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3일 대법원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이 직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153명이 낸 해고 무효 소송에서 경영상의 긴박한 이유가 있었다며 회사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대법원 3부는 해고를 무효라고 판결한 지난 2월 서울고등법원의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그날 많은 언론들은 그 판결을 받고 망연자실해 울고 있는 사내들의 모습을 담아냈지만 대책은 막막했다. 대부분의 경우 ‘을’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기댈 곳은 끝내 없었다. 

요즘 TV에서 ‘갑’과 ‘을’의 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놓인 이들의 한숨과 눈물을 자주 담아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 인격적 모독, 산재와 성폭력을 비롯한 직간접적 폭력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 을의 변하지 않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 을의 이름은 많은 경우 노동자다. 아직도 제 이름을 온전히 쓰지 못하고 근로자라는 이름으로 순화되곤 하는 이름 노동자. 이 땅의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버티고 있는지를 굳이 이야기 할 필요가 있을까.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2,263시간으로 멕시코에 이어 세계 2위. OECD 가입국 가운데 장시간 노동 2위 국가이며, 가장 늦게 퇴근하는 나라. 저임금 노동자 비중은 25%, 하위 10%와 상위 10%의 임금불평등은 4.78배인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럼에도 공공복지 지출은 OECD에서 꼴찌인 나라. 이런 나라의 노동자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부당하게 직장에서 쫓겨나고도 끝내 돌아가지 못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카트’같은 영화가 나오고, 갑을 관계를 다룬 개그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것일 것이다. 그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지난 1980년대 중반부터 고단하고 빼앗긴 노동자들의 일상과 피눈물을 담아온 노동가요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제대로 받지 못하고, 제대로 쉬지 못하고, 노동자로서의 권리조차도 말할 수 없는 현실에 맞서 노동자도 인간이라고,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노동이 해방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창하면서 노동자의 피눈물을 대변했던 노래 말이다. 노동자의 함성을 대변했던 노래 말이다. 

   
 
 

수많은 민중가요들 가운데 하나의 흐름을 형성했던 노동가요는 1980년대 이래 노래모임 새벽, 최창남, 김호철, 노동자노래단, 예울림, 꽃다지, 박준, 류금신, 최도은, 김성만, 지민주, 연영석 등으로 이어지며 노동현장에 늘 함께 했다. 그 노래들이 얼마나 다정하고 뜨겁게 가까이 있었는지를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침체와 노동자 일상의 변화 속에서 노동가요는 이전만큼의 파급력을 잃었다. 노동자들의 삶과 진실을 담아낸다는 당위에도 불구하고 노동가요의 형식적인 경직성이 노동가요 스스로의 발목을 잡은 측면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정리해고 당하고 살 길을 잃은 노동자의 절박한 심정,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야 하는 노동자의 절망감과 패배감은 실로 말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군가풍의 행진곡이거나 미디엄 템포의 과잉된 보컬로만 터져나올 때는 진정성이 표현의 관성에 의해 덮여버렸고, 당사자가 아닌 이들의 가슴에 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과 노래의 공연 ‘탈환의 시작 - 고백’에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다. 11월 30일 일요일 오후 서울 홍익대학교 앞 카톨릭청년회관 CY씨어터에서 3시 30분과 6시 30분, 두 번 진행될 예정인 공연은 문화노동자들의 문화공동체인 일과 노래가 제작하고 총연출을 맡은 노래 공연이다. 일과 놀이의 설명에 의하면 ‘1980, 90년대 민주노조 건설과 노동자 권리를 찾기 위한 지난 투쟁의 역사를 돌아보며, 현재 자본과 정권에 의한 노동탄압과 후퇴한 노동의 문제를 되짚어보고, 노동자의 역사와 함께 한 노동가요와 노동운동사의 만남을 통해 현장의 노동문화를 재조직하고, 문화노동자들의 노동운동 현장과의 새로운 관계맺음을 모색한다.’는 것이 공연의 의도이다. 그래서 공연은 경제 성장의 신화가 광풍처럼 몰아쳤던 1970년대부터 1980년대 노동자대투쟁과 1990년대 전노협 건설, IMF 구제 금융 사태, 2000년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시대까지를 노래로 훑는다. 바로 노동가요로 돌아보는 한국 노동자의 역사이며 노동운동사인 것이다. 1970년대 전태일의 죽음에서부터 1990년대 전노협 건설, 2000년대 장기투쟁사업장들의 역사를 꿰뚫는 매개 역시 ‘내 이름은 노동자’, ‘청계천 8가’, ‘간절히’, ‘탈환’ 같은 대표적인 노동가요들이다. 90분 정도의 공연 시간 동안 펼쳐질 공연은 5개의 독립적인 에피소드로 구성된 단락으로 나뉘어져 있다. 콘서트 형식과 노동운동의 흐름을 알 수 있는 노동운동사 교육의 형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재미도 있고 교육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관객들이 보기만 하는 공연이 아니라 참여하는 형식을 통해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공연에 함께 할 수 있는 공연이라고 한다. 이 공연은 노동가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지민주, 박은영, 황현, 조현민, 이혜규, 김영희 등이 주축이 되어 준비되고 있다. 그들이 오랫동안 노동현장을 지켜보고 함께 하면서 느낀 것들이 담겨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한국의 대중음악 속에는 일하는 사람들의 애환과 극복의지를 담은 노래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민중가요가 나오고, 노동가요가 나온 것이고 노동가요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노동가요가 그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뮤지션들이 일하는 사람들의 애환과 극복의지에 주목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다른 이들이 하고 있기도 하고, 그들의 음악적 어법과 현실적 향유 방식이 하나의 패턴이 되어 다른 방식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노동을 천시하는 우리 사회의 편견과, 현실보다는 낭만에 더 주목하는 대중음악의 속성 역시 그러한 흐름에 일조했을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일과 노래의 이번 공연에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수많은 을들의 비명으로 가득찬 사회이고, 그들을 대변해줄 수 있는 새로운 예술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노동가요라는 이름을 가진 것인지 아닌지는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오늘의 노동자들을 대변하고 오늘의 노동자들을 뒤흔들 수 있는 음악인지 하는 것이다. 이번 공연이 과거의 작품들을 정리하고 다시 보여주는데서 그치지 않고 오늘 노동자들의 삶을 오늘의 음악언어로 말함으로써 2010년대의 노동자들을 깨우고, 위로할 수 있는 공연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지금은 지금의 노동가요가 나와주어야 할 때다. 지금의 노동자들이 듣고 공감할 수 있는 노동가요, 지금의 노동자가 아니더라도 그 노래를 듣고 나면 지금 노동자들의 아픔과 투쟁에 공감할 수 있는 노동가요가 절실한 날들이다. 물론 한 번의 공연만으로 무너져버린 노동가요의 흐름을 다시 만들 수는 없겠지만 가능성을 보여줄 수는 있을 것이다. 과거 노동가요의 뜨거웠던 파도 역시 그 가능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가능성을 키우는 것은 우리의 귀 기울임과 박수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다시 쓴다. 11월 30일 일요일 오후 3시 30분과 6시 30분 서울 홍익대학교 앞 카톨릭청년회관 CY씨어터이다. 예매는 http://shop.hopes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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