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 KBS가 3일로 6일째 파업을 계속하고 있다. 파업은 길환영 사장이 공영방송을 청와대의 지시를 받는 “청영방송”으로 전락시켰다는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폭로가 도화선이 됐다. KBS 노조는 지난달 28일 공영방송의 위상을 이렇게 타락시킨 길 사장의 거취 문제를 찬반 투표에 붙였다. 그 결과 노조는 94%의 압도적인 다수로 길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그가 물러날 때까지 파업을 계속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길 사장은 청와대 개입 사실을 부인하며 사퇴를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파업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파업에는 평기자 뿐 아니라 주요 간부들까지 대거 참여했다. 전례 없는 일이다. 국민의 불신과 지탄 대상으로 전락한 KBS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전 직원의 분노와 결의가 행동으로 분출한 인상이다. 공영방송을 이렇게 타락시킨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의 표출로도 보인다.

이명박 정권에 이어 박근혜 정권은 공영방송 KBS를 권력의 도구로 악용했다. 우리는 권언(權言)유착과 방송통제가 혼합할 때 민주주의가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KBS 사태를 통해 생생히 보아왔다. KBS의 침몰 현상은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고발이 있기 전에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길 사장이 아무리 부인해도 그의 말을 믿을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방송 통제는 독재정권 신드롬이다. 러시아의 푸틴정권, 프랑스의 사르코지 정권, 미국의 아들-부시정권에서 우리가 목격했고 지금도 목격하고 있는 정치의 추태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의 방송(TV)탄압은 그 정도가 심하다. 더구나 불법선거로 집권한 사실이 문제가 되고 있는 권력이 방송 통제를 정권 보호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어 더욱 부도덕해 보인다.

미국의 조지워싱턴대학 유러시아문제 연구소 부소장이며 국제민주주의연구포럼 집행간사인 로버트 오어퉁 교수는 학술지 ‘민주주의 저널’에 발표한 장문의 논문에서 “독재적인 정권은 그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미디어 통제전략을 강구한다”고 갈파하고 있다.

이태리의 베를루스코니는 텔레비전을 정권 장악의 도구로 이용한 악명 높은 기업정치인이다. 그러나 이태리는 야당에도 공영방송 RAI의 채널 하나는 배정하고 있다. 집권당이 방송을 독식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방송은 보수진영 독점이나 다름없다. 민주주의 언론정책의 기본원칙인 미디어 다원화에 역행하는 현상이다. 더구나 정권을 잡은 집권당의 공영방송 장악은 언론자유 언론독립 원칙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 후보도 선거공약에서 방송의 공공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시인하고 이 문제의 해법으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하고, “방송법 개정”을 약속했던 것 아닌가 싶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1년4개월이 되는 지금까지 방송 공약 실천에 관해 전혀 언급이 없다. 그러고는 청와대 비서진을 통해 보이게 보이지 않게 방송에 간섭해 왔다.

프랑스에서는 언론이 대통령 후보들에게 방송정책을 꼭 묻는다. 민주국가에서는 최고 권력자의 언론관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시절 발표한 언론 공약을 모른 채 하고 있다. 이제 방송공약을 실천해야 한다. KBS 파업은 방송공약을 실천하지 않아서 터진 문제다.

우리와 몇 달 차이로 대선을 치르고 대통령이 된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도 방송정책을 여당이 좌지우지할 수 있게 돼 있는 방통위 구성을 개정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달리 올랑드 대통령은 취임 1년반 만에 공약대로 방송법을 개정해 비민주적인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고쳤다. 한국 언론단체들이 주장해 온 것과 내용이 거의 같다.

우선 대통령의 공영방송 사장 임명권을 폐지했다. 대신 공영방송 사장(3명-프랑스 텔레비전, 프랑스 라디오, 프랑스 세계미디어. 임기 5년)은 방송위원회(CSA)에서 선발하게 했다. 방송위 위원수는 9명에서 7명으로 줄이고 상원과 하원의장이 각각 3명씩 지명한다. 대통령은 더 이상 3명의 위원을 지명하지 않고 방통위 위원장만 지명한다. 방통위원은 상하 양원 문화위원회에서 5분의 3 다수결로 임명하고 해임 조건도 같게 했다. 따라서 여야 지명 위원 간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사안에 대해 표결하면 여당 안이 항상 채택되게 돼 있는 폐단은 사라지게 됐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공영방송 사장은 5년 임기가 보장되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임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사르코지 정부 때 임명된 공영 텔레비전방송(France Television)사장 레미 프렘렝은 2010년 8월에 임명됐기 때문에 정권이 사회당으로 바뀌었어도 5년 임기가 끝나는 2015년 8월까지 유임한다. 이명박 정권의 방통위는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정연주 KBS사장을 몰아내기 위해 갖은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이런 일은 프랑스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진정한 공영방송의 전통을 확립하겠다는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방송 공약 실천은 우리에게 아주 좋은 귀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영방송을 정권의 도구로 이용해 온 이명박 정권의 꼼수들을 이제 접고 프랑스 올랑드의 공영방송 모델을 귀감삼아 KBS가 진정한 공영방송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지배구조 개혁을 실천하기 바란다. 그래서 KBS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높이는 공영방송 본연의 역할에 전념할 수 있게 하기 바란다. 그러면 MBC도 공영방송의 궤도에 다시 올라설 것이고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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