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녀’

지난 몇 달 동안 경찰관 폭행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된 말이다.

지난 6월 인터넷에서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는 경찰관의 사진이 화제를 모았다. 세월호 관련 집회에서 여성 시위대에 맞은 경찰관의 모습이라는 설명이 뒤따르면서 비판 여론이 일었고, 언론은 구두굽을 이용해 경찰관의 머리를 친 정체불명의 그녀에게 '하이힐녀'라는 별칭을 붙여줬다. 여성의 미를 돋보이게 하는 신발이 경찰 폭력의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폭력의 선정성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여론이 흘렀다.

하이힐녀는 그렇게 '악마'가 됐고 동시에 경찰의 불법행위 엄단 방침에 따라 구속 수감됐다.

하지만 2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한 '하이힐녀'는 할 말이 많아보였다. 언론에 의해 '하이힐녀'로 알려진 이는 자녀가 있는 50대 여성 진현주씨다.

진씨는 지난 5월 31일 세월호 참사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했다. 그날 밤 9시 50분경 진씨는 청와대로 가는 길목인 세종로 근방에서 행진을 막는 경찰관과 대치하던 중 시비가 붙었고, 자신이 신고 있던 신발의 굽으로 경찰관을 쳤다.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폭행을 당한 경찰관은 머리 부위가 찢어져 전치 3주의 상해를 입었고, 일부 언론은 12바늘을 꿰매는 부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해당 경찰관이 부상을 당한 모습은 세계 각국 경찰의 시위 현장 사진이 담긴 폴리스위키에 사진이 올라왔고 여론은 들끓었다.

하지만 정작 진씨는 당시 경찰관의 부상 상태를 알지 못했다. 서울 종로경찰서 수사관이 자택을 방문해 조사할 때도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랐다고 한다. 진씨는 집회 당시 자신도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간 상태여서 폭력이 벌어진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6월 24일 서울 종로경찰서는 진씨를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로 구속했다. 공무집행방해를 하면서 휴대하고 있는 위험한 물건으로 공무원을 상해에 이르게 하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다. 진씨는 두달 동안 구치소에 갇혔다.

서울지방법원 재판부는 진씨에 대해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면서 보호관찰 4년, 사회봉사 200시간 처분을 내렸다.

진씨는 “제가 한 행위가 나쁜 것이라는 것은 잘 안다”면서도 억울한 심정을 내비쳤다. 진씨는 자신이 받은 죗값이 가혹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진씨는 "초범이고 애 엄마이면서 몸도 아픈 상황인데 보호관찰을 4년이나 줬다"며 "억한 심정을 가지고 폭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다. 제가 무슨 간첩도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보호관찰처분은 재범 우려가 큰 알코올 중독이나 청소년 범죄 등에 주로 적용되는 제도로 외출이나 음주를 제한하고 주거지 상주를 요구한다. 최근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과 집회 시위 사범에 대해서도 보호관찰처분이 내려지면서 논란이 제기됐다.

진씨가 집회 시위 도중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맞지만 보호관찰처분까지 받아야할 정도 심각한 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 경찰청
 

일부 언론은 진씨에게 폭행 당한 경찰관이 12바늘을 꿰맸다고 했지만, 확인 결과 세바늘 정도의 부상이라고 진씨는 주장했다.

피해자 경찰관이 합의 요청에 대해 끝까지 처벌을 원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역시 경찰 수뇌부의 강경 대응 방침을 따른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서울지방경찰청장 시절부터 집회 시위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강조해왔다. 강 청장은 매번 집회 시위에 앞서 "경찰관 폭행 등 묵과할 수 없는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경찰 장비를 사용하여 신속히 불법 상태를 해소하고, 현장 검거 등 엄정 대처할 계획"이라며 "집회 종료 후에도 끝까지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 법질서를 존중하는 평화적 집회시위 문화를 정착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역대 서울청장 임기 내 집회 및 시위 관련 사법처리 현황에 따르면 강 청장이 서울청장 재임 기간 중 집회 시위 사범으로 검거한 인원은 1344명에 이르고, 구속된 인원은 11명이다. 지난 4년 동안 서울청장 중 강 청장이 가장 많은 인원을 구속 시켰다.

지난 8월 경찰청장에 취임한 강 청장은 취임문에서도 "‘불법행위자는 반드시 처벌 받는다’는 인식을 확고히 뿌리 내려야겠다"며 "집회시위 현장에 법률대응팀을 배치하고 경비경찰의 법적 소양과 법집행 역량을 높임으로써 공권력 무력화 시도를 사전 차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씨는 자신의 사건에서도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해" 끝까지 경찰이 처벌 방침을 고수한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지난 8월 출소한 진씨는 주변의 지인들의 만류에도 항소를 결정했다. 잘못은 했지만 과잉처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김용빈 판사)는 1심 형량이 과도하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진씨가 초범이고 공소사실을 인정하면서 피해자와 합의하려고 한 노력이 보인다고 판결했다.

진씨는 2심 결과를 환영한다면서도 대법원에 상고할 뜻을 밝혔다. 진씨는 "공권력과 사법부가 원칙에 따라 분명한 선을 가지고 죄를 물으면 무섭겠지만, 오히려 처벌이 과도하면 법이고 공권력이고 우스워 보인다"며 "2심 결과를 가지고 대법원에 가서 법리 논쟁을 치열하게 다퉈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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