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대범(36)은 국내에서 가장 농구를 사랑하는 농구전문기자다. 스포츠잡지 <루키> 편집장을 거쳐 2008년 이후 지금까지 농구전문잡지 <점프볼> 편집장을 맡고 있다. 2013년부터는 KBSN스포츠 해설위원으로 얼굴을 알렸고 지난해엔 KBS 2TV <우리동네 예체능> 농구편 해설가로 출연하기도 했다. <농구의 탄생>, <아이 러브 바스켓볼>,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농구스타 22인> 등 책도 여러 편 썼다. 2009년부터 농구 팟캐스트 <파울아웃>도 진행하고 있다.

20년 전, 그는 여느 소년처럼 마이클 조던에 빠졌다. 그리곤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1995년 천리안 농구동호회에 가입해 NBA관련 소식을 번역해 올렸다. 인터넷이 모뎀이던 시절, 한 달 전화비가 50만원 넘게 나왔다. 대신 온라인 소식통으로 입소문이 났다. 한국 기자들이 이 고등학생에게 소스를 얻어가기 시작했다. 돈만 생기면 과거 서울 명동 중국대사관 옆에 있던 서점으로 달려가 외국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미국 지역일간지 기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궁금한 걸 취재했다.

1998년 NBA파이널 6차전에서 조던이 던진 ‘더 샷’(THE SHOT)은 왕년의 농구팬들에겐 전율의 순간이다. “이 슛을 몇 번이나 돌려보며 울었는지 모르겠다.” 25일 만난 손대범 기자는 처음엔 조던의 화려한 플레이가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체육관에 제일 늦게까지 남아있고, 진 경기를 보며 상대를 파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할 거면 제대로 하자는 조던의 마인드가 내 삶의 신조가 됐다. 언젠가 조던을 만나면 꼭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 손대범 점프볼 편집장. 현재 KBSN 스포츠 해설위원을 맡고 있다. ⓒ손대범 제공
 

조던에 빠진 남자는 어느 샌가 농구에 빠져있었다. 그를 이끈 건 ‘즐거움’이었다. 대학시절, 이란 잡지에디터로 일하며 한 달에 40만원을 받은 적도 있다. 돈이 없을 땐 외고와 아르바이트 수입으로 버텼다. 종합일간지나 방송사 스포츠부 기자들로 구성된 ‘기자단’에게 따돌림도 당했다. 기자단에 없다는 이유로 미국 취재도 혼자 다니고 농구연맹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취재비가 넉넉하지 않아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며 버스로 움직이는 기자단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 적도 있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농구기자’ 말고 다른 길은 생각하지 않았다. 

손대범 기자는 “지금껏 멈춤 없이 달렸다. 하다보니까 일이 많아졌다”며 멋쩍게 웃었다. 안정적인 삶도 가능했다. 농구단이나 농구연맹에서 구단 홍보팀이나 연맹직원 스카웃 제의도 받았다. 하지만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손대범 기자는 “어른들이 힘들게 살지 말고 연맹이든 구단이든 옮길 수 있을 때 옮기라고 설득했다. 지금이야 일이 많겠지만 나이 들면 일이 없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나부터 재밌어야 한다. 내가 즐거워야 가족도 행복하다고 생각해 접었다”고 말했다. 

그의 고민은 갈수록 위축되는 잡지시장과 농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다. “후배들에게 농구전문기자를 추천하기가 솔직히 힘들다. 요즘 잡지광고시장은 2005년에 비해 10분의 1로 줄었다. 축구와 야구는 시장이 넓다. 농구는 KBL과 NBA뿐이다. 농구시즌이 끝나는 비수기에는 특히 생활적인 면에서 각오가 필요하다.” 그는 농구잡지시장이 어려워지며 기사의 칼날도 무뎌진다고 했다. “농구단에서 <점프볼>을 구매하고 광고를 주기 때문에 마음대로 비판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어쩔 수 없이 비판지점을 눈감을 때도 있었다. 기자로서 부끄러웠던 순간이다.” 

