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한국사회를 아찔한 속도로 작동되는 긴급하고도 위험한 상태인 비상사태로 보고, 아이돌 중심의 케이팝이나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가 이끄는 문화 상품인 ‘한류’는 이런 조건에서 만들어진 ‘판타지 상태’의 자장에서 나왔다면, 그 영화에서 무엇을 읽어내야 할지를 섬세하고도 섬찟하게 짚어낸 평론집 <파국의 지도-한국이라는 영화적 사태>. 그리고 지금 한국이 처한 파국적 비상사태를 세계로 확장해서 영화를 통해 펼쳐 읽어내는 평론집 <비상과 환상-세계의 경계에 선 영화>.

한꺼번에 두 권의 평론집을 펴낸 저자 김소영은 예리한 통찰로 스크린에 일렁이는 영상의 비물질적 환영 뒤에서 그 판타지를 생산해내는 시대적 사태의 물질적 실체를 꿰뚫어보는 영화평론가다. 그리고 영화가 세상을 예지하고 치유하리라는 믿음으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하는 현역 감독이기도 하다. 영화 현장과 학계에 걸쳐 두루 영화적 실천을 펼치는 학자이기도 하다.

김소영 평론가가 영화가 있는 분야라면 어디에든 깊숙하게 파고드는 까닭은 영화가 환상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판타지가 현실을 외면하는 환각제가 아니라 눈앞의 사태에 대한 치유의 힘을 가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비상과 환상-세계의 경계에 선 영화> 프롤로그의 첫 단락은 이렇게 시작한다. “영화에는 어떤 예지가 있다. 기상 캐스터처럼 동시대와 미래의 수상한 기류를 포착해내는 힘이다. 그것은 영화의 카메라가 부지불식간에 일상, 건축물, 풍경의 어떤 인덱스를 필름 안에 각인하기 때문인데, 영화를 보는 관객들 역시 무심결에 그것을 읽어낼 수 있다. 영화는 증거하고 예지한다.”

두 권의 평론집 <파국의 지도-한국이라는 영화적 사태>와 <비상과 환상-세계의 경계에 선 영화>는 이런 단언이 영화이론가이자 감독으로서의 ‘자뻑’이 아니라 관객/독자와 공유하고자 하는 확실한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 김소영 평론집 ‘비상과 환상’과 ‘파국의 지도’ ⓒ yes24
 

영화적 사태는 작품 자체가 불러일으키는 논란, 기술적 변화에 따른 패러다임과 현상의 변화, 영화 외적 현실이 작품과 공명하며 빚어내는 사회 현상 등과 맞물려 있다. 김소영의 평론은 이렇게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사태를 자칫 오락거리로 소비하고 흘려보내도록 하려는 상업자본의 최면과 망각을 조장하는 산업적 회로에서 한 발짝 물러나서, 또한 숭배와 찬양의 신전에 모셔두고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박제화하려는 자폐적 동굴에서 한 걸음 벗어나서 ‘제대로’ 영화를 보고, 영화로부터 비롯된 사태를 파악하도록 하는 눈 밝은 길잡이가 된다.

가령, 피해자들이 가해자이자 살인자로 감금되어 있는 용산 참사를 다룬 <두개의 문>을 ‘국가 폭력을 다루는 급진적 다큐’라고 할 때, 이 영화가 대개의 다큐멘터리가 현장을 직접 촬영하거나 피해자들을 인터뷰하는 방식 대신 기존의 영상물을 해석, 재해석, 해체, 편집, 재구성하고 문자, 자막, 화면 노이즈를 통해 선행된 주장을 ‘부정’하고, 사라진 기록 3000쪽이 부재하는 이유를 추론하게 만드는 것은 ‘21세기 영화가 디지털에 대응/조응하는 방식’을 향해 문을 연 트랜스 미디어 다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CCTV, 리얼리티 TV, 스마트폰, 유튜브 등등 이미지와 사운드의 거대한 기록소가 도처에 넘쳐나면서 기록과 진실의 관계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드는 기록 과잉의 시대에는, 더 이상 다큐멘터리가 현장을 기록한 자료 영상을 조합하고 디지털 시그널로 단순히 변환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근원으로 돌아가 무빙 이미지와 스틸 이미지 그리고 사운드와 노이즈, 기록, 목격, 증언의 관계를 다듬고, 이들과 진실, 사회적 정의와의 배열을 급진화해야 할 때’이기 때문임을 짚어낸다.

쓰나미, 원전, 초대형 태풍 등 자연적, 사회적 재난이 전세계적으로 숱한 재난영화들을 만들어 내는 시대에 다니엘 크레이그를 앞세워 새로이 시리즈를 정비한 <카지노 로얄>에서 그 태생을 냉전에 빚지고 있는 007 시리즈가 냉전 이후에는 테크놀로지를 버리고 벌거벗은 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백인 남성 영웅을 통해 이제 극소수의 상위층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폭력과 재앙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동시대의 실상이 전도, 차용되었음을 읽어낸다. 이런 재난사회에서 심지어 아무리 하늘이 무너지고 몸은 부서지더라도 삶을 향해 멈추지 않는 영화제작의 용기를 국가폭력에 대한 고문의 기록 <남영동 1985>에서 찾는다.

이토록 가혹한 재난사회, 비상사태 속에서도 한국 영화가 금융자본과 권력을 전 지구적으로 규제하는 공포와 회의의 시기 IMF라는 위기를 거치면서도 ‘한류’라는 트랜스내셔널한 성공을 경험한 것은 전 지구적 자본에 의해 강화된 타자의 시선이 지배하는 감시를 인식하고 그 충격을 흡수하는 한편, 자기 역량을 키우는 동시에 단일민족에서 ‘다문화’ 사회로 전환하게 된 시대적 변화에서 영화를 보도록 한다. 국가가 그 주체들을 장악하고 옭아매는 곳에 바로 판타지가 있기 때문에, 그런 국가성을 ‘약간 미끄러도록’ 하는 판타지의 힘이 영화를 통해 작동하고 있다고 시대를 꿰뚫고 영화를 본다.

‘영화의 예지력을 언어화할 수 있는 평론이나 논문, 그리고 그것에 화답하는 영화를 감독으로 만들 수 있기를 바라는 긴장 속에 내가 서 있다. 그 공간으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주었으면 좋겠다’는 평론가/감독 김소영의 초대는 만만하지는 않지만 매혹적이며, 그 안에서 영화와 시대가 부싯돌처럼 빛을 내는 지점을 찾을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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