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는 ‘현실’을 반영한다기보다는, 정확히 말해 우리가 가진 ‘소망’을 반영하는 쪽에 가깝다. TV가 중요한 매체인 이유 역시 바로 이 때문이다. TV는 대중들이 은연중에 가진 소망들을 담아내기 마련인데, 그 소망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대중들의 삶에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장광설을 늘어놓은 이유는 얼마 전 <룸메이트>가 끝났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문득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룸메이트>와 <나 혼자 산다>는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지만 또한 묘하게 비슷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 떼거지로 나오느냐 따로따로 나오느냐 하는 것만 다를 뿐이지, 연예인들의 주거 생활을 노출하고자 한다는 점에선 똑같기 때문이다.

그럼, 여기서 질문. 그런데 왜 하필 <룸메이트>는 종영됐고 <나 혼자 산다>는 지속되는 걸까.

아무래도 프로그램 제작 환경이 중요했지 싶다. 12명의 연예인이 성북동의 2층짜리 단독 주택을 임대해서 사는 것과 절반 수준인 6명이 각자의 집에서 사는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비용 차이가 있다. 반면 프로그램의 질적 완성도는 (결과적으로) 제작비용과 반비례했다. 리얼리티 쇼라고 했을 때, <룸메이트>의 출연진들이 성북동에서 간헐적으로 두 집 살림을 했다면, <나 혼자 산다>의 독거남들은 제집에서 날 것 그대로의 삶을 보여준 쪽에 가까워보였다. 어느 쪽이 더 리얼할지는 빤한 결과였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대중문화 본연의 덕목에 비춰본다면, 두 프로그램의 성패를 가른 요인은 결국 대중들이 가진 소망에 누가 더 가까이 근접했느냐 하는 데 있었을 것이다. 비용이나 완성도 문제는 사실 부차적인 사안일 수 있다. 프로그램을 지속가능하게 할 시청률이나 화제성이 있다면 얼마든 벌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청자 대중과 공명하는 것이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함께 사는 <룸메이트>와 따로 사는 <나 혼자 산다>. 한 쪽이 주택 공유라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했다면, 다른 쪽은 1인 가구의 생존 방식을 제시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룸메이트>의 폐지와 <나 혼자 산다>의 존속은 오늘날 대중들이 소망하는 주거 방식이 어느 쪽에 가까운 것인가를 보여주는 지표로 여겨질 수 있다. 즉, 누군가와 부대끼며 살고 싶은 욕구보다는 독립적인 환경에 적응하고자 하는 욕구가 더 강하다는 게 아닐까.

   
 
 

실제로 TV 밖 세상에서도 마을만들기처럼 공동체의 복원을 꿈꾸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지만, 그런 염원과는 반대로 우리나라 대중들은 과거의 공동체로 돌아가기보다는 기꺼이 혼자 살아남는 법을 추구하는 것 같다. 이 정글 같은 세상에서 어떻게든 버티고 싶은 마음이야 비슷하겠지만 그 방법론이 다르다는 것이다. 가령 <룸메이트>의 ‘식구’들은 같이 ‘살림’을 꾸려나가지만, <나 혼자 산다>의 ‘회원’들은 느슨한 ‘친목’ 도모 이상으로 나아가진 않는다.

어쨌든 이쯤에서 우리의 현실이 좀 더 명확해지는 느낌이 든다. 우리들 대다수는 공동체적 삶이 가져오는 건 해답이 아니라 골치 아픈 문제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들 대다수는 딱히 그런 문제와 씨름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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