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28일 MBC보도, 10월29일 KBS·JTBC·YTN 보도화면 갈무리.
▲ 10월28일 MBC보도, 10월29일 KBS·JTBC·YTN 보도화면 갈무리.

“현장에 취재 기자 나가 있습니다. 김○○ 기자!” 
“네, 서울 이태원 세계음식특화거리에 나와 있습니다.”
“현장 분위기 전해주시죠.”
“네, 핼러윈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거리 이태원은 축제를 즐기러 온 시민들로 북적입니다. 다양한 국적의 인파가 워낙 몰려 거리는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인데요. 경찰은 핼러윈 주말 3일 동안 경력 2백여 명 이상을 이태원 거리에 배치해 질서 유지에 나설 방침입니다.” 

‘3년 만에 돌아온 ‘노마스크’ 핼러윈...“축제 분위기”’란 제목의 YTN 리포트 온라인기사 등록시간은 10월29일 오후 10시6분이다. YTN 카메라는 이날 밤 현장에 있었다. KBS 메인뉴스도 같은 날 밤 이태원 현장을 연결했다. “많은 인파가 몰린 만큼 사고도 우려되는데요. 경찰 지도와 단속도 강화된다고요?” 앵커 질문에 기자가 답했다. “경찰은 평소보다 많은 순찰 인원을 배치했고, 현장 지도 단속도 시작했습니다.” 압사당할 것 같다는 신고 전화가 이어지던 시점이었다. 

방송사들은 거리두기 해제 후 첫 핼러윈 이벤트를 스케치성 리포트로 내보냈다. JTBC 메인뉴스도 그랬다. “인파가 몰리면 사고도 우려되는데, 이태원 주변에 경찰병력도 투입됐다고요?” 앵커 질문에 JTBC 기자가 답했다. “경찰은 오늘부터 핼러윈 당일인 31일까지 200명 이상의 병력을 이태원 주변에 배치한다고 밝혔습니다.” 1년 전, 2021년 10월30일 JTBC 메인뉴스도 이태원 핼러윈 현장을 보도했다. “이○○ 기자, 사람들이 정말 많아 보이네요.” “네. 보시는 대로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제가 서 있는 주변도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 모습입니다.” 

MBC 메인뉴스는 참사 전날이던 10월28일 이태원 현장을 연결했다. “경찰은 금요일인 오늘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1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태원을 찾을 것으로 보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습니다”라는 기자 멘트가 나갔고, 시민들이 밝게 웃고 있었다. 방송4사 모두 리포트 구성이 유사했다. 들뜬 시민들의 모습과 함께 인파가 정말 많다고 보도한 뒤, 경찰이 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언론도 경찰만 믿었다. 실제 현장에서 인파통제 매뉴얼이 존재했는지는 살펴보지 못했다. 압사 위험성을 경찰에 알렸던 참사 당일 오후 112 최초 신고자는 2일 KBS 라디오 ‘주진우라이브’ 인터뷰에서 “경찰이 200명이 오신다라는 (내용을) TV에서도 듣고 라디오에서도 듣고 그래서 당연히 어떤 통제라든가 질서 유지를 지켜주실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11월3일 이태원 참사 현장. 사진=정철운 기자
▲ 11월3일 이태원 참사 현장. 사진=정철운 기자

언론이 참사를 경고할 순 없었을까. 머니투데이는 참사 당일 오후 기사에서 “이날 오후 5시부터 이태원역 해밀턴 호텔 뒤편 거리는 사람들로 넘쳤다. 경찰에 따르면 용산구 이태원파출소에는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112신고가 약 50건 접수됐다”고 보도했다. 접수된 신고 가운데는 ‘압사’ 경고도 있었을 것이다. 참사 하루 전 한겨레도 현장 취재 기사에서 “저녁 7시가 다가오자 술집이 밀집한 ‘해밀톤 호텔’ 뒤편엔 어깨를 부딪치며 이동해야 할 만큼 인파가 몰려들었다”며 “경찰은 29일부터 사흘간 200명 이상을 이태원 일대에 배치한다”고 보도하는 데 그쳤다. 

