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현대자동차에 이어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정규직 지위를 인정함에 따라 제조업 전반으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이번 판결은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혼재 근무·업무 지휘·정규직 대체 근무 등에 대한 핵심 쟁점들이 포함돼 다른 업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은 지난 18일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903명을 정규직 직원이라고 판단했다. 그간 현대차는 이들과 ‘도급’ 관계라 주장해왔으나 법원은 ‘파견’ 이라고 본 것이다. 도급과 파견의 핵심적인 차이는 원청 업체의 업무지시, 관리감독이다. 도급일 경우 원청은 하청업체 노동자의 업무에 개입하면 안 되며, 개입할 경우 파견이 된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도급계약을 했으나 실질적으로는 파견이라고 주장해왔다. ‘불법 파견’ 이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파견의 경우 한 업체에서 2년 이상 근무하면 직접고용 관계로 전환된다. 법원은 원청 관리자에게 업무지시를 받으면서 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일을 2년 이상 했으니 정규직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판단을 내렸다.

특히 이번 판결은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 혼재 근무, 업무 지휘, 정규직 대체 근무 등 핵심 쟁점들을 담고 있다. 그동안 현대자동차는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하지 않는 공정에는 파견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법원 판결은 현대자동차의 이 같은 논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실제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은 일련의 연속된 과정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게 한다. 따라서 한 부분이 멈추면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준다.

   
▲ 지난 2월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열린 금속노조 비정규 대표자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현대차는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사내하청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재판부는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파견의 근거로 인정하면서도 ‘원청의 업무 지휘’가 더욱 중요하다고 봤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42부는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는 공정에 대해 도급 계약의 대상이 될 여지는 있다면서도 결국 현대차 업무 지휘가 핵심이라는 점을 인정해 이를 파견이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혼재 근무를 하지 않는 노동자들도 정규직으로 인정했다. 혼재 근무는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구분하는 가장 손쉬운 방식이어서 언론에도 수차례 인용됐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법률 대리인인 김태욱 변호사는 “1대1 방식의 개별적인 업무 지휘가 아니라 작업표준서 등 획일적인 방식으로 이뤄지는 이상 혼재 여부에 따라 법적 판단이 달라질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대차의 경우 정규직 노조가 선호하는 공정을 먼저 선택하고 나머지 공정을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맡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정규직 노조의 선호 여부에 따라 혼재 여부가 달라지게 된다. 김태욱 변호사는 “물론 소송 당사자 중 상당히 많은 원고가 정규직 노동자와 혼재 근무를 했고 지금도 하고 있지만 혼재 여부는 우연한 요소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업무 지휘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꼭 원청의 관리자 혹은 정규직 노동자에게 1대1로 업무지휘를 받지 않아도 원청의 정규직 노동자로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작업표준서, 작업사양서, 조립공법서, 작업지시 모니터, 검사 기록표 등도 원청의 작업지시 내용으로 인정한 것이다. 김태욱 변호사는 “정규직 가운데 누가 어떤 방식으로 업무 지휘를 했는지는 도제식 환경에서나 가능한 주장”이라며 “정규직의 경우에도 1대1의 업무지휘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비단 자동차 산업 뿐 아니라 자동차 산업의 생산 방식을 상당 부분 차용하고 있는 제조업 다른 업종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가령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은 자동차 뿐만 아니라 자동차 부품이나 제철소에서도 활용하고 있다. 또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 외에도 서열작업(컨베이어에 따라 부품을 공급하는 작업), PDI(Pre Delivery Inspection. 출고 전 최종검사) 역시 다른 제조업에서도 사용하는 공정이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은 현대차·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근로자 지위소송 외에도 삼성전자서비스 사내하청업체, 현대하이스코, 한국 GM 등을 피고로 하는 유사 사건들에 대한 심리를 진행하고 있어, 이번 판결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