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화제가 된 것은 거장들이나 신예들의 작품이 아니었다. 본질이 아닌 면들이 더 화제가 됐다. 사실 화제라기보다는 논쟁들이었다. 이런 논쟁들은 아직도 부산국제영화제의 취약점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게 했다. 동시에 부산국제영화제가 지켜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도록 했다.

우선, 여배우들 노출 문제가 화제였다. 몇 년 전부터 부산국제영화제 하면 노출이 연상되었다. 이를 의식해 조직위 측은 올해부터 여배우들의 노출을 통제하겠다고 밝혔다. 언제부터인가 레드 카펫의 붉은 빛이 '19금'을 상징하게 됐기 때문이다. 조직위는 그동안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연매협)가 신인여배우를 추천하고 그 여배우들이 노출을 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밝혔다. 하지만 올해에는 횡령 등의 비위가 발생한 연매협 측이 손을 떼고 있기 때문에 신인 여배우 노출을 통제할 수 있다고 조직위 측은 밝혔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노출은 신인여배우들의 인지도가 낮았기 때문에 레드카펫을 통해 대중적 홍보를 하려 한 결과였다. 이 때문에 발생한 가장 큰 문제는 정작 작품 출연으로 초대된 여배우들이 외면당했던 점이다. 물론 부산국제영화제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이런 '행위들'이 늘어난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레드 카펫 행사가 유명해진 것은 무엇보다 SNS를 통한 파급력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았다. 

   
오는 10월 2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되는 2014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홍보물
 

부정부패가 존재하는 연매협이 부산국제영화제를 ‘들었다, 놨다’ 해온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신인여배우 노출논란은 연예기획사의 매니지먼트가 어떻게 국제영화제의 운영과 이미지 형성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상징적 사건'이 됐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콘텐츠와 그것을 만들고 즐기는 축제이기에 영화와 관계없는 배우들을 홍보하는 마당이 되는 것은 본질이 아니었다. 영화에 출연하지 않은 신인여배우가 주목받도록 하는 연매협의 조치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애초에 신인 여배우를 눈요기 차원에서 부각하는 것이 타당한지 검토하고 제어할 수 있어야 했다. 연매협 탓만 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았다. 어쨌든 부산국제영화제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낸 사례임에 분명했다.

다음은 예매 시스템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부터 전년과 다르게 현장발권이 아니라 앱을 통해 예매를 시작했다. 또한 파이어폭스, 사파리 등 다양한 브라우저 사용을 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때문에 신속하고 편리하게 예매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영화제의 또 다른 묘미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 예매의 성공이 주는 기쁨에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기쁨은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한꺼번에 몰려든 이용자로 인해 인터넷 예매 시스템이 과부하로 먹통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조직위측은 사과를 해야 했다. 먹통이 된 이유로 아이돌 그룹 엑소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엑소의 멤버가 출연한 영화 예매를 위해 엑소 팬들이 대거 몰렸기 때문이다. 아이돌 인기에 부산국제영화제도 휩쓸려 버린 셈이다.

디지털 환경에 맞게 서비스를 편리하게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화 관객들이 불편을 겪지 않게 하는 일은 더 중요하다. 비록 불편해도 현장 예매는 경쟁을 통해 성취하는 기쁨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매 시스템의 먹통은 아예 이를 불가능하게 했다. 영화 자체 보다 아이돌 그룹 때문에 예매 시스템이 불능이 됐다는 건, 부산국제영화제 예매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 지 알 수 있는 '사건'이었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에서 가장 크게 논란이 된 건 <다이빙 벨>이었다. 첫 포문은 서병수 부산시장이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 구조 현장에 투입된 다이빙벨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 상영이 불가하다고 밝혔다. 이어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도 이 영화 상영을 격하게 반대했다. 사실 부산국제영화제라는 문화예술행사에 자치단체장이 발언을 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정치인이 특정 영화에 대해 상영이 금지되어야 한다고 밝힌 것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재정적 취약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산국제영화제는 60억 원의 예산을 부산에 의존하고 있다. 그 60억 원 가운데 25억 원은 아직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예산을 지원하는 지자체장이 상영 불가를 요청한다면 부산국제영화제 측에선 상당한 부담이 될 법하다. 재정지원 주체의 압박 사태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는 이미 광주비엔날레 사례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 스틸컷
 

상영 금지 요구는 야만적인 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다. 표현과 예술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상영하기도 전에 영화의 소재 때문에 상영을 금지하는 것은 더욱 야만적이다. 더구나 티켓은 이미 모두 판매된 상태다. 이를 취소하는 것은 관객에 대한 모독이다. 조직위는 일단 상영을 예정대로 하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실제 그렇게 될지 우려스럽다. 영화에 대한 판단은 관객이 하는 것이다. '외부의 목소리' 때문에 영화 상영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조직위 말대로 부산국제영화제가 자리를 잡은 것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영화 상영의 약속이 지켜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부산국제영화제는 여러 요인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지만, 영화 상영 자체가 중단된 적은 없다. 제일 중요한 것은 표현과 예술의 자유를 지켜내는 것이다. 영화제에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서병수 부산시장과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영화제에 대한 기본 상식이 없는 셈이다. 무엇보다 한번 훼손된 이미지와 가치는 회복되지 않는다. 국제영화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는 국가와 지역의 브랜드 가치 상승을 위해 엄청난 돈을 부산국제영화제에 투입해왔다. 하지만 외압으로 영화의 상영이 취소된다면, 이런 노력들을 한 순간에 무용지물로 만들 것이다. 영화상영 취소의 영향이 부산국제영화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이빙벨>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지 못한다면 한국은 '영화예술 탄압국가'라는 이미지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아니 이미 그런 상영금지요구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를 만들고,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축제의 마당이다. 이외에 다른 목적들은 걷어내야 한다. 자유와 다양성, 진실이라는 세계인의 가치,  그 중심에 있는 국제영화제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