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이 ‘한국의 전문기자들’ 기획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저널리즘의 가치가 추락하고 선정적인 이슈 경쟁과 가십성 낚시 기사가 범람하는 시대, 격동의 취재 현장에서 전문 영역을 개척하면서 뉴스의 사각지대와 이면을 파고들고 저널리즘의 본질을 추구하는 ‘진짜 기자’들을 찾아 나서는 기획입니다. <편집자 주>

안정식 SBS북한전문기자(현 정치부 외교안보팀장)는 서울대 경제학과 89학번이다. 그 시절 보통의 대학생처럼 집회에 나가고 부조리한 사회에 분노했다. 그런데 그는 NL과 PD라는 학생운동진영에서 어느 한 쪽에도 깊숙이 관여하지 않았다.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그는 1995년 SBS에 입사한 뒤에도 쉽지 않은 선택을 했다. 주요 출입처를 거치며 승진의 길을 가는 대신, 전문기자의 길을 택했다.  

그가 선택한 전문분야는 북한이었다. “1990년대 말 언론계 사정을 보니 언론대학원 다니는 선배가 많았다. 석사라도 따놓으면 나중에 강의 자리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대충 추산해도 언론대학원 석사과정 언론인이 100명은 넘어보였다. 그래서 비전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SBS가 존재하고 북한이 존재하는 한, SBS뉴스에서 북한 아이템은 빠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공부를 시작했다. 서울대에서 석사학위를 받는데 3년 6개월, 경남대(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데 4년 6개월이 걸렸다. 1999년에 시작해 2007년 박사논문을 써냈다. 사회부 발령이 나면 휴학하고, 내근이 가능한 편집부 발령이 나면 다시 다니는 식이었다. “기자는 공부가 필요 없다”며 면박을 주는 선배도 있었다. 휴학도 많았고, 기자생활 하다 보니 귀찮기도 했다. 

‘내가 학위를 딴다고 대단한 뭐가 있겠어….’ 고민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타사 선배가 말했다. “이왕 시작했으면 다녀라. 기자생활만 하면 남는 게 없다.” 결국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주말에 일찍 일어나 리포트를 작성했다. 여름휴가 때도 수업과제를 했다. 그렇게 8년 만에 박사논문 <탈 냉전기 한미 대북정책의 갈등과 협력>이 탄생했다. 방송3사 최초의 북한학 박사 기자가 등장한 순간이었다.

   
▲ 안정식 SBS북한전문기자.
 

안정식 기자는 우리에게 북한보도가 중요한 만큼 기자들의 북한공부도 필수라고 했다. “간혹 기자들이 쓴 북한 기사를 보면 뭔가를 입수해서 썼는데 맥락이 안 맞게 해석된 경우가 있다. 북한이란 체제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기자에게 박사학위는 일종의 자격증이면서, 동시에 콘텍스트를 읽어내는 생각의 힘을 길러주는 과정이었다. 

안 기자는 2006년 북한 핵실험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연이은 특보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특보는 원고 없이 들어갈 때가 많아서, 아는 사람이 아니면 못한다. 당시 회사에서도 내가 써먹을만하구나, 평가했던 것 같다.” 끈질긴 노력이 빛을 발했다. 그는 “학위를 딴다고 공부가 끝나는 게 아니다.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정보를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기자는 한 출입처에 오래 머물면 주어지는 직책이 아니다. 북한전문기자도 마찬가지다. “화장실에서도, 잠들기 전 침대에서도, 퇴근버스에서도 대북정책은 어떻게 가야할지, 북한은 왜 이러는지, 자신만의 고민을 해야 한다. 스스로 북한을 바라보는 개념 틀(프레임)이 필요하다.” 안정식 기자는 북한전문기자의 경우 무엇보다 “조국의 지식인으로서 통일에 대한 책무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가치적 측면과 현실적 측면으로 나눠서 보자”

북한전문기자에게 물었다. 북한은 어떤 나라입니까. 망설임 없는 답변이 나왔다. 

“북한은 왕조적 전체주의국가다. 북한은 사회주의를 표방하지만 왕조체제가 가미된 희한한 체제다. 김일성이 항일무장투쟁을 하며 사회주의를 추구했지만 1967년 노동당 4기 15차 전원회의에서 갑산파가 숙청되며 왕조체제가 됐다. 갑산파 파벌이 숙청된 이후 북한에선 건전한 비판도 허용되지 않았다. 1970년대 유일사상 10대원칙이 나왔고, 이 과정을 김정일이 주도하며 자기 기반을 확립했다. 해방과 분단 이후 북한사회도 초반에는 역동적인 면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김일성주의화하면서 내부비판이 차단되자 지금의 북한이 됐다. 고인 물은 썩게 된다.”
 

   
▲ 10월 14일자 SBS뉴스 화면 갈무리.
 

