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고질적 비리, 부정에는 구조적 문제가 내재돼 있다. 강제추행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상습 성추행 피해 학생이 20명을 넘는다'는 주장까지 제기된 서울대 수리과학부 강아무개 교수가 대학측으로부터 면직됐다. 사표제출에 따른 대학측의 조치라고 했다. 서울대학교의 성추행 사건은 모든 대학의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특히 장기간에 걸쳐 상습적으로 이뤄졌고 신고된 피해학생 수만 22명에 달하는데도 ‘파면도 해임도 아닌’ 면직 조치라는 매우 온화한 조치를 취한 서울대학교의 제스처는 과연 대학의 상습화된 성추행 문제에 대해 척결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대학교수 뿐만 아니라 전국회의장, 청와대 대변인 등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인턴이나 대학생, 캐디 등에게 가하는 성폭력은 매우 구조적이고 상습적이다. 사건이 표면화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며, 이 순간에도 눈물을 흘리는 사회적 약자가 많다는 점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이런 종류의 성폭력 행위는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구조적, 제도적 문제라고 주장하는데는 적어도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공개하는데 엄청난 용기와 희생을 필요로 한다.

대학내에서 교수를 상대로 성추행 피해를 고발하기에 앞서 자신이 당하게 될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현실은 극복하기 힘든 장벽이다. 졸업이나 취업, 대학원 진학 등을 생각하면 감행하기가 쉽지않다. 굳이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스승을 고발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도 만만치않다. 학교마다 ‘양성평등위원회’ 등이 운영되지만 막상 자신이 피해자가 됐을 때 용기를 내는 학생은 소수에 불과하다. 전체 사건에 비해 매우 적은 숫자가 공개될 뿐이다. 공개에는 용기와 희생이 따르고 비공개할 경우, 그런 불이익 위험이 없기 때문이다. 대학이 학생 개개인의 인권을 보호하는데 소홀해서라기보다, 대학이라는 울타리가 성추행의 온상이 될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다분하다.

둘째, 사건이 표면화 되더라도 ‘진상조사위원회’는 학생이 아닌 교수들로 구성된다.

진상조사에 나서는 주체는 학생이 될 수 없다. 교수가 주축이 되며 여기서 이미 게임은 사실상 끝난 것이다. 설혹 진실을 모두 알아낸다 하더라도 이를 어떻게 공개하느냐는 대학교수에게는 매우 민감한 문제다. 오늘 동료의 비극적 운명이 내일 나의 모습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교수들은 잘 안다. 웬만큼 그 조직사회에서 밉보이지 않았다면 중징계를 내리기 쉽지 않다. 그를 동정해서가 아니라 학교의 명예와 위신, 학부모들로부터 받게 될 비난 등을 감안하면 쉬쉬하는 것이 상책이다. 가끔 진상조사 위원회가 강력하게 처벌을 원하여 실제로 파면이나 해임을 요청하고, 대학재단측에서 중징계를 내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또 다른 구조적 안전판이 마련돼 있다.

셋째, 법도 제도도 학생편이 아니라 교수편이다.

교수가 불미스런 일로 학교측으로부터 해임이나 파면 등 중징계를 받게 되면 이에 대한 부당성을 요구하는 제도적 장치가 있다. 소위 교육부의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하소연할 수 있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대체적으로 부당한 징계로부터 이를 막아주는 보호장치 역할을 하지만 정당한 징계조차 약화시키는 경향도 있다. 심사위원들은 피해 학생들의 연령층이 아니라 주로 가해 교수, 교장 연령급 등 동정적 판단을 내린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중징계가 유지될 때 교수들은 이제 법원으로 장소를 옮겨 법의 심판을 받는다.

여기서 법의 심판을 무력화내지 약화시키는 방법을 사회적 우월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힘있는 변호사를 고용하는 것은 기본이고, 여기다 소속 대학교 동문 교수들을 동원하여 수백명 교수의 사인이 들어간 연판장을 법원에 제출한다. 법원은 목소리나 눈물로 재판하는 곳이 아닌 관련서류와 증거자료로 판단하는 곳이다. 세월이 흘러 성추행, 성희롱 흔적은 희미해졌고 판사 앞에 쌓이는 동료교수들의 연판장, 호소문은 맹위를 떨친다.

그래서 상습 성추행, 성희롱 교수들은 늠름하게 다시 캠퍼스로 돌아온다. 마치 억울한 일을 당한 피해자처럼 당당하게 강단에 다시 서는 것이 2014년 대한민국 대학캠퍼스의 일그러진 풍경이다.

서울대는 “문제의 발생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향후 재발 방지와 교수 윤리 확립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뻔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상습적이고 고질적 성추행 교수에 대해 파면조차 요구하지 못하면서 무슨 재발 방지를 논할 수 있겠는가.

불과 얼마 전 한국의 유명한 사립대학교 이모 교수가 한국 캠퍼스에서 성추행 하던 버릇을 비행기 안에서 외국인에게 시도한 사건이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행 비행기에서 옆자리 여성의 몸을 더듬은 혐의라고 했다. 그는 어떻게 됐을까.

그는 미국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미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됐다. 추행사실을 알게 된 승무원이 즉각 미연방수사국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그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될 경우 징역형과 함께 25만 달러(2억5천만원) 벌금형에 처해질 것이라고 한다. 물론 그는 앞으로 미국행 입국이 어려운 블랙리스트 명단에 포함될 것이다.

만약 국내 한국 항공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는 순순히 범행을 인정했을까. 제주지검장처럼 환자라고 오리발을 내밀었을까. 또 승무원이 과연 공항경찰에 즉각 통보했을까. 통보했다고 도착한 교수에게 수갑을 내밀었을까. 설혹 혐의를 인정하더라도 과연 벌금을 최대 2억5천만원이나 부과할 수 있을까.

선진국 수준의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곳에 성추행, 성희롱은 여전히 우월적 지위의 권력자들에게는 장난에 불과하다. 전국회의장, 청와대 대변인, 대학교수 등 한국의 남성들이 앞다퉈 국가적 망신을 거듭하고 있지만 대학도 법도 제도도 형편없이 한가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면 이런 잘못된 구조적 비리, 관행, 암덩어리들을 ‘단두대’로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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