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유플러스의 IPTV와 인터넷 등을 설치하는 한 노동자는 두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다. 소속 회사에서 월 150만 원을 주고, 정체 모를 다른 회사에서 50만 원을 받는 식이다. 그는 1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급여를 투명하게 주지 않고, 인센티브가 어디서 나오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는 ‘3달 동안 홈보이 영업실적이 없으면 사장 면담 뒤 퇴사 처리한다’고도 압박해 한 달에 3일 쉬는 것도 힘들다”고 전했다.

SK그룹의 IPTV 서비스를 제공하는 SK브로드밴드의 간접고용 노동자들도 마찬가지. SKB의 한 센터 노동자의 임금 명세서를 보면 ‘정규직 급여항목’과 ‘사업소득 항목’이 나눠져 있다. 급여는 150만 원 수준이고 사업소득은 100만 원 수준이다. 두 회사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지난달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진짜 사용자’ SKB와 유플러스를 교섭 테이블로 끌어내는 게 노동조합의 목표다.

15일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에 따르면, 두 회사의 프로모션 관련 문건 등을 보면, 협력사는 본사가 시행하는 프로모션을 노동자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SKB는 CSI평가라는 자체 평가시스템으로 최대 10만 원을 차감한다. 6개월 평균이 95점 미만일 경우 보직을 전환한다. 일반민원 발생시 5만 원, 불만VOD 발생시 10만 원을 차감하고, 48시간 개통율이 67% 미만일 때 5만 원을 차감, 품질불량이면 건당 5천 원을 차감한다. 유플러스는 월별로 영업건수를 할당하고 미달시 건당 3~5만 원을 차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8가지 작업과정 중 하나라도 잘못된 경우, 건당 30만 원을 차감하는 업체도 있다.

SKB와 유플러스는 전국에 각각 91개, 70개의 센터를 두고 이를 다단계 하도급으로 운영하고 있다. 서비스업 특성상 본사가 협력업체에 개입하는 수준이 일반 제조업보다 심해 ‘불법파견’ 가능성이 높다. 특히 통신망 영업을 하는 SKB와 유플러스의 경우, 각종 프로모션을 협력사에 할당하고, 협력사는 노동자들에게 이를 강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두 회사 협력업체는 노동자들과 ‘노동자+개인사업자’라는 변종 고용계약을 맺거나 변칙적인 방식으로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 시간외 수당, 휴일근무 수당 미지급 등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도 여럿 있다.

사장이면서 노동자? “변종계약 배경은 SKB”

SKB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임금 명세서를 보면 이들은 사장이자 노동자, ‘근로자영자’다. 은수미 의원은 “이 같은 기형적 고용구조가 만들어진 핵심적인 이유는 원청업체가 인센티브와 페널티라는 실적 중심의 프로모션을 하청업체에게 강요하고, 하청 업주들이 이러한 경쟁구조의 위험을 노동자들에게 그대로 전가하면서 결국 기사들에게 노동자가 아닌 ‘사업자’의 지위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유플러스 일부 센터의 경우, 직원에게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 입사 시부터 4대 보험 미 가입을 희망”하는 확약서를 받았다. 은수미 의원은 “이들을 종속적인 노동자 지위에 두면서도 4대 보험 및 노동법상 책임을 회피하는 형태로 노동을 착취해왔음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플러스는 본사 콜센터가 접수한 민원을 협력업체 모든 기사들에게 문자를 보내 작업을 지시하는 등 ‘불법파견’ 정황도 있다.

특히 SKB의 경우,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선제적인 조치를 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SKB는 지난해 삼성전자서비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 뒤 협력사에 공문을 내려 보내 ‘명함’을 바꿀 것을 지시했다. 이전 명함에 협력사 이름이 없다면 바뀐 명함에는 SK브로드밴드 옆에 협력회사 이름이 적혀 있다. 불법파견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조치를 취한 것. SKB 관계자는 “노동법 가이드라인에 어긋나지 않게 업무요청을 했다”고 해명했다.

칼자루 쥔 원청 SK LG “협력사 노사관계, 개입할 수 없어”

두 회사는 노동법 준수, 노동조건 향상 같은 노동조합의 요구는 협력사 노사가 풀 문제라는 입장이다. SKB 관계자는 “협력회사 근로조건이 열악해져서 서비스 질이 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그런 입장에서 보면 우리도 안타깝지만 그러나 직접적으로 협력사에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며 구체적인 조치를 내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서비스 질 문제가 있어 본사가 가이드라인 같은 것을 챙기지만 노사 문제에는 관여하지도 관여할 수도 없다”며 “고객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여러 가지 노력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플러스는 서면 답변에서 “유플러스는 독립법인인 협력사들의 경영 자율권을 보장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라고 밝혔다. 유플러스는 다만 “협력사 처우 및 보상 체계에 문제가 있다면 노동조합이 협력사 대표들과 교섭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개선해나갈 것”이라면서도 “협력사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 협력사 대표들의 의견을 수렴해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유플러스는 ‘프로모션 페널티’에 대해 “장려금 정책은 협력사에 수수료를 추가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페널티 정책과 전혀 관련이 없다”면서도 “협력사 자체적으로 페널티 정책을 운영하는지 확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변칙적인 임금 지급 방식에 대해 유플러스는 “협력사 경영에 개입하지 않는 유플러스가 협력사들이 회계 처리를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없으며 문제가 있다면 관련 기관에서 처리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삼성서비스식 폐업 대응 가능성도 드러나

“협력사 노사문제”로 선을 그었으나 삼성전자서비스 식으로 노조 설립에 ‘계약 해지’, ‘폐업’ 등으로 대응할 가능성도 있다. 경기지역 한 SKB 센터 관리자는 최근 한 노동자에게 “6월 (SKB와) 재계약이잖아요. 큰 센터 같은 경우 (SKB가) 거의 새로 만들어서 가든가. 우리 센터 같은 경우 새 주인을 찾으라고 내려오겠죠. 노조 설립이 새로 돼야 해요”라고 말했다. 한 업체 대표도 “노조가 결정이 되잖아? 센터 계약해지야, 본사에서. 애들이 센터에다가 총대를 돌리고 있다고”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박성식 대변인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것을 우선 시정해야겠으나 근기법 위반의 근본적인 배경은 대기업에 만연한 간접고용”이라고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원청 대기업이 사용자 권리를 해태하고 소규모 영세업체에게 비용과 책임을 떠넘기기 때문에 불공정 고용관계가 생기는 것”이라며 “책임 있는 단위가 사용자 책임을 지고 정상적인 고용관계, 노사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수미 의원은 “고용노동부가 지난 ‘2007년 근로자파견 판단지침’ 이후 서비스 산업에서 속속 등장하는 변종고용에 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하고, 나아가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파견에 대한 수시감독에서 면죄부를 주는 등 국민들의 고용안정을 등한시한 가운데 ‘근로자영자’라는 변종 괴물이 탄생했다”고 지적했다. 은 위원은 노동부에 서비스 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파견 판단지침을 수정하고, 두 회사에 대한 수시 근로감독을 실시한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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