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운율에 맞게 시를 쓸 수 없습니다. 시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빛과 그림자의 효과를 능숙하게 다뤄서 제 마음을 보여 줄 수 없습니다. 화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몸짓과 손짓으로 제 생각과 느낌을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무용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리를 통해서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음악가이기 때문입니다.” (만하임에서 아버지 레오폴트에게, 1777. 11. 8)

모차르트는 피아니스트였지만, 작곡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오페라 작곡에 열정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는 머릿속에 온통 오페라 뿐이라고 썼습니다.

“아버지, 저는 작곡가이자 카펠마이스터가 돼야 할 사람입니다. 신이 주신 이 재능 - 자랑하는 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 을 개인 교습으로 소모해 버리기는 싫습니다. 작곡과 비교하자면 피아노는 무시해도 좋습니다. 피아노는, 비록 돈이 되긴 하지만, 제게 액세서리 같은 것입니다. 요즘 제 머리는 오페라 구상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독일 오페라, 프랑스 오페라, 이탈리아 오페라….” (만하임에서 아버지에게, 1778. 2. 7)

오페라에 대한 모차르트의 열정은 기악곡에도 흔적을 남겼습니다. 오페라의 등장인물을 묘사하듯, 모차르트는 기악곡에서도 종종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그렸습니다. ‘음악의 초상화가’ 모차르트가 실제로 사람을 음악으로 묘사한 대표적인 곡이 있습니다.  

   
▲ 요한 슈타미츠의 뒤를 이어 만하임 악파를 이끈 크리스찬 칸나비히(1731~1798). 모차르트는 “칸나비히씨가 얼마나 좋은 친구인지 모른다”고 썼다
 

1777년 10월말, 모차르트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만하임에 갔습니다. 아버지는 실직하지 않으려고 잘츠부르크에 머물렀고, 대신 어머니 안나 마리아가 동행했습니다. 만하임 오케스트라는 당시 유럽 최고 수준으로, “바이올린 연주자가 30명을 넘었고,” “클라리넷이 놀라운 효과를 내고 있었고,” ‘단원들이 모두 장군으로 이뤄진 군대’ 같았습니다. 이 오케스트라는 역동적으로 상승하는 음계가 일품이었고, 한 음표 안에서 크레센도*를 연주해서 이른바 ‘만하임 크레센도’ 혹은 ‘만하임 로케트’라 불리는 놀라운 효과를 냈다고 합니다. 모차르트는 이곳의 오케스트라에 열광했습니다.

모차르트는 이곳의 지휘자 크리스찬 칸나비히(1731~1798)와 친하게 어울렸습니다. 1763년, 7살 꼬마 모차르트를 보고 경탄했던 칸나비히는 어른이 돼서 만하임을 찾아온 모차르트를 크게 반겼습니다. 두 사람은 25살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친구로 지냈지요. 모차르트는 그의 지휘 실력을 높이 평가하여 “제가 본 지휘자 중 최고”라고 썼습니다. 하지만 작곡가로서는 그리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은 듯 합니다. “그의 교향곡은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시작합니다. 느린 템포의 유니슨*이죠.” 하지만 모차르트는 “칸나비히씨가 얼마나 좋은 친구인지 모른다”고 덧붙였습니다. 칸나비히씨 집에서 모차르트는 가정 음악회를 열고 자신의 피아노 소나타 6곡 - K.279부터 K.284까지, 최초로 쓴 6곡의 소나타 묶음 - 을 모두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모차르트는 그의 딸 로자에게 피아노를 가르쳤습니다. 작곡에 비하면 피아노 개인 교습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지만, 모차르트는 로자의 피아노 교습에 무척 공을 들인 듯 합니다. 로자는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6번 Bb장조를 연주했고, 세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K.242 연주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어린 나이지만 꽤 뛰어난 실력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무렵 아버지에게 쓴 편지는 그녀의 이름을 여러 번 언급하고 있지요. 모차르트가 만하임에서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C장조 K.309의 안단테는 15살 로자 칸나비히의 초상화와 같은 곡입니다.