하지만 그는 북한을 볼 때 가치적 측면과 현실적 측면을 나눠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의미일까. “가치적 측면으로 북한은 역사의 흐름에 반하는 체제다. 인민이 굶어죽는 것을 가슴아파하지 않는, 오직 지도자를 위한 체제다. 하지만 우리가 북한을 무너뜨리기 위해 모든 걸 해야 한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다. 우리가 북한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우리가 현실적 측면에서 북한을 볼 때 우선 고민해야 할 것은 예상 못한 상황에 의해 남북통합이 논의되는 시기가 올 경우, 어떻게 북한을 효과적으로 안고 통일의 길로 갈 수 있을 것이냐다. 그런 면에서 북한과의 교류도 필요하다.”

이 같은 관점에서 종합편성채널 TV조선과 채널A 등의 북한보도는 문제가 있다. “종편보도의 논리는 교화인데, 대한민국사람 중 북한이 인민의 낙원이라고 믿는 사람 몇이나 되겠나. 북한은 독재국가다. 하지만 대북정책은 신중해야 한다. 요즘 젊은 사람 가운데 통일하자는 사람이 없다. 나중에 한반도 통합의 시기가 왔을 때, 우리 내부에서 통일을 꼭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통일이 안 된다. 북한의 실상을 모두 알리는 것만이 미래의 한반도 운명을 위해 올바른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그는 한국의 북한보도가 갖는 고질적 문제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언론은 북한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북한 뉴스는 주로 남북 대결적인 이슈가 많을 때 발제가 된다. 이런 보도가 반복될수록 북한은 통일하기 부담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보도의 부작용이다. 핵을 용인할 수는 없지만 북한이 우리의 파트너라는 이미지를 주면서 교류가 필요하다는 이성적인 접근의 보도가 필요하다. 종합편성채널이 생기고 북한 뉴스가 더욱 자극적으로 나간다.” 그의 고민이다. 

“2015년 북한급변 가능성 높지 않아…4대 세습은 어려울 것”

북한 취재의 가장 큰 어려움은 정보 접근의 한계다. 국가정보원에선 나오는 북한 정보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안정식 기자는 “국정원이 정치개입 논란으로 신뢰도가 떨어졌지만 그렇게 간단한 조직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북한 관련 정보는 현장 확인이 불가능하다. 시민단체, 탈북자, 북한 여행자, 정부가 있는데 그중 신뢰도가 높은 건 정부 측이다. 국정원을 못 믿는다고 하면, 대체할 수 있는 소스가 없다.” 그는 대북지원 NGO단체의 정보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조선중앙TV를 해석하며 국정원 정보를 연계해 판단하는 게 가장 안전한 북한 취재방법이라고 설명했다.

   
▲ 압록강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안정식 기자. ⓒ안정식
 

최근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주장한 ‘2015년 북한 급변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안정식 기자는 “특별히 2015년에 급변 가능성이 높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그는 “김정은이 들어서고 표면적으로 정권을 확실히 장악하고 일인 독재체제를 구축했다”고 말한 뒤 “김정은을 포함한 파워엘리트의 균열이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든 있지만 그 균열이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김정은에게 반기를 드는 것은 내 가족과 친족까지 모두 죽을 각오를 해야 해서다.

하지만 가능성은 열려 있다. “김정은이 나이든 노동당 간부들을 막 대하는 느낌이 있다. 장성택 숙청은 단기적으로는 독재체제를 확고히 했지만, 김정은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장성택은 필요한 존재였다. 장성택은 자신이 다루기 어려운 부하였고, 고모부였는데 자기에게 당장 불편한 참모를, 고모부를 죽였다. 용인술 부족이다. 이제 어느 간부들이 조언이나 직언을 하겠나.” 안정식 기자는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어서 4대‧5대 세습이 이어질 순 없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기다리면 무너진다”는 식으로 바라보면, 당장 아무것도 할 일이 없게 된다고 짚었다. 

그는 지난해 개성공단에 다녀왔다. 수년 전에는 북한영토의 백두산도 갔다 왔다. “처음 북한 땅을 밟을 때,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미묘한 감정이 내게도 있었다. 정말 북한에도 사람이 살고 있구나, 그런 마음이었다.” 평양에서 만난 북한 안내원들은 안 기자에게 “혁명의 수도 평양에 온 걸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 갈 때마다 설렘을 느꼈다고 했다. “북한은 우리 조국의 나머지 한 부분이다. 결국엔 같이 가야할 민족이다.” ‘조국의 지식인’ 안정식 기자의 날카로운 눈빛에 통일에 대한 열망이 비쳤다. 

<한국의 전문기자들 인터뷰>

 ① 곽정수 한겨레 경제부 선임기자     ② 안윤석 CBS 통일전문기자 
 ③ 최현수 국민일보 군사전문기자      ④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
 ⑤ 박강섭 국민일보 관광전문기자      ⑥ 권혜진 데이터저널리즘연구소 소장
 ⑦ 심재억 서울신문 기자                    ⑧ 남문희 시사인 남북관계전문기자 
 ⑨ 강진구 경향신문 노동 전문 기자    ⑩ 김광현 한국경제 IT전문기자
 ⑪ 안정식 SBS 북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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