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오는 큼직한 배낭을 짊어진 임사공을 따라 어둠속 비탈을 오르며 서너 차례나 뒤로 미끄러졌다. 비탈 끝에 널따랗게 펼쳐진 경사진 고구마밭을 지나는 동안 조희오는 앞으로도 두 번 고꾸라져 밭고랑에 코를 박았다.   

고구마밭 윗쪽에 돌로 쌓은 약 1m 높이의 둑 위엔 좁고 묵은 오솔길이 나 있다. 이 산길은 예전에 사람들이 대리와 전막리 사이를 오가던 길이다. 대리와 전막리 사람들이 밭에서 일을 하거나 산에서 나무를 할 때도 이 길을 많이 이용했다. 그런데 고구마밭 아래쪽 비탈 밑에 넓은 신작로가 뚫린 뒤로 이 산길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산길은 약 200m앞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 갈라지는 곳이 조희오네 밭 언저리다. 밭 아래 두렁에서 왼쪽 아래로 내려가는 샛길은 전막리로 가는 길이다. 오른쪽 위로 오르는 샛길은 전막리 마을 뒷산 자락인 잴배 쪽으로 가는 길이다. 야트막한 고개인 잴배에는 전막리를 거쳐 석금으로 가는 산길이 있고, 거륜도와 논금리 쪽으로 이어지는 산길도 나있다. 

전막리와 잴배 쪽으로 가는 샛길의 갈림길에 이른 조희오의 눈앞에 어머니와 아들의 얼굴이 어렴풋이 나타났다. 눈앞에 있는 콩밭은 지난해 여름부터 서해훼리호 참사가 발생하기 전인 올 추석 연휴 직후까지 이춘심이 손자 동해를 업고 틈틈이 들러서 농사를 짓던 곳이다.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잴배로 오르는 산길로 들어서면서 조희오는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어머니 흐으윽!… 동해야 흐으윽!…”

임사공과 조희오가 잴배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10분쯤 뒤였다.  

“내가 아까 석금서 진리 우리 집에 갈 때도 말이다, 산길을 따라 이 잴배로 올라와가꼬 쩌그 저 재너머 공동산을 지나 논금 미영금 지풍금 쪽으로 혀서 산을 타고 진리로 넘어 갔는디, 니가 대리 사람인께 잘 알 것지만 여그 잴배서 석금까진 시간이 얼메 안걸링께 지발족족 사람들 눈에 띄지 않기 조심허자 잉! 야심헌 밤이긴 허다만 으디서 사람이 튀어 나올지 모링께!”

“네, 이모부, 알겠습니다!”

조희오의 대답을 듣고 난 임사공이 앞에 나섰다. 두 사람은 허리를 굽혀 몸을 낮추고 전막리 쪽으로 내려가는 산길을 밟아 나갔다. 전막리에서 석금리까지 가는 길은 약 5분쯤 걸렸다. 그들이 석금리 마을 뒷길을 따라 방파제 초입에 다다르자 길가의 어두운 숲속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가 희오야?…”

나지막한 그 소리는 분명 이춘심의 목소리였다.

“어어 어머니, 저어 희옵니다. 흐으윽!…”

조희오가 낮은 목소리로 흐느끼며 대답하자 숲속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위도 사람들은 구실잣밤나무를 ‘자밤나무’라고 부르는데, 자밤나무 숲속에서 나온 사람은 조희오의 어머니 이춘심이었다. 

“어머니!… 흐으윽, 어머니!…”

조희오는 낮은 소리지만 절규하는 몸짓으로 어머니 이춘심을 끌어안았다. 부둥켜안은 두 사람은 목청껏 울부짖을 상황이 아니다보니 곡소리조차 제대로 토해내지 못하고 피울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근데 어머니, 동핸 어딧죠?”

한참 동안 울먹이던 조희오가 아직도 훌쩍거리고 있는 이춘심에게 물었다.

“어, 동핸 시방 최 선장님이 안고 쩌그 자밤나무 숲에 있는디, 쫌 있다 만나게 될 것이고만. 근디 최 선장님을 만나기 전이 니가 한나 갤정 헐 것이 있다!”

“아니 어머니, 제가 무슨 결정을 해야 된다는 겁니까?”

이춘심이 머뭇거리자 옆에 서 있던 임사공이 끼어들었다.

“다름이 아니고 말여, 너도 같이 밀항을 허것다고 확답을 혀줘야 최 선장님이 너그 동핼 열로 뎃고 나올 것이고만!”

“아니 이모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저희 어머니하고 제 아들을 인질로 삼고 지금 저와 협상을 하자는 건가요?”

