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사회가 지난 5일 정권의 보도통제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된 길환영 사장 해임안을 가결시켰다. 하지만 앞으로 갈 길이 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주로 구조 개혁과 보도통제 의혹 규명이 필요하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선 정권의 입김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KBS 사장 선임 구조를 개혁하는 문제다. KBS 양대노조와 기자협회가 외쳤던 ‘길환영 사장 퇴진’ 구호는 ‘청영방송(청와대가 경영하는 방송)’을 가능케 하는 구조를 이제는 바꿔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사장 후보를 뽑는 KBS 이사회는 여권 7명, 야당 4명의 추천으로 구성된다. 다수결로 의결되기 때문에 KBS 사장은 정권의 압력에 취약한 인물로 선임될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과제는 청와대의 KBS 보도통제 의혹을 규명하는 것이다.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세월호 참사 보도에 대한 청와대 개입을 폭로한데 이어 장영주 CP도 사내 게시판을 통해 길 사장이 <심야토론> 아이템에 대해 사사건건 개입했고, 지난해 논란으로 떠오른 MC 교체에도 길 사장이 연루돼 있다고 폭로했다.

   
▲ 제작거부를 선언했던 KBS기자협회
이치열 기자 truth710@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언론단체와 KBS 기자협회는 길 사장과 7일 사임한 이정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방송법 제4조 2항 위반으로 고발,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길 사장은 세월호 참사 국회 국정조사에서 모든 진상을 밝히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6일 KBS <뉴스 9>는 KBS 구성원들이 풀어야할 또 다른 과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제대로 된 방송뉴스다. 길환영 해임안이 통과되자 KBS 양대노조는 6일 오전 5시로 파업 종료를 선언하며 현장으로 복귀했고, 기자협회도 제작거부를 중단했다. 6일 <뉴스9>는 청와대의 KBS 장악에 대해 맞선 기자들이 복귀 후 첫 제작한 뉴스였다.

이에 대해 매우 냉담한 반응이 나왔다. 주로 이날 <뉴스9> 톱뉴스 '연휴 시작 나들이객 ‘북적’…곳곳 정체 극심'에 대한 평가였다. 한 트위터리안은 “KBS 노조 제작거부+파업의 단초는 세월호 참사였다. 어제 방송복귀하면서 9시뉴스 첫꼭지가 연휴나들이객이어야 했습니까? 뉴스신뢰도 1위로 등극했다는 JTBC는 팽목항이었습니다. 당신들 아직 멀었다는 생각 떨칠 수 없네요”라고 남겼다.

다른 트위터리안은 “MBC는 기대도 안한다. 하지만 KBS에서는 파업의 진정성이 있다면 김장훈씨의 세월호 진상규명운동 인터뷰도 하고 보도해라”고 남겼다. 가수 김장훈이 참석한 세월호 유족들이 나선 진상규명 서명운동 등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보도를 통해 규명하라는 말이다. 

   
▲ KBS 6일자 <뉴스9> 톱뉴스
 
파업복귀 첫 뉴스에 대한 냉소적인 평가는 일반 시민들의 반응만이 아니다. 심석태 SBS 기자(전 언론노조 SBS본부장)는 자신의 SNS에서 KBS 톱뉴스에 대해 “조금 당황스러웠다”는 의견을 남겼다. 

심 기자는 “정말 국민들이 세금에 준하는 (그래서 준조세라고 부른다) 수신료를 내서 운영하는 공적인 방송이 만드는 뉴스라면, 민주주의 사회를 운영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가장 합당한 것 아닐까”라며 “그렇다면 어제까지 파행 뉴스로 제대로 전하지 못한 6.4 지방선거 관련 분석이나, 아니면 KBS를 파행으로 이끌었던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차분한 사실과 분석보도가 오늘 뉴스의 첫머리에 배치되었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지적했다.

물론 KBS는 <뉴스 9>에서 길 사장의 해임과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자세히 다뤘다. 예전 같았다면 상상할 수 없는 보도였다. KBS는 뉴스 후반부에 배치된 리포트 'KBS 이사회, 길환영 ‘해임안 의결’…이유는?'에서 “그런 상황(해임)이 초래된 것은 청와대를 비롯한 정치권의 보도 개입이 길 사장을 통해 계속됐다는 증언이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나온 다른 리포트에서는 “길환영 사장 건을 계기로 KBS 사장 선임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날씨 뉴스에 대한 가치 판단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파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KBS 한 기자는 “당일 발생 현안을 챙기는 뉴스도 있지만 취재 기간이 필요한데 복귀 첫날이다 보니 깊이있는 뉴스가 나가기 어려운 구조였고 정상적인 방송시간을 채우데 비중을 뒀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톱뉴스가 날씨 뉴스였다는 비판이 나오는데 편성의 가치에 대한 판단이 다르다. 날씨 뉴스는 정권이 방송을 장악했기 때문에 첫머리에 나왔던 것도 아니고 내부에서도 날씨뉴스에 대한 판단은 엇갈린다. (하지만 방송 장악과 상관없이)KBS는 주말에는 날씨 스케치 뉴스를 많이 내보냈고 6일 뉴스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었다”고 말했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도 했다. 이 기자는 “공영방송 구조를 갖추기 위한 파업과 제작거부였기 때문에 차근차근 취재된 내용을 정권의 방해와 간섭없이 방송하는 모습을 지켜봐달라”고 했다.

   
▲ 권오훈 언론노조 KBS본부장
 
하지만 KBS 뉴스가 비난의 대상이 된 이유는 정권에 불리한 이슈는 피하고, 날씨뉴스를 몇 꼭지에 걸쳐 전하는 것으로 대충 뉴스 시간을 때우며 스스로 ‘관영방송’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MBC ‘동물 뉴스’와 함께 KBS 날씨뉴스는 불공정방송과 정권에 장악된 방송의 상징으로 다가왔다. 

국민들은 청영방송을 탈피해 ‘뉴스다운 뉴스’로 되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며 KBS 파업을 지지했다. 이는 KBS 기자들에게 단순히 청와대 간섭을 벗어날 뿐만 아니라 예전과는 다른 ‘제대로 된 뉴스’를 보여달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KBS 사장이 바뀌고 지배구조가 바뀌는 것보다 어떤 뉴스가 <뉴스9>에 나오는지가 국민들에게는 KBS 정상화의 척도로 다가올 것이다.

이런 면에서 국민들의 반응과 심 기자의 비판은 KBS 기자들에게 세번째 과제를 던지고 있다. 심 기자는 “지금까지 다른 방송은 정치적 상황에 대한 불가피한 고려나 복잡한 안팎의 사정 때문에 그런 뉴스를 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KBS 뉴스를 보면서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정치적 상황과는 무관하게, 그렇게 뉴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고 비판했다.

KBS기자들은 시간이든 사안에 대한 가치 판단이든 앞으로 제작될 뉴스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를 피할 수 없다. MBC를 봐도 알 수 있든, 지지를 보냈던 방송사에 대한 평가는 보다 혹독하다.“당신들 아직 멀었다”는 평가가 “이럴 거라면 도대체 왜 파업했나”라는 평가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공영방송 뉴스 제작에 대한 KBS 기자들의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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