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대법원이 쌍용자동차 해고무효확인소송 판결에서 파기환송을 선고한 날, 장영규(45)씨는 “기대를 많이 하는 순간 슬픔도 클 것” 같아 법원을 찾지 않았다. 대신 법원에 갔던 한 동료로부터 “졌어요”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그리고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괜찮지…뉴스는 봤다”는 짧은 말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그는 지난 1994년 쌍용차에 입사해 ‘사시과’ 조립라인에서 일을 하다가 지난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자가 됐다. 쌍용자동차에서w 쫓겨났던 그는 현재 공장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충남 대산의 플랜트 건설 현장 숙소에서 대법원 판결 소식을 들었다. 대법원에서 승소를 하면 이혼한 아내와 다시 합칠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2심에서 승소하고 나서 쌍용자동차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장씨는 “아이들 엄마와 통화하면 힘들어했는데 대법 판결 잘 될 것 같으니까 합치는 분위기로 해보자는 식이었고 그것만 바랐는데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장씨는 2009년 점거 투쟁에서 쌍용차 노조 대외협력실장을 맡았다. 경찰 쪽 정보과 형사와 소통을 유지하면서 공장 밖 집회 신고 등을 했고 시민사회단체와 연대까지 담당했다. 

점거 투쟁을 끝내고 정리해고자 신분이 된 그는 “너무 억울해서” 노조 간부를 맡았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수석부위원장과 쌍용차지부 정리해고자특별위원회 부회장을 맡아 2011년 말까지 공장 밖 투쟁을 이어갔다. 

하지만 도저히 생활이 되지 않았다. 임금을 받지 못하다 보니 카드를 쓰기 시작하면서 빚이 불어났다. 2009년 이후 생활비 등 카드빚이 9천만 원에 이르면서 개인 회생 신청을 했다. 달마다 65만원씩 5년 동안 입금하면 채무금이 탕감될 예정이었다.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주어진 제도였지만 장씨에게는 이마저도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았다. 2년 동안 돈을 부었지만 일이 끊기면서 입금을 하지 못했다. 장씨는 “직장이 없으니까 고정 수입이 없어 개인 회생도 어렵고 그래도 수입이 조금이라도 있으니까 개인 파산도 안된다”고 말했다. 

장씨는 평택시청이 주관하는 일자리 창출 공공근로 사업을 하면서 120만 원 정도 되는 돈을 받았다. 빚을 갚고 나면 돈이 얼마 남지 않아 평택항에서 배를 산적하고 하역하는 일을 했다. 순번제로 오는 일거리라 오래할 수 없었다. 생활비가 떨어지자 가지고 있던 24평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고 또다시 대출 빚을 갚기 어려워지자 아파트를 팔았다. 

아이 엄마와도 다투는 일이 많아졌다. 장씨는 “아이들 엄마가 우울증도 걸리고 저도 성질을 못 이겨서 지금은 후회하지만 보듬어주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결국 장씨는 아내와 2012년 이혼하고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3학년 자녀와도 떨어져 지내게 됐다. 아내와 자녀는 월세 50만원짜리 2개의 방에서 지내고 있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15년 동안 “볼트만 조립”하고 40세가 넘는 사람을 취직시켜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택한 일이 현장일이었다. 장씨 표현대로 ‘조공’ 형식으로 현장을 따라다니면서 일을 하고 있다. 200만원 남짓하는 돈을 벌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지방 현장 숙소 비용으로 한달 45만원, 식대비용과 아이들 용돈을 제외하고 나면 남는게 없다. 현장일이 없을 때는 실업자로 돌아왔다. 

빚과 함께 그의 목줄을 죄고 있는 것은 손해배상과 가압류이다. 쌍용차 해고자와 복직자에게 청구된 손해배상금액은 158억원. 파업으로 인한 손해 보험금을 지급한 메리츠 화재는 100억원에 이르는 돈을 쌍용차 노동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해놓은 상태이다. 수원지방법원은 정부와 회사에 47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장씨도 손해배상 '책임'이 있는 해직 노동자다. 그가 현장일로 버는 200여만원을 자기 통장으로 넣지 못하는 이유도 손해배상 때문이다. 언제든지 손배 대상자에게 재산이 있을 경우 자기 명의 통장 속 돈은 고스란히 0원으로 찍힐 수 있다. “통장이 있어봐자 뭐하나, 통장 속 돈은 내 돈이 아니다”고 장씨는 말했다. 부모님 집으로 날아오는 빚 독촉장은 원금보다 이자가 많다. 장씨가 현장일을 하는 것도 “이런 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다. 

장씨는 “정리해고를 시킨 것도 어쨌거나 한 사람을 죽이는 일인데 아무런 사회적 장치도 마련하지 않고 알아서 하라고 손해배상까지 청구했다”며 “너무 힘들다. 솔직히 죽지 못해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애써 웃음을 지었지만 자신의 생활을 비관해 자살까지 실행에 옮긴 일도 담담히 전했다. 

“지금은 차도 없지만 차 안에서 연탄불을 피워놓았다. 나중에 알았는데 남들이 하는 말이 수면제를 안 먹어서 살았다고 하더라. 수없이 구토를 했다”

   
▲ 쌍용차 장영규 조합원. 사진=쌍용차77동지회
 

당장 올해 수시에 합격했던 딸 아이의 등록금이 걱정이다. 쌍용차에 있었다면 학자금이 100% 지원되기 때문에 등록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현재 아내에게 생활비를 줄 여력도 없다. 지난 9월 추석에 합격 축하 전화와 수능이 끝나고 시험 잘 봤냐고 묻는 전화를 했지만 대법원 판결 이후 통화를 하지 못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사람 위에 법이 없다고 하는데 두 번씩이나 법이 사람을 죽였다”고 울분을 토하는 것도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작은 바람이 산산조각 났기 때문이다. 

장씨는 이제라도 쌍용차가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씨는 “쌍차 지부 해고자를 들여보내면 물이 흐려진다고 말을 하는데 그렇다고 충성 서약을 하면 받아줄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선생님들이 문제아들 갖다놓고 문제가 많으니까 수업을 못하겠다는 말과 똑같은데 같이 보듬어주고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줘야 하는데 대화조차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씨는 “조선시대 마냥 선비, 양반이 있고 백정이 있는 것 같다. 없는 놈들은 다 죽으라고 하는 건지 억울하다”며 “어떻게든 해보려고 아등바등 하는 사람에게 콩 한쪽도 나눠 먹는 게 정부와 기업이 할 일인데 ‘애들은 안돼’라고 몰아붙이고 있다”고 말했다. 

장씨는 “인원을 절반이나 가까이 해고하는 것은 어거지이다. 대안적인 방법을 제시해주는 것이 정부와 자본인데 해고만 시켜놓고 법원 판결이 맞다고 보고 있다”며 “이제라도 쌍차의 모든 어려움을 끝내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정부가 마련해서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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