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내 나이는 마흔이다. 철이 없어서인지 내가 아직 젊다고 생각해서인지 나는 아직 죽음을 실존의 불가피한 귀결로 받아들이는 것을 생각해 보지도 경험해 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 아직 소멸의 무거움을 감당할 만한 마음의 힘이 없는 것이다. 아니 외면하면서 살아 왔던 것이다. 

그러니 나의 삶 속에서 생각하는 죽음에 대한 개괄적 느낌은 '누구나 다 예외 없이 죽어야 한다'는 보편적인 종말 정도였다. 지금껏 나는 개별적이고도 구체적인 죽음에 대해서는 깊게 사유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이 나이까지 죽음이란 말의 정의를 인문화하였을 뿐이지, 그 말 안에 담긴 깊이와 경건성, 나아가 인간의 언어와 사유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무한함을 애써 외면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이런 나에게 죽음에 대하여 아주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새롭게 생각하도록 만든 사건이 벌어졌다. 세월호 침몰. 너무나 충격적이고 야만적인 사건…. 가라앉는 배와 더불어 전해지는 이 허무의 절박함 속에서 신문과 방송이 전하는 죽음의 소식은 우리 모두에게 너무 가슴 아픈 가혹한 현실이었다.

방송을 통해 보이는 세월호 안에서 삶과 죽음은 배와 함께 가라 앉아 버렸다. 아이들의 웃음과 희망도,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삶을 이루던 그 모든 것이 같이 가라앉아 버렸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그 이후에 생겨났다.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법과 한점의 의혹도 없이 모든 것을 규명하겠다던 대통령의 약속은 부도나서 휴지만도 못한 수표 조각이 되었고, 박근혜 정부가 보여준 비겁하고 몰인간적인 행태는 세상에 그들의 수준을  보여주었다. 

   
▲ 상황을 묻는 중국 관광객들에게 세월호 침몰 사고를 설명하는 박유선 프로듀서
 

희생자들을 교통사고에 빗대 폄하하고, 유가족을 함부로 대하며 말을 바꾸는 그들의 태도는 자신들이 국민들을 딱 그만큼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은 지배와 통치의 대상이지 같이 더불어 사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7시간'으로 대변되는 대통령의 비밀은 그들의 가장 중요하고도  포괄적인 욕망의 문화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정부관계자들과 새누리당 사람들도 대통령이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대부분 모를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그것을 감추려고 애쓰는 것은 본능적 행위일 것이다.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려는 치졸한 행동은 역설적으로 더욱 더 그 욕망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합리적 의심과 문제제기를 하는 국민을 관음증의 성도착증 환자로 치부해버리는 상상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아무도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 없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답답한 건 누군가 설령 책임지겠다고 말한다 해도 그렇게 원통하게 희생된 아이들과 희생자가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는 잔혹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왜 유가족들은 진실을 원하는가?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아이들이 왜 희생되어야만 했는지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그러한 일들을 저지르고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처벌함으로써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국민이 이제 세월호사건을 피곤해한다”는 협박은 이른바 국민을 민주주의의 여론주체로 존중하는 척 하면서 바보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도덕이 무너지면 그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붕괴된다. 만약 ‘유가족들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  ‘나머지 국민들의 세금으로 자식장사를 하려고 한다’는 등 국민들을 현혹시키는 여론조장을 통해 쟁점을 혹세무민적으로 정치화해서 그들이 바라는 대로 정치적 승리를 이끌어 낸다고 하면, 이 사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사회가 될 것이다.

   
▲ 박성미 프로듀서가 현장에서 만든 중국어 피켓
 

이제는 국민의 소리를 제발 좀 들었으면 좋겠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올해 마흔 살이다. 공자가 이야기한 불혹의 나이다. 불혹이라함은 세상의 유혹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공자처럼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서 여러 유혹에 자주 흔들린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63세이다. 이순을 지났다. 이순이라 함은 귀가 순해져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하는 나이라는 뜻이다. 나는 훌륭한 우리 대통령은 공자의 기준에 다다랐을 것이라 믿는다. 국민이 이렇게 세월호 진실을 알고 싶어 외치고 있다. 이렇게 이해하기 쉽게 말하고 있다. 듣기 싫어 안듣는 것이라면 대통령의 직무유기일 것이며 만약 귀가 어두워 안들리는 것이라면 내가 보청기하나 사드릴 용의가 있다. 대통령이 국민의 요구를 귀가 어두워 듣지 못한다면 말이다. 

진실이 먼저 있은 후에 의견이 있을 뿐이다. 진실이 여론을 이끌어 가는 세상이 민주주의 국가이다. 여론이 진실을 뭉개 버리고 왜곡하는 세상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제발…. 이제는 광장으로 나와서 국민의 소리를 듣기를 희망한다. 아니면 청와대로 보청기 하나 택배로 보내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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