“얌마, 무신 섭섭헌 소릴 그렇기 힜쌌냐! 너 아까 치도 송가산장서 나 헌티 따지던디, 우덜이 너그 오메허고 아들을 인질로 삼은 것도 아니고, 납칠 헌것도 아니라고 내가 분명히 말을 혔잖여! 내 말이 틀린지 안 틀린지 너그 오메 시방 니 앞으 있응께 직접 물어보믄 될 것 아녀!”

조희오는 이춘심의 어깨를 두 손으로 붙들고 흔들면서 따지고 물었다.

“아니 어머니, 이모부 말이 맞는거요? 최 선장님허고 이모부가 밀항을 헌다는데, 어머니가 자발적으로 따라 가신다고 했냐구요?”

“그 말이 맞다. 너그 이모부 말이 맞다고!”

“아니 왜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모불 따라서 북한이나 외국으로 밀항을 하겠다고 하셨냐구요?”

“넌, 이 나라서 살고 싶냐? 이 개떡 같은 나라서 살고 싶냐고?”

“어머니, 아무리 개떡 같어도 우린 이 나라서 살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제가 어머니가 싫다고 해서 버릴 수 없고, 우리 아들 동해가 아버지가 싫다고 해서 절 버릴 순 없는 일 아닙니까?”

“그건 이눔아 상황이 틀리잖어! 어찌기 나라허고, 부모허고 비굘 헐 수가 있다고 이런 억지를 쓰는겨! 헛소리 작작 허고 언능 갤정을 혀! 이 에미랑 밀항을 헐 건지 말 건지 언능 갤정을 허라고!”

조희오는 대꾸를 하지 못했다. 잠시 흐느끼다 입을 열었다.

“어머니, 정말 동해도 데리고 가실 작정인가요?”

“글먼 넌 동핼 이런 개떡 같은 나라서 키우고 싶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

“너 대학시절, 데모 좀 고만 허고 공부나 허라고 내가 신신당불 헐 때마다 나 헌티 무시라고 혔냐? 감옥에 있을 때 이 에미가 면횔 갈 때 마다 너 나 헌티 이렇기 말힜지? 이 썩으 빠진 나라서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너 끄칫허믄 나헌티 그런 말을 힜어 안힜어?”

조희오는 할 말이 없다. 

“그맀던 니가 장갈 가서 새낄 낳고, 대학 때 깜방을 산 죄로 대학 졸업도 못허고 취직허기도 심들어 어렵기 살다본께 진작에 정신이 썩어 빠진 것 같은디, 그렇기 줏대도 읎어가꼬 어찌끼 니가 내 아들여 이눔아!”

“아니 어머니, 흐으윽! 지금 저한테 무슨 말씀을 하실려고 이러십니까?”

“너도 새낄 나서 키워봤응께 부모으 맴을 쪼꼼은 이핼 헐 것인디, 내가 획교 문턱도 가본 적 읎는 사람이라 일자무식이다만 난 널 키우고 대학까지 갤침서 참말로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이 나라서는 돈도 읎고 빽도 읎는 부몰 만난 자식들은 대부분 팽생 사람 대접도 못받고, 지대로 사람 구실도 못험서 구질구질허기 똥쭐 찢어지기 살다가 나이가 들어 늙으믄 큰 빙이 들거나 시름시름 앓다가 이 풍진 시상을 하직허고 말더랑께! 너 같이 올바른 생각을 갖고 시상을 바꿔 볼라고 허는 놈들은 맞어 죽던지, 깜빵을 가던지, 그것도 아니믄 사회서 왕따가 돼 가꼬 팽생을 심들게 살다가 이승을 떠나고 마는디, 이런 개떡 같은 시상살이를 두 눈으로 똑똑히 봄서러 팽생을 살어 온 내가 그려 남은 여생을 어찌기 살길 바래냐? 내 아들이 이 드러운 나라서 힘들기 살고 있는디 내 손지까지 이런 나라서 살라고 냅싸 두라고야? 난 그렇기 못헌다. 우리 동해, 참말로 못난 할미, 못난 부모 만나가꼬 에미 젖을 떼기도 전으 인당수에 빠져 괴기들 밥이 될 뻔 혔는디 흐으윽!... 이런 개떡 같은 나라서 우리 손지가 살라고 난 냅싸 둘 수 읎다고 이눔아! 이 담에 너도 한아씨가 될턴디, 니 손주가 이런 꼴을 당허믄 그땐 너 어찌기 헐것 같으냐, 잉?”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이춘심이 조목조목 따지며 묻자 조희오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다. 그렇지만 죽었다가 살아 난 아들인데 얼굴도 못보고 돌아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그는 순식간에 머리를 돌려 동해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이리저리 궁리했다.  

“네, 어머니, 저도 함께 밀항을 하겠습니다!”

