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가 또다시 여론의 중심에 섰다. 

온라인에서 여성 비하 게시물로 비난을 받았던 일베는 최근 법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위법 논란을 일으키는데 그치지 않고 거리로 직접 나와 정치적인 주장을 하고 나섰다. 

익명을 전제로 온라인에서 '끼리끼리' 문화를 형성해 배설하듯 욕을 하고 상대방을 조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 문제에 대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일명 '일밍아웃'(커밍아웃에 빗대 현실에서 일베 회원임을 드러내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베 회원들이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을 찾아 폭식 투쟁을 벌인 것은 일베의 진화(?)를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성과 전라도 지역에 대한 비하를 남성인권과 지역 특혜로 포장하며 스스로 자위했던 그들이 이제는 욕 먹을 각오를 하고 거리로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선 그 어떤 이유가 됐든 최근 일베의 행태를 그냥 방치하기에는 폐해가 크다고 지적한다.  

실제 명예훼손의 법적 처벌 정당성과 별개로 일베 회원들의 도를 넘은 게시물은 최근 범죄의 영역에 접근하면서 처벌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일부 일베 회원은 5. 18 민주화운동을 벌이다 고인이 된 시민들을 능욕하다가 고소 고발을 당했고, 이들은 5. 18 묘역을 찾아 용서를 빌었다. 그것이 채 한 달이 되지 않는다. 세월호 희생자를 성적으로 비하했던 인터넷 방송 사회자도 법적 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일베 회원들은 처벌 가능성이 있는 범죄행위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가벼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례로 5. 18 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를 ‘택배’에 비유했던 다수의 일베 회원들은 명예훼손 처벌 대상은 특정인을 모욕했을 때 해당된다며 관련 게시물의 법적 처벌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해외에서 게시물을 올릴 경우 법적 처벌을 피할 수 있다고 충고하는 등 법망을 피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드러냈다.

   
▲ 일베 사이트에 올라온 전라도닷컴 홈페이지 해킹 캡쳐 사진
 

최근 전라도 지역의 문화를 심층 보도하는 전라도닷컴을 해킹하는 사건도 일베의 소행으로 의심되고 있다. 일반 사이트도 아닌 언론사 사이트가 해킹돼 수많은 콘텐츠가 사라져버린 일은 심각한 사안이다. 하지만 일베 회원들은 스스로 범죄 행위를 고백하는 게시물을 올리는가 하면 해킹 당한 사이트의 모습도 올렸다.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고 ‘놀이’로 보고 있는 단적인 예라고 지적한다. 

일베 회원들의 행태가 알려질수록 폐해가 생길 수 있고, 차라리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언론도 법적 처벌 가능성이 많은 일베의 행태를 모른척 할 수만은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일베 사이트에 올라온 게시물들이 보수 우파의 주장과 보수 언론 보도의 근거가 되는 일이 많아지면서 일베가 여론 확산의 중심에 서고 있다는 점이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연합뉴스 기사 댓글에 유민 아빠의 외삼촌이라고 밝힌 사람의 진위 여부를 밝히려고 했던 것도 일베 게시물의 영향이 컸다. MBC 박상후 전국부장은 일베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뉴스 리포트에 삽입하려다 논란을 빚었고, 김시곤 전 KBS보도국장은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비유했던 일베의 게시물과 비슷한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 일베 회원들이 5. 18 민주화운동을 비하하면서 근거로 드는 북한군 개입설은 종편을 통해 보도됐다.
 
