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병이 아니다. 황유미 개인 질병일 뿐이다.” 2007년 삼성은 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제기하는 고 황유미씨 가족에게 이렇게 말했다. 8년이 흘렀고 당시 삼성의 말은 틀린 것으로 결론이 났다. 법원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유미씨 죽음이 산재라고 인정했고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는 백혈병 문제와 관련해 공식 사과했다. 현재 피해자가족, 반올림, 삼성은 사과·보상·재발방지책 등을 두고 교섭을 진행중이다. 

정말 삼성의 태도는 변했을까. 지난 달 골수이형성증후군(혈액암)으로 숨진 삼성 LCD 노동자 조은주(23)씨 사례를 보자. 조은주씨 어머니 김아무개씨는 4일 오후 열린 ‘반도체·전자산업 산재사망노동자 합동추모주간' 증언대회에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김씨는 “회사 사람들은 산재가 아니라고, 이건 직업병이 아니라고 말했다”며 “몇 천 명이 되는 사원 중 특정한 사람만 걸렸다고, 그 책임이 우리딸이라는 거다”라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조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지난 2010년 삼성전자 LCD 천안공장에 입사해 대형 LCD-TV 불량검사 업무를 했다. LCD화면에 불량이 보이면 화학약품으로 닦아내는 업무였다. 김씨는 해당 약품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딸의 동료들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말을 해주지 않거나 ‘은주 엄마’라는 단어만 듣고 아예 전화를 끊어버린다고 증언했다. 그는 “삼성이 시켜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서 김씨는 “딸의 죽음은 직업병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증언대회에 따르면 조씨의 죽음이 갖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 정도다. 반도체 공정에 비해 LCD 공정의 위험성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LCD 공정 역시 위험하다는 것과 2010년 이후 입사한 노동자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2010년 당시 삼성전자는 백혈병이 논란이 되자 작업장 안전성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선다고 밝힌 바 있다.

   
▲ 삼성전자 LCD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다발성경화증에 걸린 김미선씨가 지난 해 8월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선 건 조씨네 가족만이 아니다. 현재 진행 중인 교섭에서 삼성은 일정한 기준을 정하고 그 테두리 밖 사람에게는 8년 전 황유미에게 보여줬던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혈액암(백혈병 등)이나 산재인정을 받은 뇌종양·유방암이 아니라서, 근무기간이 짧아서, 협력업체 직원이라서, 특수건강진단을 안 받아서 등이다. 이 기준대로라면 법원에서 산재를 인정받은 황유미조차 보상대상에 포함이 안 된다. 

증언대회에 참가한 김미선(36)씨는 삼성에서 언급한 7개병이 아닌 다른 병에 걸려서 보상에서 제외된다. 김씨가 앓고 있는 병은 다발경화증이라는 희귀질환이다. 이는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으로 팔다리의 마비, 시신경염 등으로 고통을 겪는 질병이다. 김씨는 면역체계가 시신경을 공격해 시력을 거의 잃었다. 반올림에 따르면 삼성전자 직업병 제보 중 다발성경화증은 3건이다. 

김씨는 삼성전자 LCD 생산공정, 그 중에서도 ‘모듈과’에서 일했다. LCD패널에 붙은 이물질이나 잘못 부착된 기판을 유기용제로 닦아내거나 납땜을 해 패널에 기판을 부착하는 일이 주업무였다. 밤낮이 불규칙하게 바뀌는 교대근무와 잦은 초과근무, 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일했다고 했다. 김씨는 “철이 타는 냄새, 역한 비린내, 아세톤보다 몇 배 강한 화학약품 냄새 등 매일 맡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스러운 냄새”가 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씨는 산재를 인정받지 못했다. 업무상 유해요인 노출 정도를 알 수 없고 의학적으로 질병의 발병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 둘 다 그의 잘못이 아니다. 김씨가 자신의 작업에 사용했던 물질을 요청하자 삼성은 “김미선 근무 당시의 해당 물질에 관한 정보는 남아있지 않지 않다”고 답했다. 공유정옥 작업환경의학 전문의는 “(의학적) 연구가 안됐다는 이유로 피해노동자들이 인정되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 지난 해 3월 서울 곳곳에서 전자산업 피해자 추모주간 행사를 진행했다. 사진=반올림 제공
 

백혈병으로 지난 2012년 숨진 고 손경주(53)씨는 협력업체 직원이라는 이유로 삼성이 제시한 보상에서 제외된다. 보상 자체가 회사에 기여한 것에 대한 보답차원의 위로금이기 때문에 협력업체 직원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삼성은 설명한 바 있다. 삼성은 지난 1월 16일 교섭 조정위원회에서 “협력사 직원은 이직 등이 잦아 인사나 근태 등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문제 등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손씨는 삼성반도체 화성기흥공장의 협력업체에서 7년가량 현장소장으로 근무하며 반도체 생산라인의 유지보수(PM) 업무를 총괄했다. 특히 당시는 삼성반도체 화성사업장 12,13라인 및 기흥사업장 14, S1라인을 처음 구축할 때였다. 반올림에 따르면 초기 안정화 상황에서는 긴급 상황 발생이 잦고 각종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환기시설 등 작업자 안전을 위한 조치는 부족했다.  

근무 당시 손씨도 이런 사실을 알아챘다. 그는 생전에 산재를 신청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일기에 당시 상황과 업무를 기록했다. 아들 성배(26)씨가 공개한 일기에 따르면 이렇다. “유해가스 집진과 배출기능을 하는 국소배기는 초기 셋업시에는 설치되어 있지도 않았다” “현대차가 본사직원과 협력사 직원간에 오른쪽 바퀴는 현업이, 왼쪽은 협력사 직원이 하듯 삼성반도체 제조공정도 마찬가지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손씨의 일기는 그의 유언에 따라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손씨는 자신이 ‘잘못되면’ 반올림에 연락하라며 아들에게 이종란 노무사와 공유정옥 전문의의 번호를 알려주었다. 성배씨는 “삼성은 협력사 직원은 보상 대상에 포함시킬 수 없다고 했는데 우리 아버지가 정말 삼성에 기여한 게 없을까요? 4개 신규라인 증설에 관여했고 그 라인에 일하는 사람을 채용하고 관리했다”고 비판했다. 

공유정옥 전문의는 “피해자들의 질병이 업무와 무관하다고 명백하게 밝혀진 게 아니라면 가능한 많은 노동자들이 보상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사례인 김미선씨는 치료비 걱정 때문에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똑같이 삼성에서 일했는데 왜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 해주는 게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평범하게 사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마음 편하게 치료라도 받고 싶다”라고 말했다. 황유미 죽음 8년, 삼성은 정말 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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