의 요청 내용 공문을 접수한 농협은 '조선일보 협찬 추진'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통해 조선일보의 요청 내용을 수용했다. 농협은 협찬금액으로 조선일보가 무려 10억을 요구했지만 2억 5천만원으로 협찬 금액을 정했다고 밝혔다. 행사 소개 기사를 조선일보가 게재할시 농협로고가 표시되고 행사장내 시설 및 인쇄물에 농협로고가 표시되는 조건이다.

농협은 협찬 추진 공문에서 "매체 영향력이 가장 큰 조선일보 주관 행사로서 광고효과가 매울 클 것으로 기대"한다며 "국내 최고의 영향력을 보유한 조선일보와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행사 지원 필요"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언론 대응, 이상욱 농협농업경제·경제지주 대표이사 작품?

농협의 기획보도를 전제로 한 공세적인 홍보 예산 집행 배경에는 특정 인물과 무관치 않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 2010년 농협은 기획보도 추진 명목의 예산으로 10억4천여만원을 집행했는데 바로 다음해 2011년 20억 이상이 늘어난 34억3천만원을 해당 예산으로 집행했다. 전체 홍보관련 예산도 2010년 141억원이었던 것이 2011년에는 244억으로 껑충 뛰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홍보관련 예산 실무를 맡은 인물은 이상욱 농협 농업경제 대표이사다. 이상욱 대표이사는 당시 농협 홍보실장을 맡으면서 언론사를 상대로 한 기획 보도를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자연스럽게 관련 예산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상욱 대표이사는 또한 특정 언론사의 광고대상까지 받으면서 농협과 언론사의 거래가 '상'으로 이어졌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농협은 지난해 6월 16일, 7월 27일, 11월 2일 세차례에 걸쳐 1억7천5백여만원을 기획보도 예산으로 한국경제에 집행했다. 한국경제는 축산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농협의 역할을 홍보하는 기고문과 기사 등을 실었다. 그리고 그해 12월 14일 한국경제는 기획보도 추진 실무 책임자였던 이상욱 농협중앙회 홍보실장을 자사 광고인 대상으로 선정했다. 농협과 한국경제의 인연은 2013년에도 이어졌다. 지난 1월 31일, 2월 26일, 3월 4일, 5월 10일, 7월 24일 6회에 걸친 기획보도 대가로 농협은 한국경제에 2억 3천여만원을 지급했다.

광고계 관계자는 "당시 이 홍보실장(상무)이 광고인대상을 받은 것을 보고 놀랐다"며 "홍보실장 직급이 광고인 대상을 받은 것은 광고계에서 거의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 2012년 기획보도 비용 집행 내역 문건과 농협중앙회 조선일보 협찬 추진 공문 내용.
 

특히 2011년 농협 해킹사태, 2012년 농협 신경(신용사업·경제사업)분리 추진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당시 이상욱 홍보실장이 언론사를 상대로 기획보도 사업을 공세적으로 추진하면서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의 호위 무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7년 취임한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은 2011년 재선에 성공했는데 당시 이상욱 홍보실장의 역할이 컸다는 얘기도 농협 내부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이 대표이사는 올해 6월 홍보실장에서 농업경제 대표이사로 발탁되는 파격 인사의 주인공이 됐다.

당시 서울경제는 관련 보도에서 "주목할 인물은 농업경제 대표에 내정된 이상욱(55) 상무. 이 내정자는 이번 인사로 ‘농협 최연소 대표이사’라는 타이틀을 꿰찼다. 내부에서도 ‘파격’으로 받아들여진다"며 "대외적으로 폭넓은 네트워크도 이 내정자의 강점으로 꼽힌다. 2011년 홍보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 내정자는 정관계와도 두터운 인맥을 쌓으며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에게 크게 신임을 얻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농협 내부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동지상고 5년 후배인 최원병 농협 회장이 이명박 정부 코드 맞추기에 나섰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농협 신경분리는 내외부의 반발이 많은 사안이었고 2017년까지 하기로 돼 있었지만 이 대통령 임기 내에 추진해 2012년 완료되는 과정에서 홍보 대외 업무를 맡고 있었던 이상욱 농업경제대표이사가 최 회장의 ‘호위 무사’ 역할을 했다는 것이 지배적인 평가다.  
 
이상욱 대표이사가 현재 농협경제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데도 여전히 농협 중앙회의 홍보 관련 업무에 관여하고 있는 정황도 발견됐다.

민주당 배기운 의원실은 농협중앙회 홍보실에 2008년 이후 광고비 및 홍보예산 상세 현황 자료를 요청했지만 농협중앙회는 요청한 자료가 방대하고 인력이 부족하다며 일부 자료만 보낸다는 내용의 경위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경위서에는 홍보 업무 최고책임자로서 이상욱 농업경제대표이사가 자신의 이름을 '확인자'로 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취재결과 이 대표이사는 지난 8일 농협이 신용사업에 치중하면서 유통 및 판매사업에 소홀히 하고 있다는 KBS 시사기획창의 보도에 앞서 농협홍보실과 정보를 공유하면서 언론 대응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농협 중앙회 이재식 홍보실장은 1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홍보와 관련된 이상욱 농업경제대표이사의 역할에 대해  "이 대표가 농협 중앙회 홍보실장을 하고 6월에 대표로 취임한 후 언론사의 관계에 있어 대응할 여력이 없어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 홍보실장은 이상욱 대표가 2011년 홍보실장으로 오면서 기획보도 예산이 늘어나고 파격적인 승진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2011년 농협창립 50주년과 2012년 농협 신경 분리라는 큰 이정표를 앞두고 반대하는 세력이 많았고 적극적으로 설득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농협 전산 사태라는 실추된 명예를 복원하기 위해 예산을 전년도에 편성한 것이고 이 대표는 이후 홍보실장으로 온 것"이라며 "이 대표는 최원병 회장 임기 전 직원 시절부터 발탁 승진이 될 정도로 훌륭한 인사"라고 전했다. 이상욱 대표이사는 몸이 불편해 통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농협, 기획보도 큰 문제 없다

농협 홍보실은 문제로 지적된 기획 보도와 관련해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농협 홍보실은 지난 10월 4일 배기운 의원실로 답변을 보낸 '농협 기획보도 건'이라는 문건에서 "기사협찬은 행사협찬이나 광고협찬에 비해 비용이 적으면서도 홍보효과가 크기 때문에 많은 기업에서 저비용고효율의 동 방법을 선호한다"며 "기획보도는 과장이나 호도함이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내용으로 기업체가 하고 싶은 얘기를 기사화하여 독자들의 오해 없이 판단하도록 한다"고 밝혔다.

이 홍보실장은 "언론사들이 요구하는 부분도 있다. 농협은 공익적인 사업을 많이 하는데 언론에 잘 노출이 되지 않고 있어 그런 부분에 대해 기사로 홍보하는 것이 효과가 좋다는 취지"라면서 "하지만 앞으로 문제가 된다면 오해가 없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기운 의원은 “농협중앙회는 농민들의 소득 안정과 복지 확대는 물론 농업 경쟁력 강화에 매진해야 함에도 언론사에 기사 보도를 대가로 수십억원을 쏟아 붓는 것은 설립취지를 망각한 것”이라며 “(하지만)농협중앙회는 이와 관련해 ‘기획보도’를 대가로 언론사에 현금을 지급하는 것은 대부분의 기관에서 이뤄지고 있는 일종의 관례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을 경우 언론사는 보도조차 해주지 않는 다면서 자사의 홍보 행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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