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같으면 너무 빨간 색 아니냐고 했겠지만 요즘은 저게 새누리당 색깔이니까…”

9월 2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노동권 향상을 위한 세미나’ 포스터를 보며 한 참석자가 한 말이다. 포스터는 빨간 색이었다. 새누리당은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변화하겠다며 진보정당에서 주로 사용하던 빨간 색을 가져왔다. 

새누리당이 2012년 총선을 전후로 내세웠던 여러 변화의 모습 중 하나가 이주여성인 이자스민 의원을 비례대표로 공천한 것이다. 그런 새누리당이 진보진영의 관심사로 인식되던 이주노동자 문제까지 선점하는 모양새다. 이주노조 합법화를 계기로 이주노동자 문제가 대두되고 있던 차다. 2일 이자스민 의원의 주최로 열린 이주노동자 노동권 향상을 위한 세미나에는 고용노동부 관계자와 시민사회단체, 이주노조 등이 참여했다. 

   
▲ 이주노동자 노동권 향상을 위한 세미나 포스터.
 

이날 세미나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 모두 축사를 보냈다. 새누리당 당 차원에서 이주노동자 문제 선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당에서도 이자스민 의원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 걸로 안다. 지역구는 만만치 않아서 어려울 수도 있지만, 어쨌든 당에서도 이주노동자 관련 이슈를 계속 가져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무성 대표는 축사에서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인권과 노동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은 엄연한 국제규범이다. 더욱이 인력난 해소라는 국가적 필요성에 따라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들을 국가가 보호해 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밝혔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불과 50년 전 동북아의 작은 나라로 한국의 젊은이들은 세계 각지에서 피와 땀으로 기적을 만들었다. 그토록 어렵고 암울한 시기를 겊친 만큼 우리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진우 이주노조 사무차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이자스민 의원의 개인적인 관심사도 있겠지만 새누리당이 이주노동 뿐 아니라 이주민 전체에 대해 의제를 선점하는 부분이 있다. 난민법도 새누리당에서 통과시켰고, 이주아동권리보장법안도 이자스민 의원이 발의했다”며 “의제를 먼저 선점하고 국회 안에서 여론화한다는 것은 분명 당내에서 논의를 거쳐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이주민 문제에 대해 나름의 플랜이 있는 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박 차장은 또한 “반면 야당이 의제를 못 가져가는 것 같다”며 “장하나 의원 등 몇몇이 국감 때 질의도 하고 관심은 있어보이는데 전체 당론으로 가져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현상은 보수정당이 적극적으로 나설 정도로 이주노동자가 겪는 차별이 심각하다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고용허가제 하에서의 ‘사업장 변경 제한’이다. 고용허가제란 국내 인력을 구하지 못한 기업이 정부로부터 ‘외국인 고용허가’를 받아 적정규모의 외국인 근로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하는 제도다.

외국인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고법)에 따르면 고용허가제 내에서 이주노동자들은 해고나 폐업, 임금 미지급 등 제한된 사유에 한해서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 

우삼열 아산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소장은 “열악한 기숙사 환경, 동료의 산재 피해로 인한 공포와 두려움,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육체적 피로와 고통 등은 근무처 변경의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심지어 손가락이 잘리는 산업재해 피해를 당해 재발의 공포에 시달리는 경우조차 변경의 사유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직장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 사진=이하늬 기자
 

 

특히 2009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3년 이내로 근로계약을 체결할 수 있게 되면서 이주노동자들은 3년 간 사업장을 이동할 수 없게 됐다. 나아가 계약만료 이후 1년 10개월 체류연장을 하려 할 경우 고용주의 추천을 받아야한다는 조항으로 인해 이주노동자는 고용주가 1년 10개월을 같은 사업장에서 계속 일하기로 하는 계약서에 사인을 요구해도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런 이유로 2014년 10월 국제엠네스티는 4년 10개월 간 자발적 사업장 이동이 불가능한 현실에 대해 “인신매매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2012년 8월 UN인종차별철폐위원회도 이주노동자의 사업자 변경 제한 등이 포함된 고용허가제를 재개정하라고 권고했다.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노동자는 자기가 그만두고 싶을 때는 그만둘 수 있어야 하지만 이주노동자는 그게 안 된다. 그만두고 싶어도 못 그만두고 정해진 사유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며 “이러다보니 현장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사용자들에게 돈을 주고 나를 잘라달라고 요구하면서 사업장을 변경하는 사례까지 있다”고 밝혔다.