“헤헤헤 그려, 잘 생각혔다. 역시 넌 내 잘난 아들이다!…”

“흐으윽, 어머니!… 흐으윽, 동해야!…”

조희오가 이춘심의 가슴에 안겨 이렇게 울고 있는데, 숲속에서 최 선장이 걸어 나왔다.  

“최 선장님, 흐으윽!… 동해야, 흐으윽!…”

이렇게 흐느끼고 있는 조희오의 품에 최 선장이 동해를 안겼다.  어디서 구했는지 동해는 포대기에 싸여 있다. 그런데 그 포대기는 지난해 추석, 전남 진도 출신으로 서울에 살고 있는 조희오의 처남이 사준 포대기 같았다. 

“희오야, 언능 따라 오니라, 날이 밝기전으 배가 공해상을 빠져 나가야 된다니께!”

임사공이 얼른 방파제로 가서 밀항선으로 점을 찍어 둔 조희오의 큰형 조희진네 고깃배에 올라타자고 재촉했다. 최 선장은 벌써 방파제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그 뒤를 이춘심과 조희오, 그리고 임사공이 따르고 있다.  

“빨리 튀자! 어떻게든 달아나자! 어머닌 밀항을 하시더라도 동핸 보낼 수 없다!…”

조희오는 이렇게 속으로 다짐을 하며 한 발짝 뒤로 처져서 따라오고 있는 임사공의 움직임을 살폈다. 임사공을 옆으로 밀쳐서 넘어뜨리기만 하면 도망치는 건 큰 문제가 아닐 성싶다. 더욱이 임사공은 등에 큼지막한 배낭까지 짊어지고 있다. 기습적으로 밀치거나 다리를 걸면 그는 반항도 못하고 넘어질 법하다.  

“에라잇!…”

갑자기 뒤로 돌아선 조희오가 임사공을 길섶 쪽으로 밀쳤다.

“어이쿠!…”

비명을 지르며 임사공이 길 가장자리로 넘어졌다. 조희오는 지체하지 않고 전막리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희오야!… 희오야!… 너 임마 거기 안설래!…”

최 선장과 임사공이 조희오를 부르며 쫓아왔다. 아들 동해를 끌어안은 조희오는 필사적으로 줄행랑쳤다.  

“너 이 개새끼 거기 안 서!…”

최 선장의 앙칼진 목소리가 등 뒤에서 날아왔다. 조희오가 힐끔 뒤를 돌아보니 최 선장의 손엔 어디서 구했는지 몽둥이가 들려 있는 듯 했다. 겁에 질린 조희오는 정신없이 도망쳤다. 

“어이쿠!… 아아악!…”

돌부리에 걸린 조희오가 넘어졌다. 그는 길 아래 비탈로 떼굴떼굴 굴러 떨어졌다. 다행히 대나무 숲 입구에 몸을 가누고 앉은 조희오는 품에 안고 있는 동해를 살펴보았다.

“아빠!…”

막 잠에서 깨어난 듯한 동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밤하늘의 별빛을 가득 담고 반짝반짝 빛났다.

“도옹 동해야!… 괜찮아, 응?…”

“아빠, 엄마는?…”

“엄마? 흐으윽!…”

조희오의 눈에서는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다.

“그래 동해야 엄말 만나러 가자!”

“아빠!”

“왜 동해야?”

“배고파!…”

“배고파? 그래 동해야 조금만 참어라! 대리 큰집에 가서 밥도 먹고, 두유도 사다 줄 테닌까 조금만 참아라, 응!…”

“아빠, 엄마 보고 싶어!…”

“그래 날이 밝으면 격포로 가서 엄말 보자!… 엄마 아빠가 우리 동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아빠, 엄마 보고 싶어!… 엄마, 보고 싶어!…”

“그래 엄마도 널 많이 보고 싶어하니깐 몇 시간만 참자 응!…”

조희오의 눈에서 동해의 이마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 눈물을 닦아 주려고 이마에 손을 내밀던 조희오가 깜짝 놀랐다.

“아니 피가!…”

동해의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조희오가 비탈 아래로 구르는 과정에서 안고 있던 동해의 머리가 어디에 부딪친 모양이다. 조희오는 아들의 머리를 더듬어 피가 나오고 있는 부위를 찾았다.  

“아빠, 배고파!… 아빠, 배고파!…”

머리 다친 곳보다는 배고픔이 더 고통스러운지 동해는 배고프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알았다, 동해야, 얼른 대리 큰집으로 가자!”

피가 나는 동해의 이마 부위를 더듬어 손가락으로 눌러 지압을 하며 조희오가 일어서는 참인데, 몽둥이 하나가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너 이 개새끼! 죽고 싶어 환장을 했냐, 엉?”

