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한국에서 ‘노동’은 언제나 위기였다. 그리고 저널리즘 또한 위기기도 했다. 지난해는 한진중공업, 유성기업, KEC, 현대자동차 등 유난히 노동 이슈가 많았지만 언론은 ‘소비자 침해’나 ‘경제효과 악영향’으로 몰고 가기 바빴다.

특히 파업과 관련한 보도에서 스트레이트 기사는 사실관계를 나열하는 수준에 그쳤다. 칼럼은 자신의 언어와 이념을 독자에게 무리하게 요구했다. 이런 언론을 지켜보는 독자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왜 파업하지?’ 아니면 ‘어떤 인간들이 길래 또 파업이야?’

독자는 파업의 이유와 파업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궁금해 한다. 그러나 독자가 궁금해 하는 ‘진실’은 여전히 지면에 실리지 않았다.

지난해 가을 삼화고속 노동자들은 37일 간 운전대를 놨다. 서울과 인천을 잇는 버스가 멈춰 서자 출퇴근 시민들은 물론 언론은 아우성을 쳤다. 보수언론은 파업, 노선중단에 대해 비난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시민=소비자’, ‘소비자>노동자’라는 수식에 따라 보도했다. 정작 파업의 이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조선- 파업 25일째… “삼화고속 과연 ‘시민의 발’ 맞나”
중앙- 4개월 새 파업 5번 … 승객이 봉이냐
동아- 서울~인천 버스 또 스톱 시민들 분통

한겨레·경향신문은 어땠을까. 보수언론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여러 차례 보도했고 파업의 이유 또한 상세히 보도했다. 노조, 회사, 시민, 인천시의 의견을 골고루 실었다. 노동자와 회사, 노동자와 시민 사이에서 저울의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러나 온갖 비난을 들으며 파업을 진행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없었다.

경향- 삼화고속 ‘한 지붕 세 노조’ 엇박자
한겨레- 삼화고속 파업 장기화 조짐, 회사 직장폐쇄로 맞서

87년 6월 항쟁을 다룬 ‘100℃’의 최규석 작가는 파업 24일차를 맞은 삼화고속 파업 현장을 찾았다. 만화작가는 보통 신문 기사와 취재에 기반한 논픽션 장르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직접 취재를 시작했다. “한국은 세상과 만화를 잇는 중간다리가 사라졌다.”

최규석 작가는 삼화고속 노동자들이 시급 4천727원을 받으며 첫차부터 막차까지 하루 22시간을 일하는 모습, 그리고 파업에 이르게 된 과정을 그렸다. 몇 년을 한 회사에 있었지만 서로 이름도 모르는 노동자들의 대화를 엿듣기도 하고, 노조 경력을 이유로 고향을 떠나 인천으로 건너 온 노조위원장의 이야기를 화면 빼곡 담았다. 민주노조를 만드는 동안 춥고 배고팠던 시절 또한 그림에 담았다. 현장뿐 아니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차이, 파업이 길어지면 맞게 되는 손배가압류 및 각종 소송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을 취재해 등장시켰다.

삼화고속 파업 문제를 다룬 어떤 기사보다 잘 읽히고, 문제의 본질이 ‘PD수첩’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언론이 삼화고속 파업을 하나의 사건사고로만 다룬 것과 다르다. 이기진 인문만화교양지 싱크 편집장은 ‘24일차’에 대해 “내 이웃의 이야기, 내가 주인공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라며 “언론이 다룰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리얼리즘 만화를 통해 토해져 나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큐멘터리 만화 ‘사람 사는 이야기’를 기획한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교수는 “시대가 다큐멘터리를 원하고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사회 전반에 일어나고 있는 정리해고, 재개발을 거론하며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시대가 됐고, 이게 이 만화를 기획하게 된 배경”이라고 말했다.

만화가 엔터테인먼트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면 다큐멘터리 만화, 리얼리즘 만화는 오락적 기능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현장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들려줄 수 있는 장르로 발전하고 있다.

   
 
 
현장의 이야기를 실을 수 있는 매체가 많지 않고, 기성언론은 꽉 짜인 틀에 갇혀 있는 상황이다. 이 틈을 뚫고 만화가 사회에 대한 독백을 시작했다. 이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사람은 ‘방백’만 하고 있는 언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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