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체 86만 교직원 중 학교비정규직은 약 37만 명(43%)을 차지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들을 같은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선생님’과 다른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가 절반에 가까운 게 학교 현장의 현실이다. 정규직 교사에서부터 무기계약 회계직원, 초단시간 강사까지 학교 안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현대판 신분제의 실상을 들여다봤다.<편집자 주>

[연속기획] - 학교 안 카스트, 우리 아이의 미래다
① 학교도서관 사서 “휴가 못가도 내년에 일할 수만 있다면”
② 연말이 두려운 학교 강사 “실업급여 받는 것도 어디에요”
③ “한 사람이 아이들 170명 밥, 아파도 못 쉬어요”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사회복지사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보면 학교에서 학생들의 교육복지 업무를 담당하는 학교사회복지사 10명 중 1명은 상급자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사회복지사들은 폭언을 경험한 비율(36%)도 다른 기관의 사회복지사(평균 13.3%)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경기도 관내 A초등학교에서 만난 학교사회복지사 오은지(가명)씨도 상급자로부터 모욕적인 대우를 받았다. 오씨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교장 등의 개인적인 심부름을 하거나 대외행사에 동원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학교사회복지사는 회계직과 달리 교장에게 고용 권한이 있어서 아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낼 때도 학교장 눈치를 보게 돼요. 가끔 보면 우리를 잉여인력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어서 체육대회를 비롯해 각종 대외행사에 지원되기도 해요. 그러면 그날은 내 모든 업무가 중단되니까 아이들이 사회복지실에 오고 싶어도 못 오게 되는 거죠.”

학교사회복지사 10명중 3~4명 성희롱·폭언 경험 

경기도의 경우 성남과 수원, 과천 등 시별로 많게는 36개교에 학교사회복지사를 한 명씩 배치하고 있다. 학교사회복지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 등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교육청과 연계해 학교사회복지사업비를 지원하는 형태이다.

이 때문에 학교사회복지사들은 교육청이 고용과 임금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가진 학교회계직과 다르게 조례 개정이나 지자체 예산 사정에 따라 언제든지 사업이 중단될 수 있다. 또 학교장이 신청하지 않으면 그만이어서 고용 면에서도 취약하다.

오씨도 현재 근무하는 학교에서 2년째 사회복지 업무를 담당하고 있지만 12개월 단위로 계약을 하고 한 학교에 2년까지밖에 있을 수 없다. 내년에는 또 다른 학교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봐야 한다.

   
강원도의 한 초등학교 사회복지실에서 학생지원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한국학교사회복지사협회 제공
 

교육부가 지난 1월 ‘2014년도 학교회계직원 고용안정 및 처우개선안’을 통해 1년 이상 상시·지속 업무 종사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기로 했지만 학교사회복지사는 여기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경기도 수원시청이 만든 ‘학교사회복지사 채용절차와 계약관리 지침’을 보면 “학교사회복지사를 2년 초과해 계속 고용 시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므로 근로계약 체결 시 유의하라”며 “기존 운영 중인 학교에서는 학교사회복지사 2년 계약종료 후 동일학교 계약 불가”라고 안내하고 있다.

학교사회복지사의 무기계약 전환을 피하기 위한 이 같은 편법 계약은 소외 학생들의 교육복지를 실현하고 학부모를 지원한다는 본래의 도입 취지와도 역행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오씨는 “학생들과 교사들 모두 학교에 학교사회복지사가 있어도 서로 신뢰를 형성하고 상담을 의뢰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상담도 보통 열두 차례(12회기)를 잡는데 사례관리를 하려면 그런 아이들은 최소 1~2년은 지속적 관심이 필요하다”며 “상담 의뢰도 연초보다는 연말에 몰리고 담임이 바뀌면 사례관리 학생에 대한 이음 역할도 중요한데 현 제도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작년에 이 학교에 왔을 때 아이들이 ‘선생님도 내년에 가는 사람이에요? 엄마가 그러는데 선생님 계약직이라 내년에 있을지 없을지 모른데요’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은 가정형편을 떠나 심리적·정서적으로 기대고 싶은 아이들인데 어제도 프로그램을 하다가 5학년 아이가 ‘선생님 저 졸업할 때까지 있는 거죠?’라고 묻기에 ‘아니’라고 하니까 글썽글썽해요.”

“노조 만들면 잘리는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겠어요”

아울러 학교사회복지사 복무관리 규정에 따르면 학교장은 학교사회복지사를 행정실이나 교무실 등 업무지원에 동원해서는 안 된다. 학교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선 1급 사회복지사 자격증과 함께 학교사회사업 실무 경험 혹은 학교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갖고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전문인력들이 정작 학교에 들어와선 역할에 부합하는 업무를 효과적으로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씨는 학교사회복지사들이 교사 등의 업무나 잡무까지 떠맡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인성진로교육 분야나 학교폭력 업무 등 원래 교사의 업무는 우리가 해서는 안 되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가 학교사회복지사업 외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며 “담당교사의 업무를 지원해주는 것은 가능하지만 아예 업무 자체가 넘어오고 실적은 교사가 올리고 있어도 이를 문제 삼기 어려운 처지”라고 밝혔다.

그렇다고 학교회계직처럼 노동조합을 만들어 목소리를 내기도 쉽지 않다. 오씨는 “노조를 만들려면 어느 정도 고정 인원이 유지가 돼야 하는데 학교사회복지사는 당장 내년에 어떻게 될지 모르고, 학교회계직 테두리 안에도 못 들어가 노조 가입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임에도 못 하고 있다”며 “섣불리 나섰다가 채용이 안 될 수도 있는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느냐”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해 최진주 한국학교사회복지사협회 사무국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학교사회복지사들이 고용불안과 부당한 대우에도 목소리를 내면 다음 계약에 영향을 미치게 될까 봐 흔들리게 마련”이라며 “노조를 만들게 되면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말하는 교장들도 있어, 우리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단체 활동을 못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학교사회복지사들은 학교생활에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의 개별·집단상담뿐만 아니라 자녀 지도와 양육과 관련해 학부모 상담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상담을 받는 학부모들도 늘었다. 오씨 역시 아이를 키우는 엄마지만 맞벌이 부모들에게 그의 퇴근 시간에 맞춰서 오라고 할 수는 없다. 퇴근 후엔 전화 상담이 이어지기도 한다. 오씨를 만난 날도 저녁에 학부모 상담이 잡혀 있어서 그는 아이들 저녁을 전화로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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