<점프볼>은 2000년 창간해 오로지 농구만 다뤄온 잡지다. <점프볼>의 모토는 “경기는 현장에서”이다. 대학농구부터 유소년농구까지 모든 농구기사는 현장 취재를 원칙으로 한다. 고교경기에서 한 경기 61득점이란 신화를 쓴 선일여고 신지현 선수를 국내에 처음 알린 곳도 <점프볼>이었다. 신 선수는 현재 하나외환 농구팀에서 활약하고 있다. 선수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기자들도 보람을 느낀다. 

   
▲ 손대범 기자(왼쪽)가 NBA 슈퍼스타 드와이트 하워드와 인터뷰하는 모습. ⓒ손대범 제공
 

 

   
▲ 한국을 찾은 NBA 슈퍼스타 코비 브라이언트와 미디어행사를 진행중인 손대범 기자(맨 오른쪽). ⓒ손대범 제공
 

지금까지 취재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은 NBA의 슈퍼스타 코비 브라이언트와의 일대일 인터뷰였다. “슈퍼스타여서 건방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게 먼저 긴장하지 말라고 하더라. 지금껏 만났던 선수들과 달리 차분하고, 겸손했다. 부상 중이었는데 인터뷰가 끝나고 물리치료사에게 치료를 받고 훈련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슈퍼스타의 뒤에는 이런 묵묵한 노력이 있다. 농구팬이 선수에게 감동을 받는 부분도, 코트 뒤에 가려진 인간적 모습이다. 

그가 말하는 농구의 매력은 1초의 오차로 망가질 수 있는 스피드와 끈끈한 팀워크다. 우리는 한 때 농구의 매력에 빠진 적이 있다. ‘고려대VS연세대’ 대학농구 라이벌전에 열광하고 만화 <슬램덩크>를 보며 “왼손은 거들뿐”이라 되뇌었고 백보드를 부숴버린 샤킬오닐의 덩크슛에 열광했다. 왜 지금은 축구와 야구에 비해 농구의 인기가 없을까. EPL이나 MLB에 비해 NBA의 인기도 현저히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손대범 기자는 한국농구의 문제를 꼽았다. 

“한국농구는 대중이 정을 붙일만한 우상이 없어졌다. 이상민‧전희철 같은 선수의 대를 이을 선수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방송에서도 1990년대 농구대잔치 스타만 찾고 있다. 감동을 줄 만한 플레이도, 사람들을 농구장으로 끌어들일만한 스토리도 사라졌다.” NBA도 세계적인 스타가 사라지는 추세라고 했다. 손 기자는 “아직도 조던을 내세우면 조회 수가 다른 NBA기사보다 10배는 더 나온다”고 했다. 그는 농구의 붐을 이끌어내려면 선수들의 노력이 중요하지만 스토리 있는 선수를 발굴해내는 기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스포츠 전문기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기자는 글을 잘 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무리 농구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어도, 대중적으로 잘 풀어내지 못하면 안 된다. 평균득점 같은 1차 스탯이 아닌 선수의 스토리를 잘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보도자료에 익숙해져 기계적으로 쓰지 말고 한 줄이라도 재밌게 써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농구마니아들의 시선이 무섭기 때문에 지난해 앨런 아이버슨이 거지가 됐다는 식의 오보는 순식간에 신뢰성을 떨어트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유럽에 다녀와 유럽농구를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유럽은 개인기 위주의 미국과 달리 시스템 위주의 농구를 구사한다. 그는 “유럽은 느리고 덜 화려하지만 팀 전술에서 한국이 배울 게 많다. 유럽의 유소년농구시스템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조던을 동경했던 소년은 20년이 흐른 지금도 농구를 사랑하고 있다. “농구를 좋아했기 때문에 직업이 생겼고, 가족이 생겼고,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기사를 쓰고, 책을 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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