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베 엘르(Courbé Elle) 하나 들어왔어. 그것도 빨리 최대한 해줘야 해요. 2주면 될까? 스노우맨도 추가해줘요. 15인치는 그대로 가고.”

휴대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렸다. 제작 주문에 대한 얘기가 휴대전화 너머로 오갔다. 이제는 엄연한 ‘사장님’이다. MBC에서 해직된 박성제 기자는 ‘사장님’이라는 호칭이 아직 어색하다. “이쪽에서는 사장님이라고 불려요. 그런데 어색해(웃음). 기자, 노조위원장, 사장, 직함이 다양한데 그래도 후배들이 ‘박 선배’라고 불러줄 때가 가장 기분 좋더라고.”

끄물끄물 흐렸던 29일 오전, 서울 양재동 쿠르베 청음실을 찾았다. 박성제 기자가 차린 ‘PSJ 디자인’ 사무실이자 그가 만드는 스피커 ‘쿠르베’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쿠르베는 Curved(‘곡선의’, ‘흰’, ‘굽은’ 뜻을 지닌 영어단어)의 프랑스 발음이다. 박 기자가 만든 스피커의 핵심 콘셉트 ‘곡선’을 함축한 단어다. 

   
▲ 박성제 MBC 기자.
 

박 기자는 2007년 3월부터 언론노조 MBC본부장을 맡아 2년 임기를 채웠다. 에 대한 정부와 검찰의 공격, 미디어법 투쟁 등 굵직굵직한 현안에 박 기자는 선봉에 섰다. 현업 기자로 돌아갔던 지난 2012년, 그는 MBC에서 해고됐다. 사유는 ‘사내 질서 문란.’ 최승호 PD(현 뉴스타파 앵커)와 함께 얼토당토않는 사유로 해직언론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기물을 파손했다거나 그랬다면 백번 양보해서 그러려니 할 텐데…. 해고 사실도 타 매체 기자들을 통해 알았어요(웃음). 당시 이진숙 기획홍보본부장(현 보도본부장)이 인사위에서 조선일보 사진과 CCTV 사진을 제시하면서 ‘이 사진들에 다 나와 있지 않느냐’며 파업(2012년 170일 파업)을 주도했다는 식으로 말을 하더라고. 김재철 사장은 나와 최승호 PD를 노조 파업 배후라고 생각했을 거에요. 그렇게 신동아와 인터뷰도 했고. 2008년 김재철 사장이 처음 MBC 사장에 지원했을 때, 노조에서 청와대에 줄 댄 인물은 절대 안 된다고 성명을 냈어요. 그때 나에 대한 원한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

   
▲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쿠르베 청음실. 쿠르베는 디자인 만큼이나 섬세하면서도 웅장한 사운드를 자랑한다. (사진 = 김도연 기자)
 

박 기자가 스피커를 만든다는 얘기는 화제였다. 일각에서는 취미겠지, 하다 말겠지 라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나 그는 하이엔드(High-End) 스피커 ‘쿠르베’를 직접 제작했을 뿐 아니라 2013년 ‘PSJ 디자인’이라는 회사까지 차렸다. 회사를 차리자마자 쿠르베 디자인 특허출원까지 마쳤을 정도로 사업은 그의 뚝심을 바탕으로 확장일로에 있다. 박 기자는 무언가에 ‘꽂히면’ 끝을 봐야 한단다. 

“오랫동안 활동했던 동호회 DP(DVD 프라임)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쿠르베 로고, 제작, 홍보에 회원들이 참 많은 도움을 줬어요. 페이스북을 통해 입소문을 내준 페친들도 있었고, 언론사 동료들도 큰 힘이 돼 주었죠. 동호회 회원 가운데 고객인 분도 많아요. 기자로 살면서, 세칭 ‘갑’에 줄곧 있다가 자영업자 ‘을’로 살아가는 게 쉽지만은 않더라고요(웃음). 대기업도 아니고 소규모 수공업을 시작하려니 금융권과 관공서와 대면할 때 어려운 측면이 특히 많았죠. 발로 뛰는 수밖에 없지. 나중에 MBC로 돌아가면 지금 경험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 신간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2014, 푸른숲)
 

기자로서 삶과 해직 이후 새 도전을 담은 책까지 냈다. 제목은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 박 기자는 책을 통해 스스로를 ‘한량기자’라고 했다. 그는 “만나는 정치인이나 대기업 임원들은 기자들과 골프 약속을 많이 잡았다. 나도 자연스럽게 골프를 배우고 필드를 나가기 시작했다”며 “당시에도 일부 양식 있는 기자들은 취재원이 제공하는 골프를 향응으로 규정하며 터부시했다. 그래도 나는 별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다”고 밝혔다. ‘골프 잘 치고 술 잘 마시고 사람 좋은 한량 기자.’ 그의 표현이다. 

“내가 2007년 노조위원장을 한다고 하니까 주변에선 신기하게 생각했어요. 애초 운동권도 아니었고 노조 활동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거든. 그냥 잘 놀고, 일도 열심히 하고 취미생활 즐기면서 사는 기자였지. 솔직히 내가 언론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투철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남들이 보기에도 신기했겠지.”

