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19일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했다. 이번 해산심판은 박근혜 정부가 주도했고, 박 대통령이 직접 재가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간의 악연이 정부와 통합진보당의 간의 악연으로 이어지는 형국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정희 대표 간의 악연은 지난 2012년 대선에 시작됐다. 통합진보당 대선후보였던 이정희 대표는 2012년 12월 4일 대선 TV토론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이 대표는 박 대통령의 약점이었던 과거사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충성혈서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한국 이름 박정희. 해방되자 쿠데타로 집권하고 한일 협정 밀어붙였다”
“뿌리는 속일 수 없다. 친일과 독재의 후예인 박 후보와 새누리당이 한미 FTA를 날치기 통과해서 경제주권을 팔아먹었다”
“유신독재의 퍼스트 레이디”

이 대표는 박 대통령의 또 다른 약점이었던 정수장학회, 불통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여성 대통령이 아니라 여왕” “박 후보가 권력형 비리근절을 말하는데 평생 권력형 비리, 장물로 월급 받고 지위 유지하면서 살아오신 분이 말씀하시니까 잘 믿기지 않는다” “정수장학회도 박정희 대통령이 김지태씨를 협박해 뜯어낸 장물 아닙니까. (박 후보는) 이를 물려받아 이사장을 하지 않았냐”

   
▲ 지난해 12월 4일 대선후보 TV토론회 영상 갈무리.
 

이 대표는 집요한 공격 끝에 박 대통령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받았다는 6억 원의 사회환원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정희 대표는 “전두환 정권이 박정희 대통령이 쓰던 돈이라면서 6억원 줬다고 스스로 받았다고 했지 않은가, 당시 은마아파트 30채를 살 수 있었던 돈 아니냐”고 물었고, 박 대통령은 “나중에 다 사회에 환원할 것”이라고 답했다.

TV토론에서 나온 가장 강한 ‘돌직구’는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는 이정희 대표의 발언이었다. 박 대통령의 “야권 단일화 하겠다는데 중간에 후보 사퇴하면서 선거 국고 보조금 받는 것은 도덕적 해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TV토론에서 이정희 대표의 국가관을 문제 삼았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의 국가관이 중요한데 통합진보당은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도 안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박 대통령은 애국가 관련 이야기를 하며 ‘김석기, 이재연 의원’이라고 말했다가 이정희 후보가 “토론에 나올 때는 예의가 있어야 한다. 우리 당 의원은 이석기, 김재연이다”라는 반박을 듣기도 했다.

이 토론의 여파였을까. 첫 TV토론 이후 새누리당은 소위 ‘이정희 방지법’을 내놓았다. 공직선거법상 5인 이상 국회의원을 보유하고 있는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토론회 참석이 가능하니 토론회 참석 조건은 여론조사 15% 이상으로 올리자는 내용이었다.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단일화에만 관심 갖고 있던 새누리당이 이정희 후보를 염두에 두고 법안까지 제출했으니, 토론회가 많이 신경 쓰였다는 점을 추론할 수 있다.

   
▲ 2012년 대선후보 TV토론 이후 인터넷에 떠돌았던 합성 짤방.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이정희 대표가 이끄는 통합진보당은 늘 의제의 중심에 있었다. 지난해 8월 터진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이 대표적이다. 공교롭게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몰릴 데로 몰린 상황에서 터져 나온 일이었다.

이 내란음모사건은 해산심판청구로 이어졌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11월 5일 국무회의에서 법무부가 긴급안건으로 상정한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청구안’을 심의한 뒤 곧바로 의결했다. 정당활동금지 가처분신청도 같이 이뤄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빈 방문 중인 영국에서 전자결재로 이를 재가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잣대가 이중적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 대통령이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해서는 재판을 기다려보자고 하면서도 내란음모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 19일 오전 헌법재판소 앞 이정희 통합진보당 당대표 (왼쪽에서 두번째)
 

1년이 넘는 공방 끝에 결국 통합진보당의 해산이 결정됐다. 8대 1이라는 압도적인 결정이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정희 대표 간의 악연으로 대표되는 정부와 통합진보당의 대립은 결국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악연이 끝날 지는 아직 미지수다. 통합진보당은 해산선고 하루 전인 18일 “통합진보당은 노동자, 농민, 서민과 함께 대한민국의 진보와 민주주의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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