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저 여자는 남편한테서 버림받았겠지? 애까지 뺏기고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됐을 거야. 하지만 디자인 같은 데에 놀라운 재능이 있어서 총각 기조실장 눈에 띌 거고 결국 둘이 사랑하게 될 거야. 물론 기조실장 정혼자랑 전 남편이 나타나서 둘 사이를 훼방 놓겠지. 내 말 맞지?”

소위 엄마들이 보는 드라마에 대해 갖게 되는 궁금증은 대개 하나로 모인다. 저 뻔한 걸 대체 왜 보는 걸까.

공교롭게도, 요즘 방영되는 아침드라마들이 그동안의 문법들을 골고루 나눠가지고 있다. <이브의 사랑>은 배신당한 여주인공이 고난을 극복하는 정통적 이야기를 채택하고 있고, <어머님은 내 며느리>는 고부지간이 각각 재혼을 했는데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고 시어머니가 며느리가 되는 막장 요소를 줄기로 삼고 있으며, <그래도 푸르른 날에>는 엄마들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70년대를 배경 삼아 좋았던 시절의 향수를 건드린다.

물론 김치 싸대기부터 시작해서 스파게티 싸대기가 난무하고 오렌지주스를 도로 뱉어내는 등 자극적 요소들도 한 몫 거들긴 하지만, 아침 드라마의 핵심은 그녀들이 처한 상황은 극단값으로 묘사하고 그녀들의 욕망은 최댓값으로 담아내려 한다는 데 있다. ‘막장’이란 말도 사실은 이 같이 롤러코스터와도 같은 서사적 장치와 무관하지만은 않다. 과거의 좋았던 시절로부터 시작해서 → 분신처럼 생각했던 존재로부터 배신 → 밑바닥으로의 추락 → 주변인들의 도움 → 복수와 부흥을 위한 고군분투 → 권선징악을 통한 갈등 해소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들이 대표적이다.

   
▲ 위에서부터 MBC ‘이브의 사랑’, SBS ‘어머님은 내 며느리’, KBS ‘그래도 푸르른 날에’
 

흥미로운 것은 ‘평범했던 주부가 배신을 당해 가정 파탄을 경험하고 경력단절여성으로서 좌절에 빠진다’는 위기 국면은 20~30주 동안 방영되는 이야기 구조에서 초반부의 2~3주 정도로 압축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아침 드라마의 핵심이 ‘주변 도움’ 그리고 ‘복수와 부흥’으로 특징지어지는 소망 성취에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그렇다면 대체 저 드라마들은 그녀들의 어떤 소망을 담아내고 있는 걸까. 거두절미하자면 복수라는 가시적 요소는 밑밥에 불과할지 모른다. 반복되는 이야기 구조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것은 ‘주인공이 직업적으로 자아실현에 성공하고, 총각 남성과 러브라인을 이루며, 아이와 가족의 행복을 지킨다’는 판타지 요소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사랑·가족 병립’을 향한 소망이라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말해,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침드라마 등등이 막장일 수는 있어도 거기에 빠져 있는 시청자들의 취향까지 막장이라고 볼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녀들에게 이들 드라마는 일종의 소망의 거울일 뿐이고. 오히려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들의 소망이 지난 십수년간 유지·반복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뻔한 건 드라마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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