특히 일베 회원들이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폭식 투쟁을 벌이면서 ‘애국 보수’로 나선 일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일베 회원들이 폭식 투쟁을 예고했을 때만 해도 농성장을 방문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이들은 인터넷 생중계를 앞세워 직접 행동에 돌입했다. 지난 13일  세월호 유족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광화문광장에 모인 보수 대학생 단체 회원들과 일베 회원들은 200여명에 달했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가 애국 보수 우파 포털로 키우겠다며 만든 수컷닷컴도 일베 회원들과 함께 ‘행동대장’으로 나서고 있다. 일베가 자발적인 커뮤니티라면 수컷닷컴은 보수 논객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위한 창구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사이트인데, 실제 거리로 나와 보수 우파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젊은 층을 온라인으로 끌어들인 뒤 거리로 뛰쳐나오는 ‘전사’를 양성하고 있는 셈이다. 일베 사이트보다 우파적 색깔을 분명히 하면서 직접 행동까지 펼칠 수 있는 세력을 결집시키겠다는 변 대표의 의도가 이번 세월호 참사의 폭식투쟁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의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재특회)의 회원들을 만나 <거리로 나온 넷우익>이라는 책을 썼던 아스다 고이치는 “그들이(재특회)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시위와 집회 중심의 직접행동 노선을 취했던 것은 아니다”며 특정 보수 우파의 ‘리더’를 만나면서 거리의 선동꾼이 됐다고 분석했다.

아스다 고이치는 “그들(재특회) 대부분은 사회로부터 거절당한 아픔을 알고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 이해받거나 공감을 얻지 못한다”면서 “그래서 타자에 대한 적개심을 그로테스크한 운동에 집중시킬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재특회'의 집회 시위를 “추악한 사회운동”이라고 비판했다. 

한편에선 일베 회원을 젊은 보수층의 목소리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일베 등 20대 우파들은 아직 희망이 있다. 이제 막 우파 운동이 형성되어 조악하고 유치하긴 하지만 기본적인 시시비비를 가릴 줄은 안다”며 젊은 보수 우파로서 일베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하지만 일베 회원들은 정치 조직화 가능성에 대해선 섣부른 진단이라고 지적했다.

일베에 접속해 게시물을 보고 있다는 A(26)씨는 “일베 회원들은 극단적인 재미를 추구하는데 이번 세월호 폭식 투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베 회원들이 페이스북에서도 공동 주제로 모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몇 번 행동을 한 뒤 재미를 못 느끼면 폭식 투쟁을 끝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A씨는 “세월호에 대한 불만이 장기화되고 자유대학생연합과 청년보수연합 등 우파 청년 단체를 토대로 조직화돼서 이번 폭식 투쟁에 모인 것”이라며 “보수 인사들의 활동이 일베 회원들의 직접 행동에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지난 6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단식농성장 근처에서 '폭식 집회'를 벌인 일베 회원들. 사진=금준경 기자
 

A씨는 폭식투쟁에 대해 “세월호 유족을 비하하는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없지만, 밥 한번 먹자고 할 수도 있고 막을 수 있는 근거도 없다”며 “일베 내부에서도 잘못됐다는 의견도 있고, 저 역시 극단적으로 행동이 표출된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굳이 해야 했나, 법리상 문제는 없지만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베의 내면을 분석해 <일베의 사상>이라는 책을 쓴 박가분씨는 1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폭식투쟁이라는 것은 명확한 대안을 가진, 주의 주장이 아니라 정치 혐오를 기반으로 해서 세월호 유족이 순수성을 잃었다라는 내용의 퍼포먼스에 가깝다”며 “일베 회원들이 '일밍아웃'의 위험을 감수하고 거리로 나온 것은 새로운 현상이지만, 이들이 어떤 종류의 국가나 사회를 요구하는 것이 없고, 그저 정치 선동에 휘둘리는 게 싫다고 하는 행태를 봤을 때 과거와 본질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박씨는 “일본 사회의 '재특회'는 재일특권을 빼앗아야 한다는 뚜렷한 목표의식과 강령이 있었다”며 “아직 그런 단계는 아니지만 일베는 정치적 구심점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다. 카리스마적 개인이 나오고 타깃을 한정해 거기에 대한 프로그램과 의제를 내세운다면 파시즘적인 집단으로 변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보수 우파 인사들이 정치혐오를 조장해 일베 회원들의 정치 집단화 여건을 만들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폭식투쟁은 정치 집단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보다는 불안정하고 방향성을 잃은 젊은이들의 정서와 정치 혐오의 정도가 얼마나 강고한 것인지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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