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승인되면서 찬반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관광개발 효과 대 환경파괴라는 프레임이 부딪히면서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사업 논란이 박근혜 정부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으로 재현되는 분위기다. 

자연에 인위적인 구조물을 설치할 때 환경 파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항상 있어왔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존하는 것이 숭고한 가치이며 이를 거스르면 자연의 보복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가 뒤따랐다. 이에 맞서 환경 파괴는 기우에 지나지 않으며 환경 보존 주장은 주민들의 지역개발 의지를 꺾는 목소리에 불과하다는 주장으로 맞섰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를 놓고도 환경단체는 대청봉에서 1.4킬로미터 떨어진 끝청으로 연결되는 오색케이블카의 위치 때문에 환경 파괴가 불가피하고 산사태 가능성까지 제기했지만 정부는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일축했다. 여기까진 기존 환경 개발 논란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설악산 케이블사업 승인이 정당하다며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발상의 주장이 나왔다. "산을 민주화해야 된다"는 주장이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CBS와 인터뷰에서 "현재 산을 일부 도보를 이용하는 건강한 사람들만 등산할 수 있게 하고 있지만 않느냐. 이런 측면에서 해외 관광객 그 다음에 노약자 분들도 자연을 좀 즐길 수 있게 소위 '산을 민주화하자' 그런 차원에서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면서 산을 개발하자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산을 오를 수 없는 몸이 불편한 사람과 노약자, 그리고 짧은 일정으로 우리나라를 찾은 해외 관광객에게 케이블카에 올라 설악산을 볼 수 있는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이를 ‘민주화’라는 말로 치환한 것이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의 ‘민주화 발언’은 즉흥적으로 나온 게 아니라 프레임을 선점하기 위해 철저한 계산에 따라 나온 것으로 보인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에 반대하는 사람은 ‘산의 민주화’에 반대하는 사람이 되고 당장 “몸이 성한 사람만 산에 오르라는 것이냐”는 반발에 부딪히게 된다. 

'케이블카 설치가 되지 않은 산은 그럼 비민주화된 산이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지만 이미 '케이블카 설치=민주화'라는 도식에 따라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면 ‘비민주화’라는 부정적인 말을 낳게 한다. 

향후에도 케이블카 찬성론자들에게 ‘산의 민주화’라는 말은 두고두고 회자될 수도 있다. 케이블카 설치는 좋은 것이라는 인식, 그리고 이를 반대하면 나쁜 사람의 이미지를 만들어버리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승인이 나자 울주군 신불사 케이블카 설치에 찬성하는 범시민위원회가 지난 31일 “신불산 케이블카는 노인과 장애인 등 보행 약자들에게 영남알프스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며 산을 민주화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강조하고 나선 것도 우연이 아니다.  

   
▲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내용과 조감도. 사진=양양군의 설악산 국립공원 공원계획 변경(안)에서 발췌
 

사실 민주화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 뿐이지 케이블카 설치론자들은 장애인 접근권을 설치 근거로 내세워왔고 케이블카 설치 논란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대결구도로 몰아가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북한산 케이블카 설치 논란 당시 정부는 노약자와 장애인의 접근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당시 케이블카 설치에 반대해 북한산 산행 시위를 나선 것은 장애인들이었다. 

이들은 당장 집밖을 나가면 교통접근권이 제한돼 있고 특히 4대강 사업이 추진되면서 장애인 예산이 삭감돼 활동보조인을 축소했던 것이 바로 어제인데 정부가 불리할 때만 장애인 접근권을 강조하고 있다는 불만을 터뜨렸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진정성을 갖고 있었다면 케이블카 설치 근거로 장애인 접근권을 얘기할 게 아니라 거리의 수많은 장애인 접근 불편 사항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누려야될 설악산을 민주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모순을 안고 있다. 케이블카 설치를 포함해 설악산 관광을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은 스위스 체르마트 마을을 모델로 하고 있다. 전경련은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결과 현재 설악산 관광객이 하룻밤을 묵고 쓰는 돈이 3만6000원에 불과한데 스위스 체르마트 마을의 경우 18만원을 쓰고 있다며 설악산 산지 관광이 개발되면 스위스 체르마트 마을과 같이 수십만원의 돈을 쓸 것(경제 효과)이라고 주장한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도 산을 오를 수 있도록 ‘민주화’시켜야 한다면서 돈이 없으면 오를 수 없는 산으로 만들겠다고 주장하고 있는 꼴이다.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설악산의 모습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중국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세계 각지를 여행하고 글을 쓰는 전명윤씨는 10여년 전 중국 타이산(태산)을 다녀오고 난 뒤 충격을 받았다. 해발고도 1535미터인 타이산을 도보로 오르는 중국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천외촌에서 산 중턱인 중천문까지 버스를 타고 도착한 뒤 케이블카를 타면 20분 후에 남천문에 다다른다. 남천문 케이블카 정류소에는 관광호텔이 있다. 그리고 남천문에서 산 정상인 옥황정까지 800미터(고도 40미터)를 흔히 볼 수 있는 돌계단을 이용하면 오를 수 있다. 

전씨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한국의 지리산을 가본신 분들을 느낄 것이다. 대피소 숙박을 위해 꽤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며 대피소 안에서 하다못해 세면조차 불가능하다. 물을 길을 수는 있겠지만 환경에 대한 고려로 그런 사소한 공사조차 하지 않고 이걸 한국의 등산객들은 받아들이고 있다"며 “중국인들도 처음에는 그랬다. 산을 오를 수 없는 장애인과 같은 약자들에게 즐거움과 권리를 주기 위해서라고 그렇게 산은 파헤쳐진다. 케이블카가 생기면 바로 욕구는 그에 걸맞는 길을 닦으라 할 거고, 식당이 필요하다 할 거고 숙박이 필요하다 할거다. 난 이런 산을 원치 않는다. 산이란 건 정상이란 건 그곳을 디딜 수 있는 노력을 한 사람에 주어지는 거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힐 신고 올라갈 수 있는 정상에서 그 정상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라고 반문했다.

전씨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성지로 가는 모든 길은 없애야 한다고 했다. 신성한 곳일수록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고 노력을 하지 않은채 바퀴달린 것에 몸을 싣고 단지 돈만 있으면 모두가 갈 수 있는 성지 순례를 비판한 것"이라며 "많은 명분으로 포장하지만 케이블카 설치는 돈이 있으면 굳이 두 다리로 힘들게 올라가지 말라는 이야기다. 장애인이나 노약자의 이동권의 문제가 아니라 돈이 있냐 없냐의 문제이고 수익을 위해 자연을 훼손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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