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13인의 아해는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와 그렇게 뿐이 모였소. 다른 사정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았소.…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소 (이상, '오감도' 가운데 발췌)

13인의 아해가 경찰의 허가를 받지 않고 도로를 질주하면 불법이다.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즉결심판에 회부돼 10만 원 상당의 벌금형을 선고받게 된다. 그런데 만약 도로를 무단 질주하는 아해들이 13명이 아니라 1000명 이상, 이를테면 10만 명, 20만 명쯤 된다면? 이 아해들을 모두 붙잡아 벌금을 부과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 이치열 기자 truth710@  
 
정부는 촛불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시민들은 허가 받지 않고 도로를 무단 점거했고 야밤에 고성방가는 물론이고 행진을 막는다는 이유로 경찰버스를 흔들거나 밧줄을 묶어 끌어내기도 했고 심지어 유리창을 깨뜨리거나 낙서를 하고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사옥에는 스티커를 붙이고 계란까지 던졌다.

20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 애초에 합법적인 집회 또는 시위가 불가능하다. 폭력 행위는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지만 일단 도로를 무단 점거하지 않을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다른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게 된다. 정부는 이들의 합법적인 집회를 보장할 수도 있고 불법집회로 내몰 수도 있다.

   
  ▲ 29일 0시 25분경 경찰은 프레스센터앞에서 대치중이던 시민들을 일거에 덮쳐 몰아냈다. 기습적인 진압으로 곳곳에서 부상을 입고 쓰러지는 시민들이 속출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헌법 제21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2항에는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집회의 자유는 허가 사항이 아니라 신고 사항이다. 누구나 신고만 하면 집회를 할 수 있고 정부는 이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다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는 "집단적인 폭행·협박·손괴·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를 주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일출시간 전, 일몰시간 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안 된다"면서도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하는 경우에는 허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자유를 하위법에서 일부 제한하고 있는 셈인데 그만큼 그 기준을 엄밀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헌법 37조 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집시법은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법률이 아니라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절차를 규정하는 법률이다.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집회"가 아니라면 허용해야 하고 "일출시간 전, 일몰시간 후의 옥외집회" 역시 무조건 금지해서는 안 되고 질서를 유지한다는 조건을 붙여 허용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 경찰의 물대포와 비에 흠뻑 젖었지만 시민들은 이내 다시 기운을 내서 자유발언과 노래, 율동으로 1박2일 촛불문화제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런데 정부는 촛불집회를 허가받지 않은 집회라는 이유로 불법집회로 규정한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명백한 월권이다. 애초에 정부는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는 명백한 판단 없이 집회를 허가하거나 하지 않을 권한이 없다. 시민들이 경찰 차벽 앞에서 "너희들이 불법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는 수십 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현실을 고민하기보다는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광장을 원천봉쇄하고 행진을 가로막는 좀 더 손쉬운 해법을 선택했다. 시민들은 법을 지키기 위해 집회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거나 정부가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까지 불법 집회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민들은 "과연 악법도 법인가"하는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집시법이 헌법에 보장된 정당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제한할 때, 경찰 차벽이 시민들의 목소리를 가로막을 때, 급기야 도로를 점거하고 있을 뿐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 광장의 시민들을 곤봉과 방패로 찍어누르고 군홧발로 짓밟을 때 시민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모든 집회와 시위는 사회적 비용을 필요로 한다. 교통 혼잡을 초래하고 시끄럽고 주변 상인들에게 경제적 피해를 입히고 시민들이 많이 모이면 돌출행동이나 불필요한 마찰도 빚어진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또는 정부의 정책에 반대된다는 이유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원천 봉쇄하거나 이들의 목소리를 묵살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는 저항권이라는 개념이 포괄적으로 명시돼 있다.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문장이 바로 저항권에 관한 부분이다. 만약 모든 국민들이 법을 지키고 현실에 순응했다면 일본 제국주의와 박정희 군사독재는 아직까지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헌법재판소 1997년 9월25일 판례에는 "저항권은 국가 권력에 의해 헌법의 기본원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행해지고 그 침해가 헌법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경우 다른 합법적인 구제 수단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때에 국민이 자기의 권리 및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실력으로 저항하는 권리"라고 나와 있다.

인류의 역사는 좀 더 자유롭고 좀 더 평등하고 좀 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진보는 끊임없이 현실과 맞서고 더 나은 현실을 만들기 위한 치열한 투쟁으로만 가능하다. 저항권은 머릿수가 아니라 현실에 맞서는 의지와 신념, 더 나은 현실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뒷받침될 때 의미를 갖는다.

정부는 불법과 폭력이라는 단어를 혼용하고 광장의 시민들도 그 언저리에서 스스로 한계에 갇히는 경향을 보인다. 폭력은 지양해야겠지만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제한하는 정부의 권한 남용에 맞서는 것 역시 시민들의 정당한 권리다. 비폭력은 저항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폭력이면서 저항의 수위를 높여가는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할 때다.

인권단체들은 시민들의 집시법 위반 보다는 오히려 경찰의 과잉진압이나 직무집행법·인권수칙 등의 위반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시민들의 불법이 정부의 불법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경찰 차벽이 광장의 시민들을 불법집회로 내몰고 과잉 진압이 불필요한 폭력을 불러온다. 절대다수의 시민들은 여전히 비폭력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더 나아가 지금 광장에서는 대의 민주주의의 실패가 논의되고 있다.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 민의를 배반하는 역설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물론 정당한 절차를 거친 선거를 광장의 시민들이 뒤집을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대통령이 소수든 다수든 시민들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집시법 위반 등을 이유로 묵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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