몽둥이를 들고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최 선장이었다. 그의 살기가 도는 눈빛에 조희오는 움찔했다.   

“너 얼른 니 새끼 이리 안내놔, 어서!…”

“그렇겐 못하겠습니다. 죽었으면 죽었지 제 아들은 밀항을 시킬 수 없습니다.”

“잔소리 말고 얼른 그 애기 이리 내노라고 새꺄!”

“절대 그렇겐 못합니다. 밀항을 할꺼면 당신이나 하세요! 우리 어머니도 모시고 가고, 우리 이모부도 모시고 가고, 어서들 위돌 떠나시라구요!”

“우리 세 사람은 그렇게 하기로 했으니 걱정 말고 얼른 너그 새끼나 이리 내놓으란 말여 새꺄! 안 그러면 이 몽둥이로 니 머리통을 박살낸다, 엉!…”

“그려 죽이시오.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매 일반이니 이 자리서 날 죽여도 좋소만, 제발 부탁인데, 우리 아들 동해만은 좀 살려 주시라구요, 흐흐윽!…”

“알었다. 그리하마, 에라잇!…”

최 선장의 손에 들려 있는 몽둥이가 어두운 밤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조희오는 겁에 질려 눈을 딱 감았다.

“아악, 아아아!… 아아아!…”

최 선장의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가 칠흑 같은 적막을 깨고 울려 퍼졌다. 조희오가 눈을 뜨고 보니 어머니 이춘심이 몽둥이를 들고 있던 최 선장의 오른손 팔뚝을 이빨로 물어뜯은 모양이다. 

“희오야, 언능 달아나거라!… 어서, 이눔아!…”

어서 달아나라고 재촉하는 이춘심의 입가엔 선혈이 낭자했다. 마치 금방 피를 빨아 먹은 흡혈귀 같았다. 

“고맙습니다. 어머니, 이 다음에 흐으윽!… 꼭 살아서 찾아 뵐테니깐 어머니 일단은요, 흐으윽!…”

조희오는 어쩌면 이승에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작별 인사를 남기고 벼랑 위의 산길로 다시 기어올라 도망질을 쳤다. 

“아빠!… 엄마!… 아앙아아아!…”

품안에 있는 동해가 다시 울부짖기 시작했다. 

“동해야, 조금만 참아라, 힘들겠지만 조금만 참으라고 응!…”

이렇게 동해를 달래며 조희오는 한참동안 줄달음쳤다. 석금리 동구 밖을 막 벗어날 때 쯤 갑자기 뒤에서 고함소리가 들려 왔다.

“너 이 새끼, 거기 안 서!…”

몽둥이를 든 최 선장이 이렇게 외치며 뛰어 왔다. 그 뒤를 임사공이 따라왔다. 두 사람의 모습이 나무에 가려 순간적으로 보이지 않자 조희오는 길섶의 숲속으로 뛰어 들어 몸을 숨겼다. 

“앙아아아!… 어엉어어!…”

품안에 있는 동해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자칫하면 추격자 최 선장과 임사공에게 발각될 것 같았다. 그래서 조희오는 오른손 바닥으로 동해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런데도 동해의 울음소리가 어둠 속 풀숲 밖으로 새어나갔다. 그러자 조희오는 동해의 코까지 손바닥으로 틀어막았다.

“저기 최 선장님! 인자 그만 갑시다. 날도 금방 밝기 생겼는디 희오 야를 더 멀리 쫓아가다간 우덜 밀항계획도 수포로 돌아가기 생겼응께!…”

“나도 그렇기 생각허는디 자네 처형은 어찌기헐쳐?”

“같이 밀항을 헐라고 쩌그서 시방 지둘리고 있응께요. 언능 가서 모시고 석금 방파지로 갑시다!”

최 선장과 임사공이 어둠속으로 사라지자 조희오는 숲속에서 살금살금 걸어 나왔다. 어둠 속으로 추격자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조희오는 전막리를 향해 달아났다. 그 사이 품안의 동해는 잠이 들었는지 조용하다. 

“동해야, 조금만 참어라! 얼른 큰집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날이 새면 객선을 타고 격포로 나가서 엄말 보자, 응!…”

전막리 마을 입구까지 단숨에 달려 온 조희오는 가로등 불빛 아래서 일단 걸음을 멈췄다. 그런 다음 품안에 안고 있는 동해를 들여다보았다.

“아니 이건, 아악!…”

꿈이었다. 

조희오는 비명을 지르며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이 안고 있었던 것은 아들 조동해가 아니라 오래된 유골이었다. 효수형(梟首刑)을 당한 듯한 그 유골의 왼쪽엔 먹물을 찍어 붓으로 쓴 글귀가 잔상으로 남았다. 東學黨 首魁 首級(동학당 수괴 수급)!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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