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노동조합들이 EBS 이춘호 이사장과 신용섭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방송사 지배구조 개선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KBS·MBC·SBS 지상파3사, 지역방송협의회, EBS, CBS, OBS 등 전국 방송사 노동조합으로 구성된 방송노동조합협의회는 24일 EBS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감사원이 밝힌 비리혐의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 낙하산 이사장, 구성원과 시청자의 항의에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낙하산 사장. 오늘날 EBS의 경영진이 보이고 있는 행태는 시청자가 아니라 오직 임명권자만을 보고 갈 수밖에 없는 폐단, 다시 말해 취약한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전형적인 단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EBS 이춘호 이사장은 감사원으로부터 관용차를 사적으로 유용해 EBS에 1억1천만원 가량의 손해를 입혔다는 지적을 받고 구성원들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았다. 신용섭 사장은 일산 통합사옥 이전 문제로 갈등을 빚었고, 최근 경영 전반에 대한 불신임투표에서 구성원 84%가 불신임한다고 밝혀 역시 사퇴 요구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사회 및 경영진은 내부 여론에 대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방송계 안팎에선 결국 문제의 근원에 공영방송사 지배구조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BS 사장 임명권은 방송통신위원회가 가지고 있다. 신용섭 사장은 EBS를 관리하는 방통위 상임위원이었지만 임기 도중 EBS 사장으로 임명돼 ‘MB 마지막 낙하산’이란 비판을 받았다. EBS 이사회 구성 역시 방통위 권한이다. 공영방송사 이사회와 사장 임명권이 모두 정부 기관인 방통위에 있는 셈이다.

KBS 이사회는 여야로부터 각각 7명, 4명을 추천받아 여권 추천 이사들이 다수인 의결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역시 여야로부터 각각 6명, 3명을 추천받아 여권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방노협은 “문제의 핵심은 정치적으로 독립된 지배구조를 만드는 일”이라면서 “대통령은 대선공약을 이행하고 국회는 즉각 논의에 착수하라”고 촉구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현재까지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방노협 구성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현 공영방송사 지배구조를 비판하며 개선이 시급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성주 방송노동조합협의회 위원장(언론노조 MBC본부장)은 “방송이 제 위치를 잡고 정부에 대한 감시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면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이 세월호 사고를 두고 교통사고라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며 이는 방송이 처한 암담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이런 상황에는 (정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방송사 지배구조의 문제가 있고 EBS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면서 “수많은 보도 개입을 바로잡아 보겠다고 하는데 대량징계를 받고 싸우다 부당해고된 사람들이 복직 판결에도 돌아오지 못하고, 회사가 판결을 왜곡 해석을 하는 상황 역시 모두 지배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의 싸움은 구조에 대한 싸움이고 방송법을 바꾸는 싸움”이라고 말했다.

   
▲ ⓒ조수경 기자
 
권오훈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싸우지 않는 방송사 사업장이 없다는 현실은 결국 방송을 장악할 생각도 없고 장악할 수도 없다고 공언했던 박근혜 정권이 이런 폐단을 바로잡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한송희 전국언론노조 EBS지부장도 “감사원과 방통위 모두 이춘호 이사장의 관용차 사적 유용에 대해 배임죄로 고발하기는 곤란하지만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사회와 경영진은 아전인수격으로 이사장이 이 문제에서 벗어난 것처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감사원은 ‘이춘호 이사장의 업무상 배임의 고의성 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형사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밝혔고,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지금까지 조사된 내용으로는 고발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EBS는 지난 21일 “본 사안은 감사결과 주의요구로 처분 종결된 사안”이라면서 “지난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사장은 감사과정에서 인정되지는 않았으나 공사 발전을 위한 통합사옥추진, 수신료 현실화, 공사 재원 안정화 등 다양하고 왕성한 대외활동을 수행해 왔고 직원 복리향상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면서 이춘호 이사장을 옹호했다.

한송희 EBS 지부장은 “신용섭 사장은 ‘방통위 인사(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EBS에 온다’고 말해 임명 자체가 문제였던 사람”이라면서 “EBS가 ‘방통위원의 자리를 해결하는 기관인가’라는 자괴감이 들며 결국 공영방송 지배구조와 연결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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