사실 대다수 언론은 압사의 위험성보다 ‘마약’에 주목했다. 참사 전날 기사 제목을 보자. ‘“사탕·젤리 조심”…거리두기 없는 핼러윈 앞두고 마약 주의보’(조선일보), ‘“애들아 이런 사탕 조심해” 핼러윈 앞둔 이태원 마약 주의보’(동아일보), ‘3년 만의 핼러윈…이태원 지역 ‘마약’ 우려 커져’(한국경제), ‘사탕인 줄 아셨나요? 핼러윈 파티서 ‘이것’ 보면 주의하세요‘(서울신문), ‘“사탕 아닙니다”…이태원, 핼러윈 앞두고 ‘마약 주의보’’(서울경제)까지 언론은 마약에 주목했다. 10월28일자 매일경제의 이태원 르포 기사에서 한 경찰관은 “마약 거래가 활발히 이뤄질 수 있으니 유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같은 날 국민일보는 “사탕 모양으로 가공된 마약류나 음료에 몰래 약을 타는 일명 ‘퐁당 마약’ 등이 인파가 몰리는 이태원 클럽 일대에 퍼질 수 있다는 우려 속에 경찰이 특별 단속에 나선다”고 보도했다. 

언론은 이태원의 인파를 ‘출퇴근 신도림역 인파’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참사 징후’는 수년 전부터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2021년 10월31일자 ‘입장에만 두 시간 ‘핼러윈 불야성’…턱스크에 초밀착 아슬아슬’ 기사의 한 대목이다. “오후 7시 서울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는 온통 사람으로 뒤덮였다. 300m 길이 도로를 사람들은 가슴과 등을 붙인 채 거북이걸음으로 걸었다. 고작 10m를 가는 데 5분이 걸렸다. 곳곳에서는 “앞으로 가라” “밀지 마라” “깔려 죽겠다”며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가 들렸다.” 같은 날 세계일보는 “마치 차가 밀리는 것처럼 인도가 정체돼 100m 거리를 이동하는 데 10분가량 걸렸다”며 현장 상황을 전했다. 출퇴근 인파 수준이 아니었다. 

▲ 11월3일 이태원역 1번 출구. 사진=정철운 기자
▲ 11월3일 이태원역 1번 출구. 사진=정철운 기자

언론은 지난 5년간 이태원 핼러윈 행사를 보도하며 △폭행 △성추행 △절도 △불법촬영 △방역위반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정작 ‘살인적 인파’는 현상만 중계했다. 중앙일보는 2018년 10월30일 이태원 인파를 보도하며 “인스타그램 등에는 ‘일렬로 인원이 서서 이동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움직일 수 없었다’ 등과 같은 말이 쏟아졌다”고 전했다. 같은 날 한국경제신문은 “핼러윈 축제가 열린 지난 주말(26~28일), 112 신고를 받고 경찰이 이태원 인근으로 출동한 건수는 총 382건으로 나타났다. 전주 같은 기간(19~21일) 출동 건수인 239건과 비교하면 50% 이상 많다”고 보도했다. 언론이 매년 핼러윈 신고 내역을 분석했다면, 인파통제 매뉴얼이 앞서 등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파가 많다는 기사는 반복되는 것에 그쳤다. 조선일보는 2020년 11월1일 “31일 밤 250m 길이의 세계음식거리는 인파로 들어차 골목 끝에서 끝으로 이동하는데 15분 가까이 걸렸다”고 보도했다. 이듬해인 2021년 10월31일 조선일보는 “30일 저녁 이태원 해밀톤 호텔 뒤편 거리는 몰려나온 인파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높은 인구 밀도에 몸을 밀착하고 한 걸음씩 밀려다닐 정도로 이동하기조차 힘들었다”고 보도했다. 참사 이후 언론은 앞다퉈 당국의 무능한 대응을 비판하며 참사를 예방할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전에, 경찰력이 제대로, 적정 인원이 배치되었는지, 안전 매뉴얼이 있었는지 현장에서 살펴보고 위험을 경고하는 것도 언론의 역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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