“칸나비히씨의 큰 딸 로자는 15살로, 아주 예쁘고 매력적입니다. 총명하고 나이에 비해 침착합니다. 진지해서 말이 적지만, 일단 말을 하면 유쾌하고 다정합니다. 어제도 그는 제게 엄청난 기쁨을 주었습니다. 제 소나타를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잘 쳤고, 특히 안단테는 표정을 잘 담아서 연주했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곡을 작곡했냐” 묻더군요. 로자양의 성격에 꼭 맞게 작곡했다고 대답해 주었지요. 로자양은 이 안단테와 똑같아요.” (만하임에서 아버지 레오폴트에게 1777. 12. 6)  

피아노 소나타 C장조 K.309 안단테 (피아노 미츠코 우치다)
http://youtu.be/0NzSmbQsMEY

이 곡에 ‘로자 칸나비히’란 부제가 붙어있지 않은 게 이상하군요. 이 안단테는 진지하고, 유쾌하고, 다정합니다. 그림은 아니지만, 로자가 어떤 느낌의 사람인지 눈에 보이는 것 같지요? 선율이 사람의 성격을 닮았다는 건 모차르트 음악의 매우 중요한 특징으로, 모차르트 이후의 근대 음악은 바로 이 점 때문에 과거의 음악과 다르게 들리는 것입니다. <현대음악강의>를 모차르트에서 시작한 작곡가 이건용 선생의 지적입니다. “모차르트의 선율은 생기와 개성이 있고, 한 사람의 살아있는 인물을 보는 듯 합니다. 너무나 쉽게 그 음악의 표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표정 있는 선율을 사용한다는 건 음악에 등장인물, 즉 캐릭터를 출현시킨 것과 같습니다. 이로써 음악 작품은 자신의 고유한 성격과 개성과 운명과 역사를 갖게 됩니다.” (이건용 <현대음악강의> p.27~p.29)

로자 칸나비히에 대한 모차르트의 언급을 보면 피아노 선생으로서 모차르트가 어떤 점을 중요시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그녀의 오른손은 뛰어나지만 왼손이 아주 망가져 있다고 지적합니다. “로자는 재능이 있지만 연주 습관이 잘못돼 있습니다. 그녀는 바른 템포로 연주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철칙을 어릴 적부터 무시하며 피아노를 배워 온 거지요. 하지만 잘 가르치면 어느 정도 할 수 있겠더군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치면 아무 가망이 없어요. 이런 자세로는 정확한 템포를 지킬 수가 없거든요.” (만하임에서 아버지 레오폴트에게, 1777. 11. 14)  

모차르트는 로자 칸나비히의 재능을 살리기 위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제가 그녀의 정규 음악 교사였다면 일단 그녀가 치던 모든 악보를 덮어 버리고, 건반에 손수건을 덮은 채 연습시켰을 거에요. 처음에는 오른손만, 다음에는 왼손만 따로 연습하게 하고, 패시지, 트릴*, 꾸밈음을 처음에는 느리게 시작해서 점차 빠르게 하도록 하고, 결국 양손이 완벽하게 훈련될 때까지 연습시키는 거죠. 그렇게 한다면 저는 그녀를 일류 피아니스트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러지 못한 게 굉장히 아쉽군요. 로자는 재능이 뛰어나고, 악보를 잘 읽고, 자연스런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었고, 감정을 넣어서 연주할 줄 알거든요.” (만하임에서 아버지에게, 1777. 11. 8)

아무튼, 두세 달 돌봐 주니까 로자 칸나비히는 누구 앞에서든 잘 연주할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14살 나이의 아마추어 연주자 치고는 그 정도면 꽤 잘 친다고 할 수 있다는 거죠. 모차르트는 “만하임 사람들은 다 알지만 그건 모두 내 덕분”이라고 으쓱했습니다. “그녀는 곧 ‘세련된 취향’을 갖게 됐고, 트릴도 잘 연주할 수 있게 됐어요. 그녀는 속도 감각도 훨씬 더 예민해졌고, 손가락 놀리는 것도 많이 좋아졌지요. 그 전에는 잘 할 줄 몰랐던 것들입니다. (파리에서 아버지 레오폴트에게, 1778. 3. 24)   

