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의미는 주체와 대상과 상황에 따라 선과 악을 넘나든다. 특히 정치 분야가 그렇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라는 뜻의 ‘政治’는 사람과 사람, 조직과 조직 또는 사회 각 분야의 이해와 갈등을 조정함으로써 나라를 조화롭게 발전시키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행위를 일컫는 숭고한 뜻을 지녔다. 그런데 그 숭고한 정치를 업으로 하는 ‘정치인’이 일반 대중에게는 긍정보다 부정의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높고 고상하기는커녕 저급하고 천박하다는 최악의 평가를 받고 있다.

조직 내에서 ‘정치적인 사람’이라고 하면, 마음에도 없이 상급자를 추어올리거나 보기에 민망한 친절을 베푸는 아첨꾼으로 통한다. 자신이나 특정 조직 또는 특정 정파의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두루뭉술한 우회적 표현을 즐겨 쓰는 비정치인의 태도를 우리는 ‘정치적’이라고 말한다. 누가 봐도 명백한 사안인데도 직접적인 입장 표명을 유보하는 자세 또한 ‘정치적’인 것으로 비난 받는다. 이처럼 ‘정치적’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의 반감을 일으키는 부정적 언어로 자주 사용된다.

반면에 ‘정치적 언어’는 종종 그 표현방식의 유연함으로 갈등과 마찰을 줄이고 인간사회의 윤활유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정치’라는 단어가 앞에 붙어 좋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소통을 잘하고 친화력이 있는 사람을 ‘정치성 있는 사람’이라 부르고, 작은 원칙이나 사소한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대의를 좇아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은 ‘정치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 받는다.

한편 현실정치판에서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과정은 치열한 경쟁을 수반하며 종종 거친 싸움판을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획득한 권력으로 바라는 목적을 달성하려 할 때 그 결과가 인간사에서 벌어지는 많은 복잡한 것들을 끌어안지 못한다면 낭패를 겪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는 매우 어려운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정치공세’는 나쁜 것인가? 최근 국정원 해킹 사건으로 자주 오르내리는 ‘정치공세’라는 말은 대체적으로 부정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 국정원 해킹 사건이 터지자 야당은 거센 비판과 함께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이는 여야를 떠나 지극히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정치행위일 터이다. 그런데 국정원 해킹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대북용’ 또는 ‘연구용’이라며 변명을 일삼던 국정원이 국정원 직원의 자살 사건이 터지자 역공을 시작했다. 해킹사건만큼이나 여러 가지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는 국정원 직원의 ‘이상한 자살사건’에 대해 국정원은 “죽음을 정치공세로 이어가는 개탄스런 현상”이라며 직원 일동의 불법 성명서까지 발표하면서 “책임 또한 따라야 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꼭 도둑이 제 발 저린 형국이다. 여당 또한 질세라 야당의 진상규명 주장을 ‘정치공세’로 몰아갔고 족벌신문과 방송 또한 정부와 여당의 입장을 지원사격 하듯 이구동성으로 ‘정치공세’를 부르댔다.

말의 어원과 이력을 따지기에 앞서,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는 ‘정치공세’라는 말이 정당한 정치행위에 대해서도 나쁜 의미를 부여하는 광범위한 여론 왜곡을 야기하고 있는 것은 매우 중차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정치권의 책임이 크지만 더 본질적인 원인은 정치행위에 대한 언론의 편향적 인식에 있다고 할 것이다. 권력을 획득할 목적으로 여야가 상호 견제하고 비판하는 ‘정치공세’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매우 자연스럽고도 필요한 일이다. ‘정치공세’는 여론의 자유시장에서 진실과 정의를 일깨우는 촉매의 구실을 한다. ‘정치공세’를 통해 국민의 올바른 판단을 유도하는 정치권은 권력 획득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며, 그 과정에서 제 정치세력들이 자신들의 오류를 반성하고 타협함으로써 국정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메커니즘이다. 그렇지 않고 정부의 失政을 보고도 아무런 비판도 합리적 ‘정치공세’도 없다면 그 사회는 정치가 죽은 사회다.

흔히 정당의 목적은 집권이라고 말한다. 집권은 국민의 마음을 얻어 국가운영의 권리를 획득하는 것이며 이는 정당의 궁극적 목표인 동시에 민주주의의 작동방식이다. 야당이 정부의 잘못을 발견했을 때 ‘정치공세’는 정당하고 기본적인 정치행위이다. 하물며 정보기관의 해킹과 같이 국민의 기본권을 심하게 침해하는 행위에 대한 야당의 정치적 공격에 ‘정치공세’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야당의 역할을 포기하라는 것이며 일방통행의 독재를 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기실 박근혜 집권 절반의 기간은 정권을 반납해야 할 정도의 중차대한 대형 비리들로 넘쳐났고 그 상당부분은 국정원이 저지른 사고였다. 그때마다 여당은 야당의 비판을 ‘정치공세’라는 딱지를 붙여 공격했고 그 해결의 종착지는 항상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정치검찰의 수사였다. 그 결과 제대로 밝혀지거나 해결 된 것은 하나도 없고 국정원은 또 다른 사고를 연속해서 터뜨렸으며 이 악순환으로 나라는 만신창이가 됐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데는 여러 원인들이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책임은 단연코 언론에 있다. 수세에 몰린 여당을 옹호하는데 급급하고 물타기에 몰두하며 야당의 정당한 ‘정치공세’를 국정 발목잡기로 왜곡하는 언론이야말로 국민을 핫바지로 여기는 국민경시의 모습이다. 정파적 이익을 위해 합리적 의혹과 요구를 묵살하고 진실규명을 방해하는 언론의 이러한 ‘정치행위’야말로 가장 악질적인 정치공세이며 민주주의와 역사에 대한 반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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