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잉여 창간 소식을 접하고 잡지를 구독한 뒤, ‘독자위원회’를 만드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해 온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잘못) 말했다가 그는 “그럼 님이 하면 되겠네요”라는 내 답변에 덜컥 독자위원장 감투를 썼고, (한 명 있는) 독자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매달 꼬박꼬박 리뷰를 써 보내주었다. 몇 개월이 지나 외로움을 느꼈는지 그는 함께 독자위원을 할 동료를 모집했고, 그 뒤 햇수로 4년이 흘렀다. 처음 결성 당시 독자위원 다수는 대학생 및 취업준비생이었다. 지금은 과반수가 직장에 다니고 있다. 각자 바빠지고 잡지도 띄엄띄엄 나오게 돼 예전만큼 자주 모이지는 못했는데,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날 기회가 생겼다. 독자위원장이 자취를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그 근처에 사는 독자위원의 몇 명과 집들이를 겸해 모였다.

회포를 풀고 나니 분명해졌다. 우리 모두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대나 시선의 온도가 4년 전과 달라졌다. 출판사에 다니는 독자위원은 얼마 전 출판노동자 권익 향상을 위한 간담회에 참가했다. 그 자리에 참가한 청년단체 일원이 노조를 조직해 문제를 타계한다고 열변을 토하는 것을 들었지만, 그 얘기를 듣는 그는 심드렁했다고 고백했다. 분명 맞는 말인데, 현실의 복잡다단함을 일축하고 나이브하게 당위를 주장하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극우주의가 횡행하는 현실과 우파가 장기집권할 것으로 보이는 전망에 답답함을 느낀다. 재보궐 선거의 결과나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진다. 하지만 관련 뉴스를 지속적으로 따라잡으려 노력하지는 않는다. 직장인으로 하루하루를 마감하다보니 회사에서 진이 빨려 회사일과 무관한 골치 아픈 일을 들여다보기 힘들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항상 비슷하게 흘러가기에 예측가능해서 흥미가 떨어지며, 아무리 문제를 인지하고 발언해도 권력을 가진 자가 귓등으로 들으니 무기력해졌다. 나름 ‘좌빨잡지’ <월간잉여>의 독자위원까지 할 정도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인데도 그렇다.

자기가 속한 조직에서 자신의 발언이 왜곡 없이 결정에 반영되는 것을 경험한다면 일상을 침식하는 무기력은 호전될 것이다. 국가 권력자, 정치인에 대한 여론이 좀 더 즉각적으로 반영된다면, 그러니까 우리가 좀 더 이 나라의 주인처럼 살 수 있다면 정치 · 사회적 이슈를 대할 때 국민 개개인은 좀 더 숙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이 나라에서는 국민일 때보다 소비자일 때 더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예컨대 많은 이들은 악플 달기 · 불매 운동을 통해 문제적 행동을 한 연예인이나 ‘셀럽’들의 무릎을 꿀릴 때에만 한줌의 ‘주권’을 느낀다. 그러니 이 나라에서 공직자에게 들이대는 도덕적 기준보다 연예인에게 내미는 도덕적 잣대가 더 엄격할 수밖에.

그런 집단행동에 불편함을 느끼는 ‘평화주의자’들은 시끄러운 소용돌이를 피해 자신의 일상에 작은 담장을 세우고,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중시하며 살아나간다. 우리 독자위원들도 그렇다. 한 명은 자취를 시작하며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고, 살림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다른 한 명은 남자친구와 자전거를 타는 것이 요즘 유일한 낙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이는 고양이를 기를 예정이다. 체온의 따뜻함, 털의 북실함, ‘꾹꾹이’의 시원함에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기대하고 있다.

   

▲ 최서윤 월간잉여 발행인

 

 

국가공동체에 묶여 있는 이상, 국가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평화‘만’ 추구하며 사회적 이슈에 무감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시끄러운 뉴스들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은 고통스럽고, 심지어 ‘불행’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균형 잡기가 중요한데, 세상에 말과 글을 던지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에 기여하고 싶다. 추상적이고 뭉툭해서 하나마나하게 느껴지는 이야기가 아닌, 자기 삶의 영역에서 경험을 토대로 한 구체적이고 뾰족한 이야기들을 모아 잡지를 내야겠다. 일단 독자위원들에게 이날 나눈 얘기를 토대로 다음호에 실릴 글을 써달라고 압박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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