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본인의 e-메일, 사내그룹웨어 메일, 메신저 등 내·외부 전기통신에 대한 통신기록 및 내용 등의 진단, 점검, 검색, 감사를 실시할 수 있으며 이에 적극 협조하는 것에 동의합니다.”

회사가 직원의 업무 수행 중 보안사고 예방 및 불법행위를 발견할 경우, 회사의 영업비밀 보호와 유출방지 등 보안사고의 예방과 대응을 위해 개인정보를 열람하겠다는 한 회사의 ‘정보보호서약서(안)’ 내용 중 일부다. 

이는 국가정보기관이나 산업 기밀이 유출될 경우 막대한 영업상 피해를 볼 수 있는 기업체의 사규가 아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생명으로 하는 언론사, 그것도 공영방송 MBC가 지난 6월 제정해 전 직원에게 적용하려 했던 내용이다.

이에 대해 전국언론노조 MBC본부(MBC 노조)는 사측에 우려를 표명하는 공문을 보내 “회사의 복잡한 사규안은 직원들에게 보안 의식을 강조하기보다는 오히려 통제의 수단으로 비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간단하고 일반적인 내용의 ‘서약서’만을 요구하고 지키지 않으면 징계하거나, 회사가 판단할 시 개인의 정보(이메일 등)를 전면적으로 열람하겠다는 동의를 받는 내용은 더욱더 문제의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특히 과거 ‘트로이컷’ 사태에서 보듯이 사측의 지나친 정보검열 활동은 자칫 개인정보보호법의 목적인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나아가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조항의 취지를 간과할까 우려된다”며 회사가 서약자의 모든 정보를 볼 수 있도록 하는 항목은 그 정도가 지나치다고 판단해 수정을 요청했다.

   
지난 2012년 이용마 전 언론노조 MBC본부 홍보국장이 사측의 보안 프로그램 ‘트로이컷’에 대해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민중의소리 양지웅 기자
 

트로이컷은 MBC 사측이 지난 2012년 노조 파업 중 사내 전체에 배포한 보안 프로그램으로, 사측 인사가 이를 이용해 노조 간부의 사적 정보 등을 불법 열람한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고 사용이 중단됐다. (관련기사 : 직원들 메일 뒤져 벌금 받은 MBC 판결문 살펴보니…)

이에 피해를 본 조합원들은 사측이 “직원 동의 없이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해 정보를 무단으로 열람했다”며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고,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지난 2월 MBC와 차아무개 전 정보콘텐츠실장의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를 인정해 노조 간부 두 명이 입은 피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해당 사건은 다음 달 2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노조의 정보보호서약서 관련 우려에 대해 사측은 지난 7월 노조에 보낸 회신 공문을 보내 “일부 문구로 인해 회사의 정보보안 조치가 본의 아니게 과도한 개인정보 통제로 비칠 수 있다는 인식에 공감한다”며 서약서 관련 조항의 일부 문구를 수정키로 했다. 이에 따라 ‘본인의 e-mail’이라는 문구는 ‘회사정보시스템, 회사에서 사용하는 e-mail’로 바뀌었지만, 보안 강화라는 명목으로 직원의 사생활 감시나 침해 행위를 회사가 너무나 버젓이 하고 있다는 게 노조 측의 지적이다.

노조는 지난 3일에도 사측에 정보보호서약서 일부 수정과 상세 안내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 “‘회사에서 사용하는 e-mail’이라는 표현이 여전히 매우 모호하며 ‘메신저’라는 단어 또한 회사 메신저가 아닌 일반 개인 메신저라고 오해할 여지가 있다”며 ‘회사(star) 메일’과 ‘회사 메신저’로 정확히 한정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사측은 지난 16일 사내 게시판을 통해 “서약서상의 회사에서 사용하는 e-mail은 회사 웹메일을 말하며, 메신저도 회사 메신저를 말한다”며 “회사는 이외 개인 메일과 메신저 등의 내용을 볼 이유도, 볼 수 있는 방법도 없다”고 밝혔다. 

사측은 또 “회사에서는 개인정보를 포함해 회사의 중요한 정보자산이 유출되거나, 해킹 등의 사고가 발생할 때만 사규에 있는 정보보호위원회나 감사 등의 엄격한 절차에 따라 대응조치를 취하고, 운용자가 정보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조합원 등 직원을 어떻게든 통제하려는 의도라는 내부 반발은 여전하다. 

   
1명의 교도관이 다수의 범죄자를 감시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원형 감옥. 최근 MBC가 직원들에게 요구한 정보보호서약서에는 회사에서 사용하는 e-mail과 메신저 등을 열람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실제 MBC 사측은 ‘트로이컷 사태’ 이후에도 기자 개인의 뉴스시스템 접속기록을 뒤져 타인의 아이디를 이용해 MBC 보도정보시스템을 열람했다는 이유로 중징계를 내린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징계 대상에는 노조 간부뿐만 아니라 일시적으로 아이디를 공유한 부부사이의 두 기자까지 포함돼 사측의 감사가 지나치다는 비판이 일었다.

MBC는 지난 1월 당시 MBC 노조 간부로서 보도정보시스템의 접속 권한이 없는민주방송실천위원회(민실위) 간사가 보도국 기자의 아이디를 도용해 보도정보시스템 정보를 불법 열람한 증거가 드러났다며 정직 3개월 징계를 내렸다.

MBC는 지난해 7월 세월호 참사 관련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기관보고 당시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배포한 보도자료에 외부 열람과 유출이 금지된 보도정보시스템의 화면이 그대로 공개됐다는 구실로 아이디 도용과 불법 정보유출행위 등에 대한 전면적인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MBC는 이후 인사위원회를 열어 “남의 아이디를 도용해 보도정보를 열람한 민실위 간사의 행위는 보도의 독립성을 해치는 위중한 취업규칙 위반행위를 한 것”이라며 징계를 결정했고, 이틀 후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며 정직 3개월 징계를 취소했지만 재심을 통해 정직 2개월 징계를 확정했다. 

노조는 “명확한 증거 없이 조합 민실위 간사가 사내 정보를 유출했을 것이란 ‘추정’만 가지고 휘두른 엉터리 징계이며 정당한 조합 활동을 옥죄려는 심각한 부당노동행위”라고 즉각 반발했다. 

노조는 “이번 징계의 근거가 된 감사 보고서의 ‘민실위 간사가 기자 출신이고 정치인들과 친할 것으로 보인다’는 어처구니없는 ‘추정’만 가지고 징계의 칼날을 휘두른 억지가 어디 있느냐”며 “MBC 뉴스의 치부와 민낯을 드러내는 민실위 활동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겠다는, 노조에 대한 심각한 탄압으로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MBC의 한 기자는 “보도 쪽만이 아니라 회사 PC를 켜면 각종 설치 프로그램이 뜨고 이 프로그램을 깔아야 문서 인쇄 등도 가능한데, 인쇄물엔 PC 이용자 이름과 MBC 로고가 찍혀서 나온다”며 “실제 직원들은 이게 어떤 프로그램인지 잘 모르고, 이 PC로 무엇을 조회하고 인쇄했는지 로그 기록이 남아 저장되므로 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들여다볼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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