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심 무죄 판결을 비판한 현직 판사에 대해 대법원에 징계를 청구했다. 

하지만 징계 청구 결정을 내린 수원지방법원 홈페이지에는 판사를 격려하는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오히려 1심 재판장 이범균 부장판사에 대해 탄핵소추를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이 진행되는 등 반발이 커지고 있다.

온라인 국민청원 사이트 ‘이슈온’(www.issueon.org)에는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이범균 재판장(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에 대한 탄핵소추 발의를 촉구하는 국민청원운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 청원운동은 지난 23일부터 시작됐으며 올해 말까지 1만 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시작한 지 불과 일주일도 안 돼 3300여 명(9월29일)이 서명에 동참했다.  

대표 청원인 김상호 씨는 국민청원 제안문에서 “이범균 판사의 논리는 지속적으로 정치개입을 해오지 않다가 선거기간에 사이버 공작활동을 국정원이 시작했다면 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하지만, 지속적으로 해오던 활동을 선거기간에도 한다면 죄가 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는 모순된 결과”라며 “지속적으로 해온 부정과 잘못은 한 번의 일시적 부정보다 약하게 처벌받는다는 ‘상식에 반하는’ 판단이 과연 법관의 양심에 합당한 판결이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뜻을 반영해 원 전 원장의 1심 판결 재판장인 이범균 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국회에서 의결이 되도록 하는 것이 (이번 서명운동의) 단기적 목표”라며 “장기적으로는 헌법재판소에서 1심 판결이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비합리적 판결이기에, 이 판사의 탄핵이 합당하다는 판결이 도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9월11일 오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1심 판결 후 서울중앙지법 서관 앞에서 항소 입장을 밝히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진=강성원 기자
 

김씨는 2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1심 판결 이후 이 판결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김동진) 판사에 대해 징계 절차를 밟는다는 소식을 듣고 황당해서 국민청원을 시작하게 됐다”며 “최소한 재판관이 '정치적 재판'을 했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있고, 항소심 진행과정에서도 기회가 있다면 청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동진 판사에 대한 징계 방침을 보면서 사법부나 재판부가 현 정부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법치주의가 완전히 무너졌다”며 “법원 내부망에 국민에게 신뢰를 못 받는 동료 판사의 판결을 비판한 것마저도 징계한다면 앞으로 사법부가 어떻게 권력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2일 김동진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통신망에 게시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1심 판결에 대한 비판 글이 알려져 화제가 되자, 수원지법 홈페이지 ‘칭찬합니다’ 게시판에는 김 부장판사를 응원하는 글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관련기사:현직판사 “원세훈 무죄는 궤변” 비판글 삭제당했다)

법원 게시판에 김 판사를 응원하는 글을 작성한 유정수 씨는 “이번 원 전 원장의 판결을 보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분노하며, 국민들은 바른 법치주의를 지키고 정의로운 법의 심판이 내려지길 기대했지만 큰 실망감을 느끼게 됐다”며 “그러나 김동진 판사가 잘못된 판결에 대한 부분을 소신 있게 말해줘서 큰 위안과 감동을 받았다”고 밝혔다.

김영돈 씨는 “국가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헌법이 유린당하는 시기에 개인의 보신과 부귀영화를 위해 골몰하는 모 판사를 비판하는 글을 올려 줘서 고맙다”고 전했고, 오세진 씨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겠지만 대한민국의 역사는 그 조그마한 시도가 나라를 바꿔왔기에 사법부가 삼권분립에서 국민이 믿을 수 있는 하나의 기둥이 돼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썼다.

수원지법은 지난 26일 오후 대법원에 김 부장판사에 대한 징계 청구를 하면서 “법관윤리강령 위반으로 인한 품위손상 및 법원 위신 저하”를 이유로 들었다. 징계청구권자인 성낙송 수원지법원장은 25일 김 부장판사를 불러 글을 올리게 된 배경과 이유 등을 듣고 이날 징계 청구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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