모차르트 시대에 피아노는 빠르게 진화하고 있었습니다. 1698년 이탈리아의 크리스토포리(Cristofori)가 최초의 피아노를 발명했습니다. 아직은 하프시코드(독어로 쳄발로, 불어로 클라브생)가 주류였지만, 피아노의 초기 형태인 포르테피아노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모차르트는 1777년 아우구스부르크에서 요한 안드레아스 슈타인이 만든 포르테피아노를 연주해 보고 그 뛰어난 성능과 소리에 깊이 매혹됐는데, 이 C장조 소나타는 새로운 포르테피아노를 염두에 두고 작곡한 첫 작품입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연주 스타일은 어땠을까요? 그는 유럽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널리 인정받았습니다. 특히 템포를 안정되게 유지하는 왼손 기술이 뛰어났고, 섬세한 느낌을 살린 즉흥 연주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다고 합니다. 미하엘 켈리의 증언입니다. “모차르트가 연주할 때의 섬세한 느낌, 민첩한 손놀림, 특히 왼손의 힘있고 당당한 베이스, 그리고 조바꿈할 때의 절묘한 분위기 반전은 나를 경악케 했다.” 모차르트의 전기를 제일 먼저 쓴 니메첵도 이렇게 얘기했지요. “빈에서 그의 피아노 솜씨는 어딜 가나 찬탄의 대상이었다. 자유자재로 건반을 누비는 그의 놀라운 테크닉, 특히 왼손의 베이스는 독보적인 것이었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표현력은 가장 큰 매력이었다.”

오른손이 감정 표현을 위해 루바토*를 구사할 때도 왼손은 엄격하게 템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게 모차르트의 확고한 원칙이었습니다. 모차르트는 피아노를 연주할 때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으며, 편안하고 자연스런 표정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모차르트는 어떤 연주가 좋은 연주라고 생각했을까요? 한 마디로, “적절한 표정과 감성(taste)을 잘 살려서 마치 자기가 그 곡을 작곡했다는 느낌이 들도록 연주하는 것”이라고 그는 정의했습니다.  

모차르트는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연주하는 것을 가장 싫어했습니다. 만하임에 있을 때 아베 포글러(1749~1814)가 협주곡 C장조 K.246을 연주하는 장면을 본 모차르트는 험한 말로 그를 혹평합니다. “그 사람은 1악장을 ‘프레스토’로 하더니 2악장은 ‘알레그로’로 하더군요. 기가 막혀서 3악장을 어떻게 하나 들어보니까, 맙소사, ‘프레스티시모’로 하지 않겠어요? 그 사람은 음표도 악보대로 연주하지 않았어요. 왼손이 연주하는 베이스를 내가 쓴 악보와 다르게 하지 않나, 심지어 화음과 멜로디까지 악보와 다르게 창작해서 연주하더군요. 아무튼, 그런 속도로 연주하면 뭐가 나오겠어요? 청중들 눈에는 음악도 안 보이고 연주하는 손도 안 보이겠지만, 제가 볼 때 그런 식으로 연주하는 거는 ‘똥 싸는 거’나 마찬가지죠.”

피아노를 전공하는 사람들은 모차르트가 어렵다고 입을 모읍니다. 피아니스트 아르투어 슈나벨이 말했지요. “모차르트는 어린이가 취기엔 너무 쉽지만 전문 피아니스트가 치기엔 너무 어렵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들 중에는 모차르트가 밉다는 사람이 적지 않더군요. “자기가 잘 친다고 이렇게 어렵게 작곡하다니!” 음정, 박자, 음색, 호흡…. 뭐든 조금만 넘치거나 부족해도 숨을 곳이 없다고 하죠.

모차르트는 자기가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연습한 사람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클라비어 연주자 게오르크 리히터(1759~1789) 앞에서 연주한 적이 있는데, 모차르트의 손가락 놀림을 뚫어지게 쳐다 보던 리히터가 이렇게 말했다지요. “하느님 맙소사, 나는 아무리 열심히 땀 흘리며 연습해도 아무 박수도 못 받는데, 모차르트씨, 당신은 애들 노래처럼 그렇게 쉽게 연주하시다니….” 모차르트의 대답입니다. “그래요, 저도 열심히 연습했지요. 더 이상 열심히 안 해도 될 만큼 열심히 했단 말입니다.”

* 유니슨 unison : 하나의 선율을 둘 이상의 악기가 똑같이 연주하는 대목을 가리킴.
* 트릴 trill : ‘떤꾸밈음’으로 번역한다. 2도 음정을 빠르게 되풀이 연주하면 떨리는 느낌을 주며, 화려한 장식음의 효과를 낸다.  
* 루바토 rubato : 도둑맞은 시간이란 뜻. 감정을 싣기 위해 잠깐 템포를 느리게 잡는 연주를 말한다. 모차르트는 루바토 직후에 바로 원래 템포로 돌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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