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한바탕 대격돌이 일어날 것 같은데 조용합니다. 교전이 벌어진다면 상대는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입니다. 일촉즉발의 상황, 한 때 ‘이명박근혜’로 불리며 운명공동체로 불렸던 그들이 왜 양쪽에서 서로 칼을 갈고 있을까요?

직접적인 원인은 4대강 사업, 자원외교 사업, 방위력 개선사업. 즉 ‘사자방’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이 사업으로 천문학적인 돈이 사라졌다는 의혹이 나옵니다. 야권이 국정조사를 요구했는데요, 문제는 최근 새누리당 내에서도 국정조사 요구가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친박계로 분류되는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는 야당과 만난 자리에서 국정조사 요구에 대해 “우리도 간단한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국민 관심도 충분히 크다고 판단한다”고 말했습니다. 긍정적인 신호인데 문제가 있습니다. 시기를 ‘정기국회 이후’라는 단서를 달았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간’을 보고 있는 듯 한데요. 한국일보는 “썸 타는 듯한 태도”라고 지적했네요.

   
▲ 이명박 전 대통령(왼쪽)과 박근혜 대통령(오른쪽).
@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 측으로서는 새누리당이 이 카드를 만지작 거린다는 것 자체가 불쾌한 일일 것입니다. 국정조사를 하게 되면 자칫 자신의 핵심 참모들은 물론, 본인도 검찰청 앞에서 플래시 세례를 받을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최근 친이계 모임이 잦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도 이들의 위기감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로 풀이됩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원외교 투자가 성과로 돌아오려면 5~10년 정도는 지켜봐야 하는데 야당이 정치공세에 나서고 있다”, “자원외교의 특성상 투자액을 회수하는 기간이 길고 리스크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거리낄 게 없고 당당하다”고 말했습니다. 근데 저만의 생각일까요. 저는 ‘당당함’보다는 ‘불쾌감’이 다소 깊게 느껴집니다.

관심이 가는 대목은 이 자리에서 친이계 인사들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했다는 발언입니다. 친이계 인사들은 “4대강 국정조사는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겨레 보도였는데요 언론은 친이계와 원내지도부가 모종의 소통이 있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소개한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의 말은 뉘앙스가 다릅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포문을 열었습니다. 대통령은 25일 국무회의에서 “과거부터 내려온 방위사업 비리 문제, 국민 혈세를 낭비해온 문제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고 단호하게 가려내서 국민 앞에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국정감사 수용은 아닙니다. 감사원 등 국가기관을 동원한 방식이 될 수 있고, 이 경우 일각에서는 꼬리자르기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 25일 국무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결론적으로 박 대통령과 친박계는 국정조사 카드를 손에 쥐고 야당과 친이계의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로서는 아주 매력적인 카드일 것입니다. 이 사안에 대한 국정조사가 이루어지면 국민적 관심은 ‘사자방’에 맞춰지겠지요. 정부·여당에겐 숨통이 트일 수 있습니다. 비리에 대한 단호한 조치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도 올려놓을 것입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과연 이 전 대통령을 겨냥할까?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26일 경향신문에 ‘묘한’ 칼럼을 실었습니다. 그는 <전직 대통령의 큰소리, 현직 대통령의 침묵> 이란 칼럼에서 “전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현직 대통령에게 이렇게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하고 있으니 마치 상왕처럼 수렴청정을 하겠다고 덤벼드는 형상”이라며 “사정이 이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상돈 교수는 “그러다 보니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이 박 대통령의 ‘아킬레스건(腱)’ 같은 무엇을 갖고 있는 게 아니냐는 억측마저 떠돌고 있다”며 “국회의원 시절에 4대강 사업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재정건전성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박 대통령이기에 이런 해석이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상돈 교수의 이와 같은 지적은 이미 SNS에서 빈번하게 제기된 문제이기도 합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박근혜는 MB의 검은 치부인 사자방을 절대 건드릴 수 없다. 박근혜가 이명박을 건드리면, 이명박은 지난 대선 때 자행된 민관군경이 총동원된 부정선거를 터트릴 테니 말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 경향신문 11월 26일자. 30면.
 

또 다른 트위터 이용자는 “18대 대선 23개월이 흐른 후 국내 이슈가 이명박으로 돌아왔다. 빠른걸까 느린걸까? 속도전 키는 누가 쥐고 있는걸까 오로지 박근혜 부정선거 세월호 참사에서 갑자기 바뀐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시한폭탄의 버튼은 박근혜 대통령이 쥐고 있다는 것이지요.

또 다른 트위터 이용자도 “이명박 임기 말,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위한 공권력의 대선개입은 이미 드러났다. 이명박의 자원외교 그리고 4대강 등 엄청난 혈세가 낭비되었음에도 철저한 조사를 하지 않는다면 이명박이 퇴임 후 이를 이용, 보험 들어 놓았다고 생각하지 않겠어?”라고 지적했습니다. 다들 현재의 모습과 지난 대선과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SNS에서 퍼지고 있는 소문처럼, 지금 대통령과 전임 대통령의 관계는 이상하기 그지 없습니다. 전직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에 대해 언급을 꺼리는 것은 한국이나 외국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명박 대통령은 “나라가 어려운데 정쟁이나 하자니”라는 발언까지 했습니다. 친이계 의원들의 행동도 다소 노골적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문제는 정치공학을 떠나 천문학적인 세금이 투입된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자는 주장에 불쾌감을 표시하는 전직 대통령이나, 원론적 얘기만 하는 현직 대통령이나. 정작 세금의 주인인 국민들을 소외시키고 있습니다.

아래는 한 트위터 이용자의 지적입니다. “이명박은 대한민국호에 화물(부채)를 과적하고, 평행수(국고)를 빼고, 우현으로 급회전(4대강, 자원외교, 대북경색)시켰으며, 박근혜는 승객(서민)들을 배안에 가두고, 입을 막고 있다. 그것(권력층/재벌)들의 탈출이 임박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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