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을 꿇고 가족들에게 진정으로 참회할 주체는 누구입니까. 국민들입니까 국가입니까. 참사의 책임은 정부에 있다는 것이 저희들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오늘 실종자 가족들은 무릎 꿇은 국가가 아니라 국민을 봤습니다.” (실종자 가족 대리인 배의철 변호사)

세월호 100일을 앞둔 23일 시민 200여명이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을 찾았다. ‘기다림의 버스’ 탑승객들이다. 기다림의 버스는 지난달부터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운행돼왔다. 그러나 실종자 가족들과 직접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23일 오후 8시께 진도체육관에 도착해 실종자 가족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실종자 가족 역시 무릎을 꿇고 마주 앉았다.

기다림의 버스를 타고 수차례 진도를 찾았던 한 탑승객은 “매주 금요일마다 버스를 탔지만 차마 가족들을 볼 용기가 없었다”며 “유족들은 단식을 하고 특별법은 진전이 없고 어제는 난데없이 유병언도 나타나고. 정말 미칠 지경이다. 여기 계신 가족들은 얼마나 답답하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가족들이 허락해주신다면 체육관에서 자며 함께 지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단원고 학부모인 한 단원고 실종자 가족은 참가자들에게 “편하게 앉으라”는 말부터 했다. 그는 “정부와 국회의원들이 하는 걸 볼 때 저희는 잊혀지지 않을까 싶어 많이 위축돼 있었다”며 “이제 그만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데, 그런 말 한마디가 칼로 찌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저희는 뼛조각 하나 찾아서 발인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 뿐”이라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 세월호 100일을 앞둔 23일 시민 200여명이 '기다림의 버스'를 타고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을 찾았다. 사진=이하늬 기자
 
   
 
 
그는 이어 “천안함 사건을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까 다르다. 모두가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일”이라며 “여러분이 남의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와주셔서 정말 고맙다. 이렇게 많이 오실 거라고 기대도 안 했다. 국민들은 아직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은 편안하게 잠 들겠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실종자 가족과 이야기를 끝낸 기다림의 버스 참가자들은 오후 10시께 팽목항으로 향했다. 이들은 팽목항에서 ‘100일의 기다림, 100일의 약속’ 촛불문화제를 열고 추모 공연, 시낭송 등의 행사를 이어갔다. 조용하던 팽목항이 오랜만에 사람들로 가득 찼다. 체력 등의 문제로 실종자 가족들은 문화제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안산 등에서 온 유가족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박봉주 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장은 “100일입니다. 연애하는 청춘들의 기념일, 부모와 아이들이 만나 여는 생애 첫 기념 행사로만 알았던 그 100일”이라며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100일에 촛불을 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는 100일 동안 수많은 다짐과 약속을 했지만 이뤄진 것이 거의 없다”며 “국민들의 힘으로 특별법을 하루 빨리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현철, 박영인, 조은화, 허다윤, 황지현, 고창석, 양승진, 권재근, 이영숙. 문화제를 끝낸 참가자들은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며 “돌아와. 잊지 않을게. 끝까지 기다릴게” 라고 외쳤다. 이어 이들은 팽목항 등대길에서 실종자들의 귀환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색색의 풍등을 날려 보냈다. 안산시민대책위에서 온 한 참가자는 “실종자 가족들의 기약 없는 기다림이 굉장히 힘들 것 같다”며 “많은 분들이 가족들과 함께 한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의철 변호사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참가자들에게 꼭 약속을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가족들은 계속 탈진을 하고 수액을 맞고 그러다 잠이 듭니다. 그러다가도 가족을 구하기 위해 다시 일어서서 바지선을 타고 회의에 참가합니다. 그간 가족들은 너무 많이 속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꼭 지켜주십시오, 저도 비록 한 명의 변호사이지만 이 자리를 떠나지 않겠습니다.” 

   
▲ 세월호 100일을 앞둔 23일 시민 200여명이 '기다림의 버스'를 타고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을 찾았다. 사진=이하늬 기자
 

   
▲ 세월호 100일을 앞둔 23일 시민 200여명이 '기다림의 버스'를 타고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을 찾았다. 사진=이하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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