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이 개봉한 7월22일부터 7월31일까지 10일간 조선일보 지면에서 영화 <암살>을 소개한 기사는 7월24일자 개봉영화 10자평이 전부다. 7월31일 현재 <암살>은 54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대부분의 수치에서 조선일보가 극찬했던 <연평해전>을 압도하고 있다. “8일 만에 200만 명이 봤다”(7/2)며 홍보에 열을 올렸던 <연평해전>과는 보도태도가 딴 판이다. 

영화 <연평해전>이 개봉한 6월24일부터 7월3일까지 10일간 조선일보 지면에서 <연평해전>을 소개한 기사는 ‘영화 연평해전을 보고’와 같은 시리즈를 비롯해 사설과 기자수첩을 포함, 모두 24건이었다. 기사량으로 보면 ‘24대0’이다.

무력도발에 나섰던 북한과 전사자를 외면한 것처럼 비춰지는 김대중 정부의 모습을 담은 <연평해전>의 경우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김학순 감독을 직접 만나 감사인사를 전하는 등 비상한 관심을 보였지만, 친일파를 처단하고 독립운동에 나선 조선인들의 영화 앞에선 덤덤한 모습이다.

같은 기간 영화 <암살>을 지면에서 소개한 기사는 문화일보가 3건, 경향신문이 3건, 동아일보 2건, 중앙일보 1건, 한겨레 1건이었다. 물론 조선일보는 개봉 전인 6월26일과 7월17일 <암살>을 “미끈하게 잘 빠진 상업영화”로 소개하는 등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조선일보가 개봉이후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게 뭐 그리 대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 영화 '암살'의 주인공 안옥윤(전지현 분).
 
   
▲ 조선일보 6월30일자 2면 기사.
 

하지만 조선일보의 ‘사연’을 알아야 ‘24대0’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김대중 정부시절이던 2000년대 초 세무조사를 받은 뒤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6년 6월 횡령 및 세금포탈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3년 집행유예4년과 벌금 25억 원을 선고받았다. <연평해전>에 대한 방 사장의 입장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방상훈 사장의 할아버지 방응모 전 조선일보 사장은 광산으로 부자가 된 인물로, 조선시대에 ‘금광왕’으로 불린 것으로 전해진다. <암살>을 본 사람이라면 영화에 등장하는 친일파 강인국(이경영 분)을 떠올릴 수 있는 지점이다. 방응모 사장 시절 조선일보는 1939년 4월 29일자 사설에서 일왕 히로히토의 생일을 맞아 생일축하문을 쓰며 충성을 넘어선 ‘극충극성’이란 표현을 쓰고 일왕을 ‘지존’이라 표현했다. 이봉창의 폭탄 투척 사건이 있었던 1932년 1월 10일에는 “어료차(천왕의 마차)에 이상이 없어 오전 11시 50분 무사히 궁성에 환행하시었다”고 보도했다. 역시 <암살>에 대한 방 사장의 입장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는 항일독립운동을 말살하기 위한 ‘조선사상범 보호관찰령’에 대해서는 1936년 12월 13일자 사설에서 “사회개조를 목적으로 한 사상범을 대상으로 하는 법령인 만큼 사회적 의의가 크다고 할 것”이라 주장했다. 일제 치하 언론의 ‘친일’은 조선일보만의 역사는 아니다. 동아일보는 1939년 조선총독부 조선인 지원병 가운데 최초의 전사자가 발생하자 “조선 지원병의 영예”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방응모, 중앙일보 홍진기, 동아일보 김성수는 친일인명사전에 게재된 인물이다.

<암살>의 주인공 안옥윤(전지현 분)과 김원봉(조승우 분), 김구(김홍파 분)의 삶은 <연평해전>에 등장했던 윤영하(김무열 분), 한상국(진구 분), 박동혁(이현우 분)의 삶과 절묘하게 연결된다. 김구와 김원봉이 이루지 못한 꿈은 남과 북의 비극적인 총성으로 이어졌다. <암살>과 <연평해전>을 대하는 조선일보의 대조적 모습을 보면 반민족적 행위를 합리화했던 염석진(이정재 분)의 후예들이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역사의 반쪽만 기억하려 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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