윤 변호사는 또한 “정부는 내부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업자 변경 제한 등 조치를 취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사용자들이 갑싼 노동력을 제공받게 하기 위해, 사용자를 위해서 이주노동자 제도를 설계하고 점점 더 나쁜 제도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한숙 이주와인권연구소 소장 역시 “100만원 주고 해고 해달라고 각서를 쓰는 이주노동자도 봤다”며 “정부가 사업장 변경 제한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이 보기에 고용허가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업장 변경 제한”이라며 “사업주들이 ‘너를 3년 간 다른 데 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며 이 장치를 무기로 삼고 있다. 이 무기가 너무 무섭다”고 밝혔다. 

‘성실외국인근로자 재입국 제도’도 문제다. 외고법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입국한 날부터 3년 간 일할 수 있지만 사업주가 3년 만료 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재고용 허가를 요청한 경우 1년에 한하여, 2년 미만의 범위 내에서 취업활동 기간을 연장받을 수 있다.

우삼열 소장은 이에 대해 “사업주에게 부여된 재고용의 독점적 지위로 인하여 사업장 내에서의 지위의 비대치성과 이주노동자의 고용 종속이 심화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근로조건의 악화로 이어진다”며 “3년 만료를 앞둔 이주노동자는 인권 침해를 당해도 재고용을 위해 이를 감내할 수 밖에 없다. 취업활동기간을 ‘3년+1년 10개월’이 아니라 ‘4년 10개월’로 바꾸고, 이 기간에 대해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산업재해의 사각지대에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호법에 따르면 법인 아닌 자의 사업으로서 상시근로자 수가 5명 미만인 사업에는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농가의 경우 5인 이상의 이주노동자를 상시 고용하고 있는 농가의 비율은 12.2%다. 이들은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농가에서 일한 이주노동자의 57.8%가 작업 도중 부상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우삼열 소장은 이에 대해 “산재보험에 가입한 업체에 대해서만 외국 인력을 배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한숙 소장은 “법적으로 고용을 못하게 하면 그 영역을 미등록 노동자들이 채울 것”이라며 “수요가 있는 상황이니 가급적 합법의 영역을 넓히는 방식이 부작용이 적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한숙 소장은 또한 “농가에서는 하루 단위로 계약하거나 농번기에는 대량 고용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에 5인 이상 5인 미만이라는 산재 보험 기준이 의미없을 때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고용노동부 측 관계자도 참석했고, 고용노동부와 이주노동자, 이주노동자 관련 시민단체 간의 인식 차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 세미나에 참석한 마성균 고용노동부 외국인력담당관실 과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자스민 의원실 제공
 

마성균 고용노동부 외국인력담당관실 과장은 “고용허가제는 기본적으로 외국인에 대해 제한하는 제도다. 따라서 외국인근로자들을 불편하게 하고 제한하는 부분이 있는 건 맞다”며 “사업장 변경 제한을 폐지하면 그건 고용허가제가 아니고, 고용허가제 내에서는 폐지하지 못해 그동안 보완해 왔다”고 설명했다.

마 과장은 또한 “사업주의 이익을 도모하고 근로자의 인권 무시한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고용허가제라는 제도 자체가 산업연수생 제도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나온 것인데, 고용허가제의 기본적인 전제조건들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며 “10년 동안 정부가 근로자 인권을 더 많이 후퇴시켰다 부분에 대해선 동의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이에 우삼열 소장은 “마 과장 말씀을 듣다보니 고용노동부가 재도개선 의지가 없다고 느껴진다. 이 정부 하에서 개선이 이루어질지 회의감이 든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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