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씨의 발언이 정치 입문설로 확대되고 있다. 

노건호씨 본인은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언론은 익명의 인사들의 발언을 인용해 그를 정치판으로 소환하고 있다. 

노씨의 발언은 추도식 자리에서 문상객에게 전하는 발언으로 부적절했다는 지적부터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한 아들의 쌓인 감정으로 봤을 때 충분히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런데 노건호씨가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철저히 준비한 발언이라는 분석까지 나온 것은 심상치 않다. 

의도는 분명하다. 현재 내홍이 휩싸인 친노-비노의 대결을 극대화할 수 있는 소재로 노건호씨를 이용하는 것이다.

노씨의 발언 주요 내용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부산 유세에서 노 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입장이 담긴 남북정상회담록을 '찌라시'에 봤다며 읽은 것에 대한 조롱과 지탄이다. 

당장 노건호씨의 발언은 얼마나 야당이 무기력했으면 상주가 문상객인 김무성 대표를 격하게 비판했을까라는 여론의 목소리도 나온다. 

임계점에 도달한 야당 지지자들에게 노씨의 발언은 속 시원한 일갈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에서 선명성은 물론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486세력과 구악에 가까운 새정치의 중진 세력, 수권 정당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지리멸렬한 계파 싸움만 벌이고 있는 행태에 지친 야권 지지층에게 그의 발언은 매력적이다. 

노씨의 발언은 정치적 상상력까지 자극시키고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5공 청문회 때 일약 스타로 급부상한 것처럼 노건호씨가 이번 발언을 계기로 정치에 입문하면 신진세력의 기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에선 '노건호 대통령 만들기'라는 페이지까지 생겼다. 페이지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과 노건호씨의 발언을 비교하는 콘텐츠도 올라와 있다. 

하지만 반대로 그의 정치 입문이 설에 그치지 않고 현실이 될 때 새누리당이 아닌 새정치민주연합이 격랑에 휩싸이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벌써부터 새정치민주연합 안에서 그의 발언을 둘러싸고 계파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덩달아 보수 언론도 노씨의 정치 입문을 부채질하기 바쁘다. 그의 정계진출이 정치적 유불리를 따졌을 때 결코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노씨가 정치를 시작하면 창끝이 새누리당을 향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노씨의 정치 행보를 두고 골머리를 앓을 게 뻔하다. 노씨의 정치 입문은 시작과 동시에 숙명처럼 '친노'와 '복수'만 남게 돼 있다. 

노건호씨가 내년 총선에 출마한다는 뜻을 밝히면 급속도로 새누리당과 친노 대결의 프레임으로 짜여질 공산이 크다. 새정치 안에서도 대결 구도의 프레임이 굳어지면 다른 전략을 용도 폐기할 밖에 없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생각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발언이라는 얘기와 동시에 그럼에도 정치 입문설은 너무 앞서 갔다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노씨의 정계 진출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 아들의 정치 행보는 이전에도 대통령과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논란이 돼왔다. 

지난 2002년 1월 민주당 분당 사태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이었던 김홍일 의원이 탈당 선언을 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언론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의중을 헤아린 행보라는 분석 기사를 내놨고, 열린우리당은 이에 반색하며 김 의원의 지역구인 목포에 후보 공천을 하지 않는 문제를 검토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김 의원의 탈당은 호남여론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김 전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행보라면 선거에서 민주당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사안이었다.

   
▲ 노건호씨가 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6주기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 유족 인사를 하고 있다. ⓒ팩트TV화면 갈무리
 

김경제 전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책에서 "김홍일의 탈당에 DJ의 의중이 실려 있다면 더더구나 선거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무리를 해서라도 김홍일 의원을 끌어안는 것이 민주당을 살리는 것이라면, 당연히 김홍일 의원을 포용해야 할 입장이었다"며 그를 복당시켜 전국구 비례대표 후보로 배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김홍일 의원은 아버지인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80년 5월 심한 고문을 당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비로서 자식들에게 해준 것도 없고, 김홍일은 나 때문에 고문을 당해 장애까지 얻었소. 그런데 아비가 되어서 아들이 국회의원 정도 하는 것마저 막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돌아가 노씨의 정치 입문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현실 정치로 불러올 수밖에 없고 노건호씨의 정치인생도 아버지의 굴레에 갇힐 수밖에 없다는 예상도 어렵지 않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도 18년 동안 칩거 생활을 끝내고 정치에 입문한 뒤 아버지를 이어 대권까지 잡은 것을 보면 역대 대통령의 자녀가 국민적 지지를 받아 성공한 정치인이 될 가능성은 열려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노건호씨가 정치에 입문하는 것은 ‘자살골’에 가깝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당시 수사 외압을 폭로했던 권은희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광주 광산을에서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이 됐지만 보수 언론과 집권여당이 기다렸다는 듯이 먹잇감으로 삼은 것을 보면 노건호씨도 만신창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추도식에서 한 발언이 순수했더라도 아버지 기일에 집권 여당 대표를 향한 강한 발언을 던져놓고 이를 포석 삼아 정계 진출을 노렸다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건호씨의 발언은 대선에 이기기 위한 집권 여당 대표의 불법적 정황을 담은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 의미 자체가 퇴색될 수 있다는 얘기다. 권 의원 역시 내부 고발의 순수한 뜻이 의심을 받고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한 발언권에 힘이 실리지 못했다.  

특히 친노와 비노 등 야권 분열이 격화된 상황에서 노씨가 정치에 입문하면 친노 계파라는 선입견과 싸우는 정치를 해야 하고 야권 내부 진영 논리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노건호씨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맞는 정당을 선택해서 정치 세력화하고 정치를 할 자유가 있고 이를 나쁘게 봐선 안된다"며 "하지만 타이밍을 볼 때 발언의 의미가 퇴색되고 야당의 기반이 단단하지 않기 때문에 복수라는 키워드가 정권심판론으로 구체화될 그릇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살아 돌아온다 해도 정치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최 평론가는 "정치에 입문할 때는 동기와 스토리라인을 구축하는 과정이 중요한데 현재 야권의 정치무대는 발판과 그림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며 "야당이 분열상황을 극복하고 통합과 혁신의 과정에서 젊은 피를 수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년 총선에 노건호씨가 정계에 진출하면 진영 논리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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