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는 15일 “사건 당시의 시대적 상황만으로 정부가 동아일보사에 언론인 해직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진실로 인정하기는 무리가 있다”며 “해직 사건과 정권의 요구 사이에 관련성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기에 과거사위의 결정은 잘못됐다”고 밝혔다. 언론민주화운동의 출발점이었던 동아일보 대량해직사태가 정부의 언론탄압과는 별개의 일이라는 판결로, 향후 논란이 불가피하다.
재판부는 1975년 당시 박정희 독재정부가 동아일보 기자·PD·아나운서 등의 해고를 요구했다는 객관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를 들며 1974년 정부의 광고탄압사건 이전에도 경영진과 기자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기 때문에 경영진의 자체 판단으로 해고했을 동기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 동아일보 16일자 12면. | ||
이 신문은 이어 “동아일보 해직사태는 1974년 10월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며 시작됐다. 당시 중앙정보부가 광고주를 압박해 동아일보에 광고를 하지 못하도록 했고 국민의 성금과 격려 광고로 연명하던 동아일보사는 재정위기 때문에 100여명의 기자를 해임 또는 무기 정직 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보도했다.
김종철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위원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39년 간 우리의 일관된 주장은 당시 박정희정권이 중앙정보부를 통해 동아일보 사주 김상만과 경영진에 압력을 가해 언론인 113명을 해고했다는 것”이라며 법원 판결에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 1975년 3월17일 새벽 동아일보 사주측이 동원한 술 취한 폭도들에게 강제 축출되기 직전 편집국에서 마지막 ‘자유언론 만세’를 외치는 기자들과 사원들. 사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 ||
앞서 2008년 과거사위는 보고서를 내고 1974년 광고탄압사건 뒤 직원들이 경영상 압박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감봉을 결의했던 점과 재야인사들이 임금 지원을 제안했으나 경영진이 거절한 점, 1980년 언론통폐합 당시 보안사 등이 작성한 문서에 동아일보 해직언론인을 ‘위해요인자’로 분류해 재취업을 봉쇄한 점 등을 근거로 “정부의 적극적인 간섭과 개입 없이 개별 언론사 임의대로 기자들을 해임시켰다고 보기 어렵다”며 동아일보의 사과 및 피해보상을 권고했다. 당시 동아투위는 성명을 내고 “참으로 오랜 기다림이었다”고 환영하며 동아일보사의 사과를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