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사찰공포가 확산되면서 사이버 망명행렬이 갈수록 길어진다. 독일에 서버를 둔 텔레그램으로 200만명 넘게 떠났단다. 경찰이 모바일 메신저의 대화방을 압수수색해서 사건과 무관한 가입자들의 개인정보를 마구 털어간 사실이 폭로되자 사이버공간이 발칵 뒤집혔다. 경찰이 사이버검열을 강화하려고 수사조직을 확대한 사실이 알려졌다. 여기에 더해 검찰이 범정부대책회의에 포털업체들을 불러 사이버검열을 논의한 사실도 드러났다. 민간기업인 포털사가 이용자에게 알리지도 않고 직접 통신내용을 삭제하도록 한다고 것이다. 사이버불안이 산불처럼 번지자 너도 나도 망명처를 찾아 나선다. 포털사가 수사기관과 한 통속이 되어 검열한다니 메신저 대화방마다 썰물처럼 퇴장대열이 이어진다. 

공권력의 불법사찰 앞에 헌법이 사문화된 꼴이다. 헌법 17조는 사생활 침해금지, 18조는 통신비밀 침해금지, 21조는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공권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헌신짝 취급하듯 한다. 검-경찰이 감청영장을 받으면 실시간 통신내용을 감시해야 하는데 그 범위를 넘어 서버에 저장된 대화내용을 통째로 가져간다. 범죄사실과 무관한 사생활은 물론이고 사건과 연관이 없는 가입자의 개인정보도 가리지 않는다. 수색범위가 무차별적이고 광범위하기도 하지만 절차적 위법-불법을 예사로 안다. 통신사에 영장을 제시하지 않고 팩스로 보내고 이메일로 압수물을 받는다는 것이다. ‘까똑’, ‘까똑’…. 알림이 반갑기도 하지만 겁나기도 하니 서둘러 ‘나가기’를 누르는 모양이다.

노동당 부대표 정진우가 경찰이 세월호 집회에 참석한 혐의로 그의 카카오톡 대화방을 압수수색했다고 폭로했다. 그가 초대받은 여려 카톡방의 참여자가 3,000여명인데 경찰이 용의점-혐의점도 없는 무고한 시민들의 개인정보를 마구잡이로 털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들과는 거의 면식이 없고 이름도 모르며 집회와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그가 초대받은 한 대화방은 600여명이 참여하는데 거의 모르는 사람들이고 단 한번 발언했다고 한다. 정진우가 언론담당이라 기자들이 취재통로로 활용한 대화방이 있는데 그들도 개인정보를 털렸다. 경찰이 정진우가 들어간 대화방 가입자들의 대화내용-일시, 아이디, 전화번호, 그림-사진파일 등을 무차별적으로 압수했다는 것이다.  

수사기관이 확대경을 들고 SNS, 인터넷, 메신저를 드려다 본다는 것은 누구나 알만한 일이다. 하지만 메신저 대화방을 통째로 압수한다니 놀랍다. 단지 ‘눈팅’만 했어도 ‘신상털이’를 한다는 소리다. 더 놀라운 것은 네비게이션도 뒤진다는 사실이다. 경찰이 세월호의 실질적 소유주인 유병언의 도피경로를 추적한다며 그 시점에 ‘송치재 휴게소’를 검색한 이용자의 정보도 뒤졌다. 스마트폰 네비게이션 어플 업체들에게 이용자의 정보를 요청해 가져갔다는 것이다. 유병언의 아들 유대균이 서울시 서초구에 소재한 언남초등학교 부근을 배회했던 모양이다. 그 이유로 네비게이션을 통해 언남초등학교를 검색한 이용자들을 석 달 동안 조사했다고 한다. 길 한번 잘못 들었다가 엉뚱한 사람들이 불똥 맞은 격이다. 

이명박 정권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란 별동대 같은 초법적 조직을 운영했다. 점검1팀이 2008~2010년 3년간 불법사찰한 문건의 일부가 공개되어 말썽이 났었다. 정-관-재계와 언론-노동계 인사들을 전방위로 불법사찰한 사실이 드러났던 것이다. 미국 대통령 닉슨을 사임하게 만든 워터게이트 사건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방대한 규모라 충격적이었다. 7개팀을 운영했다니 전체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사찰대상이 광범위했을 듯 싶다. 청와대 지시임을 암시하는 'BH하명'이라는 표기가 있고 종결사유, 처리결과 등 구체적인 사찰내역을 수록하고 있었다. 사찰대상자에 대한 인사개입과 실질적 영향력 행사도 확인되었다.  이것은 공직자-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정권에 비판적인 개인-단체에 대해 무차별적-조직적-불법적 사찰을 자행했다는 의미이다.  

정보기술의 발달에 따라 개인정보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침탈되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모든 국민에게 인별고유인식번호를 부여하는 나라이다. 주민등록번호만 알면 학교, 성적, 고향, 성품, 교우, 주소, 가족, 재산, 소득, 세금, 군역, 병력, 신용, 차종, 휴대-자택-직장전화, 직장정보, 주거실태, 금융거래, 상품구매, 전자우편, SNS계정 등등 모든 개인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인터넷, SNS, 메신저를 드려다 보면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누구와 무엇을 교신하는지 알 수 있다. 휴대전화를 엿들으면 당신이 누구와 무엇을 통화하고 문자로 교신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위치추적도 가능하다. 당신의 옥외활동도 CCTV, GSP, 출입증, 통행증이 빠짐없이 기록한다. 신용카드는 당신이 어디서 언제 무엇을 사고 먹었는지, 언제 어디서에서 버스, 지하철, 택시를 타고 내렸는지 알려준다.

국세청은 당신이 무엇을 해서 언제, 어디서 얼마나 벌었는지 안다. 행정안전부는 인별-가구별로 부동산 소유실태를 파악하고 있다. 경찰청은 경범죄를 포함한 당신의 모든 전과사실을 기록한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은 초-중-고교 재학생-졸업생의 생활기록부를 수록한다. 금융전산망은 오늘 당신이 얼마를 인출-예탁했는지 보고 있다. 금융회사는 1,000만원 이상 현금거래를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한다. 출입국관리소는 당신이 언제 어느 나라를 다녀왔는지 안다. 건강보험관리공단은 당신의 소득, 재산, 병역(病歷) 뿐만 아니라 무슨 병에 걸려 어느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지도 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전국민의 선거인 명부를 관리한다. 국가권력은 당신의 모든 개인정보를 상시적으로 파악하는데도 모자라 당신이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 김영호 언론광장 공동대표
 

통신기술의 급속한 발달에 따라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가상세계가 현실화하고 있다. 모든 정보를 독점한 절대권력자가 상시적 개인감시-사상통제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는 ‘빅 브러더’ 말이다. 정보기술시대에 모든 개인정보가 털린 당신은 ‘유리감옥’에 갇힌 형국이다. 제레미 벤담의 ‘원형감옥’(panopticon)이 따로 없다. 그리스어로 ‘pan’는 ‘모두’, ‘opticon'은 ‘본다’는 뜻이다. 어원대로 번역하면 유리감옥이 옳다. 간수는 죄수의 모든 행동을 한 눈에 볼 수 있되 죄수는 간수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감옥이다. 당신은 당신의 모든 정보를 독점한 국가권력 앞에 빨가벗은 나상이나 다름없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