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일상은 계속된다. 비 내리는 4월 19일, 한 음악친구의 초대로 모차르트 오페라 <후궁에서 구출하기>*를 봤다. 국립오페라단의 공연, 출연 성악가들이나 오케스트라의 기량은 모차르트의 의도를 충분히 살리기엔 미흡했지만 그런대로 열과 성을 다한 무대였다. 

이 오페라는 모차르트의 이상(理想)이었던 화해와 용서를 노래한다. 무대는 18세기 터키의 하렘(후궁), 줄거리는 이렇다. 영국 귀족의 딸 콘스탄체가 터키 후궁에 노예로 잡혀와 있다. 권력자 파샤 셀림은 콘스탄체를 잘 대접하며 열렬히 구애한다. 하지만 콘스탄체에게는 사랑을 맹세한 연인 벨몬테가 있다. 그녀는 파샤 셀림에게 존경을 느끼지만 그의 구애를 단호히 거절한다. 이때 벨몬테가 콘스탄체를 구하기 위해 후궁으로 잠입한다. 일행은 계획대로 탈출을 시도하지만, 결정적 순간에 경비대장 오스민에게 체포된다. 죽음을 면할 수 없다고 생각한 벨몬테와 콘스탄체는 함께 죽게 되어 행복하다고 노래한다. 두 사람의 극진한 사랑에 감동한 파샤 셀림은 두 사람을 풀어주며 축복한다. 

화해와 용서…. 가슴 저미도록 우리가 갈망하는 주제 아닌가. 돈과 탐욕에 사로잡혀 다른 이의 고통을 함께 할 줄 모르는 요즘 세상, 모차르트의 선한 메시지는 구원의 소리처럼 다가온다. 모차르트 음악은 언제나 선하지만, 이 오페라는 특히 선한 음향으로 가득 차 있다. 서곡이 울려 퍼질 때부터 듣는 이는 행복한 결말을 예감한다. 

<후궁에서 구출하기>(1782)는 모차르트가 빈에 정착하여 처음 발표한 오페라다. 어머니의 죽음이 남긴 슬픔도, 아버지와 소원해진 빈 자리도, 알로이지아 베버에게 외면당한 아픔도 모두 뒤로 하고 모차르트는 자유음악가의 길을 새롭게 출발하고 있었다. 빈 초기 시절은 모차르트의 35년 생애 중 가장 활기와 에너지가 넘치는 시절이었다. 이 무렵 작곡한 음악들은 자유음악가로 첫발을 내딛는 모차르트의 빛나는 창조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터키 하렘이 무대인만큼 터키풍의 음악이 등장하는 게 흥미롭다. 터키 근위병인 예니세리의 군악을 표현하기 위해 드럼, 심벌, 트라이앵글을 도입했고, ‘짠짠짠짠짠~~’ 다섯 개의 음표로 된 터키풍의 리듬을 사용하여 음악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1막 파샤 셀림이 등장할 때 나오는 ‘예니세리의 합창’과 3막 모든 이가 화해하고 어우러지는 ‘터키풍의 피날레’는 이 오페라에서 가장 신나는 대목일 것이다. 

   
 
 

 

<후궁탈출> 1막, ‘예니세리의 합창’과 3막 ‘터키풍의 피날레’          
https://youtu.be/91GucyYA1RA

 

 

 

2막, 파샤 셀림은 자신의 구애를 거듭 거절하는 콘스탄체를 향해 “한번만 더 기회를 주겠다”고 선언한다. 콘스탄체가 “차라리 목숨을 거두어달라”고 간청하자 파샤 셀림은 “죽이는 대신 살려둔 채 가장 고통스런 고문을 가하겠다”고 대답한다. 이 대목에서 콘스탄체가 부르는 아리아 <어떤 고문을 가할지라도>는 이 오페라의 중심에 놓인 초석과 같다. 오케스트라의 솔로 악기가 어우러질 때 콘스탄체의 순결하고 단호한 노래가 펼쳐진다. 브라부라 풍의 이 화려한 아리아는 영화 <아마데우스>에 잠깐 등장한 바 있다. 실제 초연 때 주역을 맡은 소프라노 카발리에리가 노래하는 장면에 바로 이 아리아가 나온다.

   
 
 

 

<후궁탈출> 2막, 콘스탄체의 아리아 <어떤 고문을 가할지라도>          
https://youtu.be/ruM8d4vcGec (소프라노 에디타 그루베로바)

 

 

 

콘스탄체의 아리아에 파샤 셀림은 깊이 감동하지만, 그녀를 차지하고픈 욕구를 떨칠 수 없다. 3막, 탈출에 실패하여 잡혀 온 벨몬테와 콘스탄체는 함께 죽을 수 있게 되어 행복하다고 노래한다. 파샤 셀림은 드디어 모든 걸 포기하고 두 사람을 풀어주겠다고 선언한다. 힘있는 자가 한발 물러서자 모든 갈등이 해결되고 평화가 찾아오는 것이다. 벨몬테, 콘스탄체, 페드릴로, 블론데가 파샤 셀림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피날레 부분을 들어보자. 경비대장 오스민은 끝까지 증오와 분노로 펄펄 뛰지만 평화의 대단원을 거스를 수 없다. 터키풍의 합창이 힘차게 울려 퍼지며 오페라는 막을 내린다.

   
 
 

 

오페라 <후궁에서 구출하기> 3막 피날레                               
https://youtu.be/Tw84smtNE1Q

 

 

 

오페라에서 벨몬테는 터키의 적국 왕자로 설정되어 있다. 파샤 셀림은 원수의 자식을 용서했기 때문에 더욱 너그러워 보인다. 오스트리아의 황제 요젭 2세는 1782년, 모차르트에게 독일말로 된 이 오페라를 작곡하라고 요청했는데, 당시 오스트리아의 적국이었던 터키의 군주를 예찬하는 내용을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리버럴한 정치를 할 줄 알았다. 계몽군주 요젭 2세가 전쟁을 그만두지 못하여 1789년 터키와 싸우다가 사망한 건 아이러니다.   

   

▲ 남미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페루의 K팝 동호회 젊은이들을 만나고 있다. ⓒ 청와대

 

 

공연이 끝나고 예술의 전당을 나올 때 우리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마음이 아파오는 걸 어쩔 수 없었다. 유가족들의 피눈물 나는 마음을 진심으로 어루만졌다면 4월은 이토록 잔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5월이 돼도 이 땅의 위정자들이 마음을 돌이킬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김선우 시인이 칼럼에서 쓴 대로 “이쯤 되면 물이 요동쳐 배를 엎어버려야 하지 않겠나” 싶다. “엎어버려야 할 배와 건져 올려야 할 배 사이, 물방울 하나씩부터 꿈틀거려야 한다.” (한겨레 <김선우의 빨강>, 2015년 4월 19일)

* 이 오페라의 제목처럼 번역하기 까다로운 것도 없을 것이다. 독일말로 인데, Entführung이란 말을 도주, 유괴, 탈출 등 다양하게 번역해 왔다. 정확히 분석하면 Führung란 명사는 ‘데리고 간다’는 뜻이고, Ent란 접두사는 ‘안에서 밖으로’란 뉘앙스가 있으니 Entführung은 ‘구출’이라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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