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 PD가 만드는 tvN <삼시세끼>는 굳이 뭔가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예능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내세우는 탄탄하고 특별한 ‘설정’들을 이 프로그램은 가볍게 내려놓았다. 숨 가빴던 예능도 느려졌다.   

최근 몇 년간 예능 트렌드를 이끌었던 MBC <무한도전>이나 SBS <런닝맨>은 상황을 설정하고 다양한 과제를 수행하는 식으로 매회 제작됐다. 

<무한도전> 멤버들은 미국 뉴욕 한복판에서 조직을 배신하고 보스를 죽게 한 스파이를 찾아야 하고,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한다. 영화 속 영웅들로 분장해 달리는 버스와 대결하는 <런닝맨>도 마찬가지다. 치열한 두뇌 싸움, 화려한 세트, 화려한 캐릭터가 매번 등장했다. 

나영석 PD의 tvN <삼시세끼>에 설정이 있다면 삼시 세끼를 ‘자급자족으로’ 차려먹어야 한다는 뿐이다. 그냥 집 주변의 밭에 있는 달래와 고추, 애호박을 따고 된장을 퍼다 된장국을 끓이고 아궁이에 불을 지퍼 가마솥에 밥을 짓는다. 인스턴트 음식은 당연히 먹지 못한다.  

자급자족할 수 없는 재료를 구하는 방법은 ‘특별한’ 노동이다.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원두를 맷돌로 갈아야 한다. 고기를 먹을 순 있지만 엄청난 양의 수수를 수확해 제작진에게 갖다 바쳐야 한다.  

도시 문명과도 거리를 뒀다. 프로그램 멤버인 이서진과 옥택연이 지내는 강원도 정선의 시골집 주변엔 카페도 없고 영화관도 없다. 스마트폰도 없고 TV도 없다. 한 끼 차려먹고 치우는 걸 세 번 반복하다 보면 해는 지고, 그러다보니 밥 먹는 활동과 ‘상관없는’ 활동은 없다. 

   
▲ tvN <삼시세끼>
 

항상 뭔가를 시도했던 기존 예능 프로그램들의 강박증은 현대 도시인들의 삶과 닮아 있다. 끊임없이 일하며 일하지 않을 때도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고, 주말에도 공연을 보고 ‘핫플레이스’를 가야 주말답게 보냈다고 생각한다. 항상 피로를 호소하며 휴식을 원하지만, 정작 쉬는 날에도 쉬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삼시세끼>는 이서진과 옥택연을 외딴 시골에 떨어뜨려 놓음으로써 현대인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행동들은 자연스럽게 ‘금지’시켰다. ‘밥과 노동’이라는 일상의 기본 중 기본만 허락했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 특유의 시끄러움도 없고 오버도 없어 안온하다.  

그 결과 이곳에서 이서진과 옥택연의 삶은 몇 템포는 느려졌다. 덩달아 시청자들도 한결 편안해졌다. “슬로우, 슬로우 고고(느리게, 느리게 가라)”, 이 프로그램이 주는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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