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올라와 많은 인기를 끌었던 연재 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지방시)를 읽는 내내 알고 지내던 조교 형 A를 떠올렸다. 공부가 좋아 대학원에 갔다는 A는 학부생들에게 아주 간단한 부탁을 할 때도 미안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던 착한 심성을 지닌 형이었다. 그런 A가 어느 날 갑자기 학교에서 사라졌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A가 조교 일을 그만둔 이유를 알게 됐다. A는 조교 일을 버티지 못했다고 했다. 말이 조교였지 그냥 교수 시다바리였기 때문이다. 지방시에도 ‘잡일 도와주는 아이’라는 비슷한 표현이 등장한다.

보고 싶은 DVD를 구해오라는 등 교수의 사적인 심부름은 다반사였고, 컴퓨터가 고장 나거나 기기가 잘 작동하지 않을 때마다 기기 대신 사과해야했다. 어느 날처럼 교수가 차 키를 주며 주차를 시키던 날 A는 조교 일을 때려 치고 학교를 떠났다. “이런 일 하려고 대학원 온 게 아니다”고 분통해 했다는 말은 다른 이를 통해 전해 들었다. 

A는 대학원생이라는 신분을 견디지 못했다. 이 헬조선에는 버텨내지 못하는 자들과 끝까지 버텨내려 바둥 치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설사 버텨낸다고 해도 달콤한 선물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묵묵히 버틴다. 미생의 작가 윤태호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버텨내는 것이 능력”이라고 말했다. 헬조선에서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신념을 유지하며 버텨내는 것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지방시의 주인공, 서른세 살의 인문학 전공자인 시간강사 ‘309동 1201호’는 내가 대학생 때 만났던 그 형과 달리 어떻게든 버텨내고 있는 사람이다. ‘오늘의 유머’에 연재되고 슬로우뉴스, 직썰에 연재돼 누적 조회 수 200만을 넘겼던 309동 1201호의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됐다. 

309동 1201호는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자신의 고된 생활을 미화하지도 않고, ‘짱돌을 들어라’고 함부로 훈계하지도 않는다. 다만 담담하게 자신이 겪어온 길을 설명할 뿐이다. 

‘309동 1201호’가 학업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지도 교수의 전공 강의를 듣고 지적 자극을 받았고, 교수의 권유로 대학원에 갔다. 공부가 좋아서 대학원에 갔지만, 헬조선에서는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건 모험에 가까운 일이다. 

   
▲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 309동1201호 지음 / 은행나무 펴냄
 

한 학기 등록금이 450만원인데, 조교 활동으로 보전되는 비용은 300만원뿐이다. 300만원은 수업이 있는 주 9시간을 제외하고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5시까지 사무실에서 조교 근무를 한 대가로 받는 돈이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 치고는 잃는 것이 꽤 크다. ‘5분 대기조’처럼 비상사태를 대비한 교수의 호출을 기다려야 하는, 대기시간이 무제한인 노동자다. 

비상사태라는 것은 시답잖은 일이다. 교수가 대량의 복사를 맡기며 “10분 후에 찾으러 올게”라고 하거나 어느 교수가 연구실 책상 배치를 좀 바꾸고 싶은데 남자 조교들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다. ‘309동 1201호’는 비상사태를 대비해 늘 학교 근처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명절에도 고향에 가지 못했다.  

이렇게 조교로 일해도 한 학기에 150만 원, 1년에 300만 원이 더 필요하다. 물론 먹고 자고 입는 비용은 제외하고, 순수하게 공부하기 위해 필요한 돈이다. 이 돈을 메우기 위해 학자금 대출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대가는 이처럼 가혹하다.

가난은 존엄성의 상실로 이어진다. 309동 1201호는 일을 하다 쌓여있던 책무더기가 쏟아져 뼈가 살을 비집고 나올 정도의 부상을 입는다. 하지만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군대에서 작업하다 이등병이 다쳐도, 일용직 노동자가 현장에서 다쳐도 이렇게 대접받지는 않는다. 

‘잡일하는 대학원생’을 보호해주는 곳은 대학이 아니라 맥도날드였다. 맥도날드에서 알바를 하던 309동 1201호는 팔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매니저는 병원으로 데려가 모든 비용을 부담했고, 산업재해 신청으로 임금의 70%를 받을 수 있다고 안내까지 해줬다. 건강보험을 포함한 4대 보험을 모두 등록해준 것도 대학이 아니라 맥도날드였다.

309동 1201호는 이런 상황을 모두 버텨냈다. 친구들로부터 “그만 좀 얻어먹어라” “공짜로 얻어먹는 법 가르치냐”라는 말을 듣고 결국 이들과 연락을 끊게 되면서도, 부모로부터 “할 일 없는 놈”이라는 취급을 받으면서도 좋아하는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다.

지방시가 많은 공감을 얻은 이유는 이러한 고된 현실에 대한 묘사와 함께 자신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환경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일을 잘하고 싶어 하고, 그렇게 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는다. 

309동 1201호는 우리에게 논문을 쓰기 위해 박물관을 방문해 어렵사리 자료를 찾아내고 좌절 끝에 논문을 완성해 이 논문을 부모에게 보여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글에는 대학원생과 시간강사의 비참한 삶과 함께 그가 학생들과 소통하며 가르치는 자로 성장해나가는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다. 이 책이 무거운 사회비판서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다. 

지방시는 분노로 시작해 착취의 구조를 이해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원망은 주변인들과 선후배 연구자, 지도교수를 향했다. 이들에 대한 공격적인 감정이 글에 그대로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글이 이어질수록 분노는 거대한 괴물을 향하고 대학이 구축한 시스템을 향한다. 지방시가 세대의 기록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다. 

책을 덮으며 다시 대학원을 떠난 A를 떠올렸다. A가 계속 버텼다면, 좋은 시간강사가 될 수 있었을까. 분명한 건 309동 1201호의 말대로 “아파도 되는 청춘은 없다”는 것이다. 대학을 떠난 A, 그리고 떠나지 않은 채 버티고 있는 수많은 지방시들이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아픈 것이 나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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