스스로 ‘한량기자’라고 평했지만 박 기자는 ‘송곳’ 같은 사람이다.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2008년 에 대한 정권 차원의 압력과 공권력을 동원한 폭력이 MBC로 향했을 때가 그랬다. 그는 제작진 이춘근, 김보슬 PD를 지방으로 피신시켰고, KBS 정연주 사장을 강제 해임하려는 MB 언론 장악에 저항하다 머리채를 잡힌 채 연행되기도 했다. “분명 하나쯤 뚫고 나온다. 가장 앞에서 가장 날카롭다가 가장 먼저 부서져 버리고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최규석 작가의 인기 웹툰 ‘송곳’ 명대사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고등학교 반장이었어요. 싸움은 잘 못했어. 그런데 학교에 소위 ‘일진’ 애들이 한 학생을 무지 괴롭혔어요. 보통 반장들은 그냥 넘어갈 텐데, 나는 그냥은 못 넘어가겠더라고. 싸움이 붙었어요. 정말 죽도록 얻어맞았어. 난 진짜 싸움 이런 거 못하거든(웃음).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 머뭇거리진 않아요. 당시 노조위원장을 선택할 때도 다들 고사했어요. 나도 엄청 고민했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으로 정권이 바뀔 걸 예견하고 있는 상황에서 모두들 마다할 수밖에 없지. 한나라당이 MBC라면 이를 갈았으니까.”

“내가 노조위원장을 맡았던 당시와 이후 이근행 위원장이 막 맡았을 때는 ‘미디어법’ 정국이었어요. MB정권은 조중동 등 보수언론에 방송국을 차려주려 했고 이후 언론 지형이 오른쪽으로 확 기울었잖아요. 공영방송에는 김인규(KBS 전 사장), 김재철 같은 낙하산 내려 보내고. 언론이 완벽하게 장악돼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까 참 안타까운 거에요. 그런데 손석희 사장이 있는 종편 채널 JTBC가 그나마 공정한 보도를 하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지.”

   
▲ 박성제 MBC 기자.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 뒷면에는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앵커) 추천사가 있다. 손 사장은 “박성제는 기자이고 그게 더 어울린다”며 “이제는 그와 같은 장에서 일할 수는 없게 됐으니, 훗날에라도 내가 현역으로 있는 동안 박성제가 만드는 뉴스와 경쟁하고 싶다. 힘들고도 즐거운 경쟁이 될 것 같다. 누가 뭐래도 박성제는 기자여야 한다”고 했다. 박 기자에게 JTBC <뉴스룸>에 대해서 물었다. 전성기 MBC와 현 JTBC <뉴스룸>, 누가 이길 것 같으냐고.

“상상만으로도 즐겁네.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아요. JTBC에는 막강한 앵커 손석희 선배가 있지만 MBC엔 관록을 자랑하는 명기자가 있잖아요. 신경민 선배와 같은 명앵커도 있다고. MBC와 JTBC <뉴스룸>이 대결한다…. 꿈 같은 일이죠. 지금 MBC도 보도국에서 쫓겨나 있는 선후배들만 제자리 찾아도 뉴스가 좋아질 겁니다. 그런데 현 경영진은 파업에 참여했던 기자들이 돌아오면 체제가 무너질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요. 자신들과 함께 일했던 후배들을 ‘종북좌파’로 매도하는 걸 보면 절망하게 되죠.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혀를 찹니다.”

“MBC 상황이 암울한 가운데서도 지난 1월, MBC노조 파업이 정당했고 해고가 부당했다고 법원이 판결을 내렸죠. 불법파업이 아니기 때문에 해고도 무효라는 게 판결 요지이자 핵심이었어요. 방송사 파업이 정당했다는 판결은 그때가 처음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아내가 눈물을 많이 흘렸어요.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울컥했지. 남들에게 이제는 떳떳하게 말할 수 있잖아요. 우리 싸움은 정당했다고.”

MBC는 ‘해고자를 복직시키라’는 법원 명령도 거부했다. 해직 언론인 첫 출근길에 청경으로 인의장벽을 쳤던 MBC였다.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MBC는 지난 7월 복직 근무지를 일산드림센터 201호로 지정했다. 이들에겐 출근할 사무실만 있을 뿐 소속 부서도, 주어진 업무도 없었다. 사실상 ‘수용소’나 다름없었다. 

“현 정권에서 복직은 어렵죠. MBC에 대한 정권 의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없잖아요. MBC 경영진은 아직도 해직자들을 노조 배후라고 생각할 겁니다. 우리를 ‘종북좌파’로 몰아 비난을 피해보려는 꼼수죠. 대법원까지 가서 정정당당하게 복귀해야지. 반드시.”

   
▲ 쿠르베(왼쪽)와 바로 옆에 놓여 있는 쿠르베 엘르. (사진=김도연 기자)
 
   
▲ 쿠르베 청음실 한 쪽 벽면에 붙어 있는 제작 과정 포스터. (사진 = 김도연 기자)
 

새로운 사업과 도전이 빛을 볼수록 언론계에서는 ‘이러다 박성제가 돌아오지 않는 거 아닐까’라는 우려가 나온다. 스피커 제작 사업이 잘 안됐으면 하는 MBC 후배들도 있었다고. 훗날 복직을 하게 되면 ‘쿠르베’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복직과 쿠르베, 쉽지 않은 질문이었지만, 대답을 듣고 싶었다. 

“반드시 돌아갑니다. 항상 MBC로 돌아가는 꿈을 꿔요. 그때가 오면 나는 대표가 아닌, 쿠르베 특허와 상표를 가진 개발자로 물러날 겁니다. 쿠르베가 ‘해직기자가 만드는 스피커’라고 불리는 건 원치 않아요. ‘명품 스피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피커’로 자리매김해야 해요. 내가 없어도 굴러가는 회사로 만드는 게 작은 목표입니다. 쿠르베와 나를 도와준 많은 전문가들이 이번에도 큰 힘이 되어주겠지(웃음). 쿠르베를 만드는 게 새로운 도전이었듯, MBC로 돌아가는 게 행복한 도전이 되길 바라고 있어요. 다시 ‘만나면 좋은 친구’로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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