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죽으면서까지 거짓말을 한 사람이 됐다.

성완종 리스트 의혹을 수사한 특별수사팀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를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종결했다.

특별수사팀은 2일 오후 성완종 리스트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성 전 회장이 지난 4월 9일 목숨을 끊은 뒤 주머니에서 정치인들의 명단과 돈 액수가 적힌 메모지가 발견됐고, 성 전 회장이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통해 불법 정치 자금을 정치인에게 뿌린 정황을 털어놓으면서 성완종 리스트 의혹은 정치권의 핵폭풍이 됐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메모지에 적혀 있던 8명 중 2명만 불구속 기소하고 나머지는 혐의를 찾을 수 없거나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는 결과를 내놨다. 

불구속 기소된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도 언론이 집중 의혹을 제기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상 언론이 불법정치 자금 수사를 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새누리당은 성 전 회장의 인간성을 운운하며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는데 검찰 수사 결과로 보면 성 전 회장이 "죽으면서까지 거짓말을 했다"는 것으로 결론이 난 셈이다. 

‘10만달러 김기춘’이라는 적혀 있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언론의 주요 검증 무대에 오르면서 성 전 회장을 만난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말을 바꿨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는 공소권 없음으로 나왔다. 성 전 회장은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도 지난 2007년 리베라 호텔에서 한나라당 경선자금 7억원을 수차례 현금으로 건넸다고 폭로했지만 서면 조사를 진행했을 뿐 관련 혐의를 밝혀내지 못했다.

성완종 리스트 의혹 수사의 핵심은 홍문종 전 새누리당 사무총장의 혐의 입증에 있다는 것이법조계의 평가였다. 

홍 전 사무총장의 혐의가 입증되면 그가 받은 불법 정치 자금은 곧 대통령 불법 대선 자금이 되고 정권의 정통성에도 치명타를 입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 전 회장은 홍 전 사무총장에 대해 "(2012년) 대선 때 홍 본부장에게 2억원 정도를 현금으로 줬다"며 "(새누리당과 선진통일당이) 통합하고 매일 거의 같이 움직이며 뛰고 조직을 관리하니까 해줬다"고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폭로했다. 성 전 회장은 회계처리가 안된 돈이라면서 "이 사람도 자기가 썼겠습니까. 대통령 선거에 썼지"라고도 말했다.

불법정치자금이 대통령 선거에 쓰였다면 당시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도 자유로울 수 없다. 박 대통령이 당시 관련 내용을 인지하고 있다는 정황이 나올 경우엔 정권이 흔들릴 수 있는 사안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하지만 홍 전 사무총장은 "단 1원이라도 받았다면 정계 은퇴를 하겠다"고 결백을 주장했다. 언론은 대선 직후 홍 전 총장의 재산이 증가했고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의혹을 제기했는데 홍 전 총장은 허위 사실 유포라며 법적 대응 의사까지 밝혔다.

애초부터 홍 전 사무총장의 혐의를 밝혀내면 박근혜 대통령에게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홍 전 총장이 정권의 비호를 받고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많았는데 홍 전 총장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수사를 종결시킨 것이다. 

또한 이번 검찰 수사 결과의 문제점은 정권의 수사 가이드라인에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20일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국회 기관보고에 출석해 "8명에 대한 메모가 있기에 (수사의)출발점이지만, 특정인이 기재한 특정인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을 것"이라며 "정치 자금 전반에 대해 확보할 수 있는 자료를 토대로 여러 가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야당을 포함한 정치 전반에 대한 수사 확대를 지시한 것이어서 물타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법무부 장관의 발언이 나온 후 조선일보는 여야 유력 정치인 14명이 성 전 회장으로부터 불법 자금을 받은 내역을 담은 장부를 검찰이 확보했다고 보도하면서 파장이 일었다. 검찰은 하지만 사실무근이라며 전면 부인했다. 

급기야 새누리당은 노무현 정부의 성완종 특별사면 논란을 제기하면서 노골적으로 성완종 리스트 의혹의 본질을 가리기 위한 연막 작전을 펼쳤는데 이에 화답해 특별수사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를 소환해 조사했다.

수사팀은 성 전 회장의 요청을 받고 건평씨가 특사를 부탁했고 그 대가로 받은 돈이 5억원으로 추정된다면서도 공소시효를 넘겨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재화 변호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노건평 수사는 리스트에도 없었고 특별사면이 2007년 12월에 이뤄졌기 때문에 혐의가 있다고 해도 공소시효 7년이 지났기 때문에 애초부터 검찰은 공소권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며 "리스트 6인에 대해서는 계좌추적도 하지 않았는데 노건평씨를 소환조사한 것은 누가 봐도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수사팀은 또한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대해선 2013년 당대표 경선 시기 3천만원을,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에 대해선 2012년 4월 총선에 앞두고 2천만원을 성 전 회장으로부터 받은 혐의로 출석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날 수사팀을 해체하겠다면서도 두 사람에 대한 수사는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홍준표 경남지사의 경우 친박 실세가 아니고 혐의가 입증이 되어도 정권에 큰 타격이 없다는 점에서 수사에 부담이 적었고, 이완구 전 총리의 경우 구체적인 금품 수수 정황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여론이 악화되면서 불가피하게 수사를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노컷뉴스
 

검찰이 정권 코드에 맞춰 수사를 했다고 보는 이유도 정치 전반에 대한 수사로 보이지만 철저히 성완종 리스트에 나온 실세들의 혐의 입증에는 눈을 감고 끼어넣기식으로 여야 정치인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인척과의 금품 수수 혐의 입증에만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 결과 발표에 냉소적인 반응도 나왔다. 인터넷에선 "성완종 리스트 수사하랬더니 노무현을 수사한 떡검", "결국 실세에겐 면죄부, 앞으로 자살하려면 뭐 남기지 말고 조용히 혼자 죽어라, 살아있는 가족, 친구들 괴롭게 된다는 경고", "성완종은 왜 죽은걸까"라며 검찰 수사를 불신하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이재화 변호사는 "검찰이 새롭게 밝힌 것은 없다. 언론이 이미 보도한 내용 수준으로 홍준표, 이완구 두 사람을 어쩔 수 없이 기소한 것으로 보이고 전체적으로 수사할 의지도 실적도 없었다"이라며 "성완종 리스트의 본질은 친박 실세 인사의 불법 정치 자금인데 홍준표와 이완구 두 사람만 기소하면 여당 쪽 비난이 예상되니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끼워넣고 야당 표적수사 반발이 나오니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까지 넣어서 정치적 타격이 없는 인사를 상대로 수사를 하고 그림을 그린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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